제목을 쓰려다 꽉 체한 기분이라 제목을 아직 쓰지 못한 채로 밑줄로 내려왔다. 오늘은 중고서점에 가서 책도 팔고, 중고 책들도 사 왔다. 얇고 가벼운 서적만 골라잡는 내 손은 얇고 얇은 책들로만 그 많은 책들 중에서도 고르고 있었다.
읽으면서 느낀 건 가볍다고 깊이도 얇지는 않다는 것이다. 되려 일반적인 두께의 책들보다 더 깊이 있는 말들도 많고, 느끼는 글도 많다. 두께가 꼭 도서의 질과 비례한다는 사실은 아니라는 걸 요즘 들어 깨닫는 중이다. 단어의 뜻이나 문장의 호흡이 어렵지 않고 쉽게 읽힐 때면 아 정말 좋네.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책이 그리 많지 않다. 찾기 오히려 힘들어서 나름 책을 고르면서도 고심해야 한다. 에세이든, 어떤 탐구를 위한 책이든 말이다. 요즘엔 딱히 편독하진 않는 것 같다. 읽으면 읽는 거고, 안 읽히면 안 읽으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부담이 덜 간다. 다만 두꺼운 건 손이 잘 안 가기 때문에 어떠한 지식을 말해주는 책이어도 가벼운 것이 좋다. 꼭 식당에서 밥 먹고 난 후 디저트로 요구르트를 건네주는.. 그러한 달콤하고 새콤한 가벼운 느낌의 책을 찾는 것이다.
오늘 사온 책은 그저께 산 책과 두께가 비슷해서 놀랐다. 알고 보니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인데, 크기나 두께가 비슷했고, 제목도 비슷하다. 아, 이 출판사는 이런 결의 글을 좋아하는구나. 나도 이런 결의 글이 요즘 좋은데. 잘 맞는 취향의 친구를 만난 느낌이랄까. 물론 취향에 맞는 누군가를 찾는다는 게 더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지만.
집에 돌아와서 한숨 자고 일어나니 벌써 하루가 다 지났다. 오늘은 중고서점을 다녀왔고, 떡볶이 뷔페에 가서 떡볶이를 만들어먹었지. 우리 가족은 요즘 떡볶이에 진심이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떡볶이를 먹는 듯하다.
내가 만든 떡볶이는 말랑말랑한 떡에 비해 비록 맹맹한 국물이지만 아이들이 좋아한다.
많이 맵지 않고, 먹고 싶은 만큼 원하는 대로 양배추도 떡도 어묵도 잔뜩 넣어서 먹을 수 있어서 집에서 만들어먹곤 하는데 그 사랑이 밖으로 연결된 것인지 이제는 떡볶이 뷔페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다양한 재료를 넣고 재주껏 만들어 먹는 재미가 있었지만, 역시 밖에서 먹는 건 누가 그냥 만들어서 완성된 요리를 주는 게 좋다. 왔다 갔다 재료를 넣고 재료를 가져오고 하려니 정신이 없어서 우리 남편은 떡볶이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본인도 몰랐을 것이다.
그만큼 바빴고, 그에 비해 맛은 그저 그랬다.
떡볶이를 먹고 나서 중고서점에서 (한쪽에는 아이들 책으로 분류된 코너가 있는데 레고를 할 수 있는 블록 테이블과 의자가 마련돼있다) 한참을 있던 아이들 덕분에 나는 책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중고서적도 4권이나 구매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피곤했는지 남편과 나는 완전히 뻗어버렸다. 아이들은 피곤하지도 않나 보다. 무적의 체력인 아이들.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어떻게 저렇게 체력이 금방금방 충전되지? 이래서 어린이들을 못 이기는 건가. 비타민을 먹으면서도 골골대는 내 체력을 생각하며 고기는 내가 먹어야겠네 싶은 거다.
애들 주라고 큰 형님이 주신 고기는 나와 남편이 먹어야 할 판이다. 이렇게 바닥인 체력으론 애들 발끝에도 못 미칠 것이다. 그 고기는 우리가 먹고 애들 따라다니는데 써야겠군. 짐짓 생각하며 먹어야겠다는 이유를 끝도 없이 대본다. 이유가 너무 충분하고도 넘친다.
여보 나 요즘 유일하게 돈 쓰는 데에 책이랑 먹는 것에 진심인 거 알아? 남편에게 말했더니 어 그런 것 같더라. 하면서 답변을 주는 우리 남편은 또 말한다. 근데 이번 주에 책 몇 권 사 오지 않았어?
나는 헙, 하며 중고서점에서 팔았던 포인트로 책을 구매했음을 강조했다. 에헴 이래 봬도 판 돈으로 샀다고. 그리고 그 책중에 한 권은 다 읽었단 말이야. 나름대로 항변을 한다.
