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여름을 즐기는 방식
2018년 스웨덴의 여름은 기후이상으로 매우 뜨거웠다. 그 열기 속에서 프로젝트를 한창 준비 중이던 우리는 행사가 코앞에 다가올 때쯤 모두 기진맥진 해졌다. 아마추어들이 모여 제대로 된 체계 하나 없이 벌인 일을 수습해 나가느라 애쓰다 보니 몸이 축이 나버렸다. 그리고 서로에게 쌓아온 감정적인 불만으로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열정이 식은 건 아니지만 무언가 충전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걸 모를 리 없는 리니아가 때마침 기막힌 제안을 했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우리 잠깐 충전할 겸, 여행을 다녀오는 건 어때? 길게 말고 한 며칠만 쉬었다 오고 싶어.”
솔직히 느닷없는 제안이라 좀 당황했다.
“며칠 있으면 곧 행사 시작이야. 우리, 아직 준비할 것도 많잖아. 이걸 다 제쳐두고 여행을 가자고?”
“아, 네가 무슨 말하는지 알아. 하지만 이 상태로 계속 갔다간 시작도 하기 전에 쓰러질 거 같아. 중간에 쉬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거야. 우리 엄마가 여름마다 친구와 함께 지내는 곳이 있는데, 이번엔 엄마와 내 동생이 그곳에서 지내게 됐어, 집 바로 앞에 호수가 있어서 우리 매일 거기서 수영할 수 있을 거야. 어떻게 생각해?”
평소에 난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몰아서 해치우는 편이라 그녀의 제안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제대로 편하게 쉴 리 없고 오히려 흐름이 끊길 것 같았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녀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밀어붙이고 싶은 건 어쩌면 이기적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또한 지금쯤 한 번 물러서서 우리의 상황을 바라보고 점검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다 같이 가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 시몬과 마티는 이곳에 남아, 하던 일을 진행하기로 하고, 리니아와 나는 또 여행 가서 할 수 있는 일을 그곳에서 하기로 정했다. 그리고 다음날 우린 어린 이반을 데리고 함께 기차에 올라탔다. 남은 이들에겐 미안하지만 이런 바쁜 상황에 떠나는 여행이라니 불안한 감정은 어디 가고 잠시 벗어났단 해방감에 꿀처럼 달콤했다.
스웨덴 남부에서 중부까지, 4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내린 곳은 Aravika라는 곳이었다. 스웨덴은 중요 3 도시를 빼고 나머지 지역은 대부분 시골이다. 많은 사람들이 대도시에 몰려 사는 모습은 우리와 비슷하지만 그들에겐 조금 특별한 삶의 방식이 하나 있다. 추운 북유럽 나라, 특히 겨울에 그들은 하루에 단 몇 시간만 해가 뜨기 때문에 어둠이 길다. 그래서 보통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우리도 겨울엔 당연히 바깥에 나가는 일이 드물지만 이들에겐 나가느냐 마느냐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 맞춰 실내에서 오래 지내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사람이 오랜 시간 빛을 보지 못하다 보면 멀쩡한 사람도 우울해지기 마련일 테다. 사람들의 정서적 안정된 삶을 위해 정부에서 지정한 그들의 여름휴가는 한 달에서 두 달까지 꽤 길다. 그리고 겨울에 해가 일찍 지고 늦게 뜨는 것과 반대로 여름에는 해가 늦은 시간에도 중천에 떠 있는 백야 현상이 있는 것도 이들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4계절이 조화롭게 주어지면 좋으련만 또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이들의 방식이 되었으며 그만큼 북유럽 사람들은 자연적 요인이 개인의 삶의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직접적으로 느끼기에 이에 순응할 줄 아는 것 같다. 