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존중

by 김태연


남편은 오늘 휴가를 쓰고 출근을 했다. 직장인의 비애란.. 휴가를 써놓고도 휴가 같지 않은 휴가인 느낌이다. 일에서 멀어져야 하는데 이번 달 내내 교육갈예정이라 아무래도 후임자에게 대신 일을 맡기려니 한두 가지가 아닌 모양이다. 어쩔 수 없지만 다녀와야겠지. 나는 아쉬움을 달래며 신랑을 보냈다.


여름휴가를 제대로 못 즐긴 건 올해가 처음인 것 같다. 그래도 3일 정도는 같이 쉬었었는데, 올해는 하루도 제대로 못 쉬고 오전에는 일을 다녀온다. 좀처럼 타인에 대한 마음에는 연민이 들지 않는 나도 올여름은 남편이 안쓰럽다. 예전 같으면 이런 일이 어딨냐며 노발대발했을 나도 좀 유해지나. 이 찜통 속에 옷을 입고 나가는 남편이 애잔해서, 잘 다녀오라는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언제 올 거냐는 물음은 덤으로 했다.




둘째 아이와 같이 강아지를 데리고 식빵을 사러 나갔다 오는데 어찌나 습하던지. 비도 조금씩 내려서 얼른 빵만 재빨리 사고 집으로 돌아온다. 더운 건 둘째치고 습한 건 못 견딜 지경이다. 아직도 장마가 지나가지 않은 건가. 나는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고, 얼른 아이를 씻긴다.


땀으로 끈적한 아이의 몸이 보송보송해지니 씻기 싫다던 아이도 막상 씻고 나니 괜찮은가 보다. 기분이 좋은지 웃는다. 나도 덩달아 웃었다. 얼른 아이를 씻기고 강아지도 씻긴다. 저도 더웠는지 가만히 있는다. 털을 다 말려주고(사실 말릴 것도 없다 우리 강아지는 늘 털이 밀려있기 때문에) 울타리 안으로 들여보낸다. 피곤한지 뻗어서는 잠이 들었다.


부러운 개팔자. 나는 울타리 안 우리 집 강아지를 보며 부러움을 느낀다. 개팔자가 저렇게도 편해 보이다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자는 걸까. 그냥 자나. 별별 생각을 다하며,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식탁 등이 노랗다. 뭔가 비밀스러운 무언가가 나올 것 같은 분위기의 식탁등 아래에서, 나는 건조한 표정으로 글을 쓴다. 무언가 나오지는 않는다. 나왔으면 진작에 거장이 탄생했을 터. 나는 오전에 큰아이가 공부를 얼마나 했나 가늠해보며 오후에는 어떤 걸 시켜야 할지 고민한다. 엄마의 욕심인지 아니면 계획인 건지, 나는 분간하기가 힘들다.



새로운 동네 독립 서점을 찾았는데, 어제 갔더니 폐점이 되있었더랬다. 아쉬워라. 나는 발길을 돌리며 조금 길러진 머리만 다듬고 왔다. 독립서점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물론 대형 서점은 그만큼 책도 많고, 할인도 받을 수 있어서 좋긴 한데 선택의 폭이 넓어서 가끔 뭘 선택해야 할지 모를 정도다. 독립서점은 책이 한정적이라 그 안에서 고를 수 있어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다.


물론 할인은 받기 힘들지만, 나름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것이랄까. 요즘은 독립서점 찾는 재미에 맛들려서 찾아다니고 있지만, 쉽지 않다. 최근에 찾은 곳은(가보진 못했지만) 글쓰기 모임도 한다고 인스타 공지에 올라와있다.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하필 신랑 퇴근시간이라 움직일 수 없는 처지인 나는 그저 손가락 빨며 보기만 한다.


에잉 아쉬워라. 나는 참여할 수 있는 이들을 부러워하며 막상 참여하면 소심해질 나를 생각한다. 말은 잘할 수나 있겠어?라고 지레짐작 포기할만한 나름의 이유를 찾는 것이다. 참여할 수 없는 나름의 이유. 신랑의 퇴근시간만 빼면 터무니없는 이유들 뿐이다.