나도 나름의 이유라는 게 있는 여자란 말이다. 물론 그 이유들을 우리 남편이 다 들어줄지는 본인 마음이지만. 책 사는데 꽤 많은 지출을 하다 보니 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다.
언제나 소소한 소비는 큰 지출보다 더 돈이 새는 법. 차마, 이 소소함 만큼은 멈추기가 망설여진다.
아, 벌써 내일이 월요일이라니. 믿고 싶지 않아. 나는 탄식하며 내일부터 교육에 참여할 우리 남편을 생각한다. 물론 집에서 왔다 갔다 할 테지만, 엄연히 일하는 것과는 다르다. 일단 마음대로 연차를 쓸 수도 없고, 일이 있어도 반차도 웬만하면 어렵다. 퇴근시간이 일정한 건 좋지만 거리가 있으니 어쨌거나 늦게 집에 오는 건 똑같다. 고속도로를 타고 왔다 갔다 할 남편의 피곤함이 벌써부터 느껴진다.
출근시간 퇴근시간 꽉꽉 채운 자동차들 속에서 우리 남편도 한몫하겠네 라는 생각도 든다. 빽빽한 콩나물 같은 자동차들. 나는 노란 머리의 콩나물을 생각하고, 남편을 한번 더 바라본다. 콩나물? 음.. 콩나물. 하면서
그러고 보니 아까 떡볶이에도 콩나물을 넣고 먹었더랬다. 다음엔 콩나물을 나도 넣어봐야지. 새로운 떡볶이 조리법은 이렇게 탄생하나. 나도 요리란 것에 눈이 뜨이는가. 내심 기대하며 나의 레시피에 하나 더 추가된 콩나물 떡볶이를 생각해본다. 아이들이 좋아할지는 미지수다. 왜냐하면 이건 순전히 내 취향이기 때문에. 게다가 우리 아들들은 아까 떡볶이 먹을 때 콩나물은 쳐다보지도 않았더랬지. 이건 아무래도 만들 때 물어보고 넣어야겠네 싶다. 괜히 넣었다가 안 먹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으니 말이다.
말없이 옆에 누운 둘째 아들을 바라본다. 글을 쓰고 있는 내 옆에 가만히 누운 둘째는 피곤한지 얌전히 누워있다. 그래 오늘 참 많이 더웠지. 유난히 오늘 텐션이 좋았던 둘째 아들이 길바닥에도 누웠더랬다. 그래. 누워라 누워. 남편과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을 보며 걸었었다. 나만 두고 가지 마!라고 소리치던 둘째 아들 목소리와 지금 내 옆에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둘째 아들이 같은 아들이 맞는지. 나는 떠오르며 바라본다.
잘 때는 세상 순한 양이다. 양? 양이 순했던가. 나는 전에 다녀왔던 농장에서 양이 어땠나 생각해본다. 별로 엄청나게 순하지는 않았던 것 같았는데, 되려 무서워서 멀찌감치서 바라봤던 것 같다. 이번 주는 전국적으로 비가 오겠습니다. 뉴스 속에 기상캐스터가 날씨를 예보한다.
나는 엄청 습하고 더웠던 오늘을 생각하며 비가 오겠습니다..라는 말을 되뇌인다. 비가 오는구나. 성수기인데도 비가 와. 원래는 비가 완전히 그치지 않았었나. 올해는 비가 조금씩 길게 오는 느낌이네. 또 한 번 깎아놓은 아파트의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겠구나. 요즘은 비 온다고 하면 풀냄새 가득한 빗속의 풀향이 생각난다. 그건, 그 냄새는 생각보다 푸릇해서 이상하게도 청명한 맑은 날씨를 생각케하는 강렬함이었다.
그래. 생각보다 푸릇했다.
자주 보던 유투버가 영상을 잠시 중단했다. 또 하나의 취미가 사라져서 아쉽다. 남의 삶을 보는 게 이토록 재밌을 줄이야. 내심 아쉽다. 다른 영상으로 대체하고 싶어도 쉽지 않다. 그만한 감성을 찾기가 힘들다. 감성 찾기라니. 이 나이에 조금 쑥스럽지만 나는 감성에 젖는 걸 좋아한다.
점점 나이를 한 살씩 먹을수록 감성이 사라져 간다. 현실적으로 되어가는 게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엄청나게 좋은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난 대체적으로 괜찮은 어른이 어떤 사람인지 아직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귀여우면 뭐 됐지. 보드게임을 하며 장난스럽게 말하는 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강아지가 귀여우면 됐지 뭘 그래. 그런가. 귀여우면 된 건가. 나는 괜찮은 어른도, 조금 귀여울 수도 있겠네. 라며 생각해본다.
어설픈 어른이 귀여운 어른보고 괜찮다고 말하면 그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직도 알 수 없지만 별로인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