감히 자연을 거스르는 짓을 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고 그랬다간 결국 사람 손해라는 걸 인지하는 사람이 이곳에는 비교적 많은 것 같다. 겨울이 매우 긴 북유럽 사람들에게 여름은 매우 특별한 시간이기에 이들은 이를 매우 소중하게 여긴다. 그래서 웬만하면 여름휴가동안은 도시를 떠나 지낸다. 꼭 부자가 아니더라도 여름 별장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게 다반사다. 스웨덴은 우리나라보다 면적이 5배가 넓지만 인구수는 5배가 적다. 그만큼 인구 밀도가 낮기 때문에 대도시를 제외한 다른 지역의 땅값과 집값은 그리 비싼 편이 아니다. 한 때 나도 리니아와 집을 장만하겠다고 많이 알아보았는데, 부동산 사이트에 들어가면 ‘여름 별장’ 카테고리가 따로 있다. 또한 요즘은 그 여름 별장에서 일 년 내내 지내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 움직임은 이미 젊은 사람들 사이에 퍼지고 있었고 이 모습은 마치 우리나라에서 청년들이 귀농을 하는 것과 비슷해 보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스웨덴의 시골의 많은 지역이 아직 미개발된 곳이 많아 전기와 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 집을 산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집을 스스로 만들고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리니아와 내가 도착한 그곳 또한 매우 독특했다. ‘집’이라는 공간은 정말 몸을 뉘울, 잠을 잘 곳에 불과했다. 실내에는 방으로 나뉜 작은 공간에 침대가 있었고 주방엔 간소한 살림살이, 그리고 나머지 공간은 통유리로 된 널찍한 테라스였다. 실내보다는 오히려 집 밖에 더 넓은 공간을 사용하고 있었다.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마당 한 복판에 놓인 ‘부엌’이었다. 말이 마당이지, 이 또한 그냥 숲 중간에 집 하나 짓고 나머지 공간을 필요한 대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었다. 작은 테이블 위에 식기, 직접 떠 온 큰 물통, 그리고 여기저기 너부러진 물건들이 그들의 살림살이었다. 마치 소꿉장난하는 것 마냥 만들어 둔 저게 주방이라니! 그리고 집 앞에 무한하게 펼쳐진 호수. 여기서 모든 게 끝났다. 말 그대로 집 앞에 나와 몇 발자국만 걸으면 바로 호수가 있었다. 정말 호숫가 옆에 지어진 집이었다.
이곳에서 처음 만난 리니아의 엄마와 그녀의 동생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고 다 같이 차를 타고 장을 보러 갔다. 마트 안의 물건들도 도시에서만큼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필요한 건 다 있었다.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거리를 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제일 먼저 한 것은 수영이었다. 탈의실 따위는 없다. 신발은 저 멀리 던져두고 호숫가로 걸어가면서 이미 옷을 하나씩 벗어던졌다. 그리고 물 앞에 다다랐을 때 맨 몸으로 풍덩 들어간다. 물 위에 둥둥 떠서 바라보는 하늘은 오렌지 빛으로, 정말 눈이 부셨다. 정말 저 위 어딘가에 천국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여기가 천국인가! 이 드넒은 곳에 우리 다섯 명만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도 않았고 막상 누가 있다고 해도 나체를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왜냐하면 그들도 다 벗고 있을 테니까. 정말 자유를 만끽한다는 게 이런 걸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게 아니라 그 타인도 나와 같을 거란 생각이 마음의 안도를 가지고 그로부터 진정한 편함이 느껴졌다. 당신도 나처럼 즐기는군요. 마음껏 즐기세요, 그 느낌 나도 아니까!