아마도 합리점을 찾고 싶은 거겠지. 나대로의 합리점 말이다. 참여할 수 없는 나만의 합리점. 그거라도 해야 위안이 되는 듯하다. 이렇게 이유를 찾으려고 하면 서글퍼진다. 이게 뭐라고 나대로 위로해야 한담. 못하면 못하는 거지 뭐가 이리도 아쉬운지.


에잇 몰라 몰라. 나는 애써 부정하며 커피를 시킨다. 얼음을 하도 먹어서 얼음이 부족 상태다. 날은 너무 덥고, 기분은 꿀꿀하고, 책은 눈에 안 들어오고. 그러니 먹을 거라도 위로를 받아야지 신랑도 없는 이 독박 육아에서 날 해방시켜줄 건 맛있는 커피뿐이다. 집에선 쓴 커피만 먹으니, 단커피를 시켜야지. 그래 놓고 아메리카노만 4개를 시켰다! 언행불일치의 일인자인가. 나는 생각하며 얼른 커피를 시킨다.


왜냐하면.. 이 집 커피는 라떼만 먹으면 내가 속이 안 좋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숙성 우유가 내 뱃속이랑 안 맞는 듯하다. 이 집은 우유를 숙성 우유를 쓰는데 맛이 엄청 고소하다. 대신 안 맞는 나 같은 여자는 그 라떼만 먹으면 배가 아프다. 그럼에도 시키는 이유는 얼음이 잘고, 딱 내 취향의 알맞은 아작함 때문이다.


얼음 때문에 시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얼음이 씹어먹기 좋은 사이즈에 씹을수록 특유의 식감? 이 중독적이다.그래도 아메리카노는 원액에 물만 들어가니 배가 아플 일은 없어서 종종 시킨다. 그렇게나 좋아하는 바닐라라떼는 또 다른 집이다. 몇몇 맛있는 집을 이렇게 점찍어놔야 고를 때 행복하다.

그리고 배달비가 아까우니 왕창 시켜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보관해서 먹는다. 그래서 가끔 보틀로 커피를 주는 집은 너무 좋다. 나처럼 두고두고 먹는 여자한테는 딱이다. 이런 게 취향이라는 건가. 나에게도 취향이 있긴 한가 보네.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은 없고, 커피맛에는 문외한이지만 어쨌든 나도 나름의 취향이 있나 보다. 나는 이런 취향 타는 내가 썩 나쁘지 않아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취향이라 하니, 갑자기 생각이 난다. 내 큰아들은 가끔 티브이에서 하는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만화 프로그램을 보는데, 자기는 아니라고 말은 하지만 취향에 꽤 맞는지 멍하니 보고 있을 때가 종종 있다. 역시 너도 어쩔 수 없구나. 나는 아들을 보며 그렇게 생각한다.


변신하는 만화의 여자 주인공은 변신만 하면 척척 마법도 잘 쓰고 제법(?) 의리도 있다. 보다 보면 빠져드는 이 변신 마법의 매력이 꽤 우리 아들을 사로잡았나 보다. 하지만 이건 엄연히 비밀이다. 내가 말이라도 하는 날엔 손사래 치며 부정할 것이 뻔하니. 나는 티비를 보고 있는 아들을 가끔 곁눈질로 쳐다보며 몰래 웃는다. 암. 재밌지 재밌고 말고. 그러니까 만화지. 뭐 어때 재밌으면 보는 거지.


여자애들도 로봇 만화 보듯이 똑같은 거 아니겠어? 나는 아들을 보며 그렇게 생각하곤 한다.

아들은 알 리 없지만.



점심 메뉴를 걱정하며 취향을 생각한다. 전혀 관계없는 단어들의 교집합을 찾아보려 애쓴다.


결론은, 라면에 밥 말아먹기. 아들은 엄지척 한다. 나는 아들의 취향을 존중하니.

오늘은 스낵면을 끓여야겠다.






이전 18화처음은 항상 처음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