그곳엔 샤워실이 따로 없었다. 매일같이 아침에 눈을 뜨면 자연스럽게 옷을 벗어던지고 호숫가에서 샤워를 했다. 화장실도 집 밖에 떨어진 허름한 작은 공간에 따로 있었는데 심지어 재래식이었다. 선진국에 사는 스웨덴 사람들이 이런 화장실을 쓸 줄이야... 나도 어릴 때 시골 할머니댁에 갔을 때 이후론 써 본 적 없었는데 말이다. 호수 샤워를 마친 우리는 맨 처음 피카를 즐겼다. 스웨덴 사람들, 커피를 정말 사랑한다. 피카는 스웨덴 사람들의 가장 큰 문화인 브레이크 타임인데 주로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를 떤다. 이들은 피카를 하루에 네다섯 번은 가지는데, 옆나라인 핀란드가 세계커피최대수요국이란 말을 들으니 말 다했다 정말. 이 또한 북유럽만의 지역적 특성에 맞게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문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북유럽의 실내 디자인이 발달한 것도 다 같은 이유라 생각한다. 오랜 겨울동안 실내에서 지내야 하니 그 공간은 꾸미는 일이 그들에겐 기쁨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특히 조명 디자인이 발달한 이유가 긴 어둠일 거라고 말한 나의 말에 리니아가 무릎을 탁 쳤다. 본인은 생각지도 않았는데 일리 있는 말이라며!
이젠 나도 채식주의자가 불러도 되겠다 할 만큼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고기를 아얘 입에 대지 않았다. 이런 불편한 시스템에서 요리를 하는 것도 일일 텐데 다들 채식을 하다 보니 요리가 어려울 것도 없었다. 싱싱한 채소 썰고, 하드브레드에 버터 발라서 먹으면 끝이니까. 물을 직접 길러오기 때문에 식수는 꽤 아껴 쓰게 되었다. 바닷물이 아니라 물이 짜지 않아서 설거지는 호숫물을 떠다가 해결하고 빨래가 생기면 손으로 직접 빨아 빨랫줄에 널었다. 오후가 되면 리니아와 나는 숲을 자주 걸었다. 숲을 거닐다 보면 어떤 환상의 공간에 빠진 느낌이 들었다. 걷다 보면 다 똑같이 보여 길을 헤매는데 어쩜 길을 잘도 찾는지, 리니아는 정말 자연이 낳은 딸 같았다. 걸으면서 해주는 그녀의 이야기는 정말 신기한 게 많았다. 나무에 가지가 이상하게도 뭉쳐있는걸 보면 저건 나무가 병이 난 거다, 어떤 나무에 핀 버섯을 보면 이름을 척척 갖다 대고, 숲에 대한 전설도 많이 알려주었다. 스웨덴 사람들에게 호수와 숲은 가장 큰 재산이다. 그들이 긴 여름휴가를 굳이 해외여행을 가지 않고도 즐기는 방법은 바로 여기 있었다. 호숫가 옆 숲에 집 하나 장만해서 여름 내내 그곳에서 지내는 거다. 어떻게 보면 정말 지루할 수도 있는데, 이 또한 이들의 정서가 아닐까 싶다. 심심할 것 같은데도 그들은 잘 논다. 노는 게 아니라 정말 자연에 도취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가끔씩 이들이 낯설어 보일 때도 있다,. 정말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인 것 같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우리 넷은 또 한 번 여행을 떠났다. 이번에 다 같이 떠나는 여행이었는데, 장소는 바로 마티가 여자친구와 함께 그 해에 산 여름별장이 있는 시골이었다. 처음에 마티가 집을 샀다고 들었을 때 놀랐던 건 가격이었다. 집 한 채와 몇 천 평의 땅과 심지어 숲까지 쳐서 일억도 안 되는 가격에 샀다. 물론 그 둘은 돈이 없다. 대출을 받아서 집을 샀고, 그렇게 무리해서 집을 산 이유는 세컨드 하우스가 필요해서였다. 잠시 헤어졌다가 다시 합친 그 커플은 미래를 함께 계획하고 내린 결론 끝에, 시골에 집을 장만해 겨울을 빼고 그곳에서 지내는 것이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그들의 직업이 장소에 묶이지 않는 것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이런 움직임은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번번하게 보이는 것 같다. 벌써 4년 전 일이지만 그때부터 이미 사람들은 유목하는 삶과 점점 자연으로 회귀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변화하고 있었다. 이 커플의 집은 꽤 오래된 건물이라 수리할 것이 많아 보였다. 집수리 하는데 돈과 시간이 많이 들거라 예상했던 나의 생각과는 달리, 이 둘은 앞으로 고쳐나갈 것들에 얘기하며 많이 들떠 있었다. 결국 맡기는 게 아니라 본인들이 직접 하겠다는 거다. 저런 용기는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할 수도 있지만 이들은 혼자가 아니라 항상 사람들과 함께 했다. 뭐 시골이라 가능한 것일 수 있지만 아무튼 이렇게 큰 일을 무턱대고 질러놓고선 걱정보다 설렘이 앞서는 그들을 보며 또 한 번 낯섦을 느꼈다. 도대체 이 인간들은 어느 별에서 온 것인가. 알고 보니 그 지역은 마티와 일리야(그의 여자친구)가 어릴 때 지내던 곳이었다. 그 둘 또한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 그 삶의 모습을 잘 안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잘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들은 물이 부족해 샤워를 최대한 하지 않았고 식수도 아껴 썼다. 왜 이렇게 그들은 굳이 불편한 삶을 살려하는 것일까? 나이가 많이 든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느 날 아침, 일찍 잠에서 깬 나는 주방에 나와 먹을 것을 준비했다. 마티가 함께 도와 우리는 각자의 그릇을 들고 나와 마당에 나와 큰 사과나무 아래에 앉았다. 일리야는 멀찌감치에서 요가를 하고 있었고 알고 보니 마티는 이미 밖에서 명상을 했다고 했다. 둘이 앉아 이런저런 대화를 하던 도중에 마티가 물었다.
“난 어릴 때 우리 집이 그렇게 부유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어린 시절 다른 친구들의 부러움을 산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스포츠야. 난 웬만한 운동은 꽤 잘하는 편이거든. “
생각해보니 리니아가 마티에 대해 말 할 때 그가 스케이트보드를 정말 잘 탄다고 들은 적이 있다. 뮤지션이기도 한 그가 몸을 잘 쓸 줄은 몰랐는데, 꽤 흥미로웠다. 그리고 내 나에겐 그런 특기가 있는지 물었다.
“음, 그게 나한테는 그림인 거 같아. 나도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고 꽤 잘 그렸거든.”
“그럼, 너 정말로 그림으로 너 꿈을 도전해 보는 건 어때?”
그가 이 말을 했을 때 기쁘면서도 가슴 한편이 뭉클했다. 오랜 시간을 그렇게 꿈꿔 왔지만 항상 무언가에 막혀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걸 많이 느꼈고 이에 많이 좌절한 나였기 때문이다.
나도 저
“글쎄,, 그럼 좋겠지. 그런데 내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해서 그게 내 미래를 이끌게 하진 않았던 거 같아. 아직도 돈 한 푼 벌지 못하는 내 상황이 난 싫어. 우리 부모님도 결국엔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그래서 난 내가 스스로 루저라고 생각한 적이 많아. 그걸 이루지 못했으니까.”
“그건 좀 안타까운데... 내 부모님은 한 번도 돈에 대해 특별하게 말씀하신 적이 없어. 우리 아빤 늘 긍정적으로 말하는 버릇이 있어, 그리고 그는 내가 아는 제일 웃기는 코미디언이야.”
실제로 며칠 후에 난 그의 아빠를 직접 뵈었다. 아들이 집을 장만했다는 소식에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친구분들이 멀리 독일에서 넘어오셨다. 우리는 함께 웃고 떠들었다. 그 와중에 일리야는 본인이 얼마 전에 그린 그림으로 나온 동화책을 들고 나와 보여주었다. 일리야는 일러스트레이터였다. 그 모습을 보며 부럽기도 했다. 마티의 아빠가 나에게 스웨덴에는 무엇하러 왔냐고 물었고 난 우리가 한 프로젝트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스웨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기, 그것도 삶을 사는데 꽤 좋은 방법이야.”
웃기려고 그냥 내뱉은 말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당연히 그게 당장 나에게 맞는 답이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삶을 사는 데 있어 꼭 무언가를 이루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이해했다. 마티가 나에 대해 어디까지 아빠에게 말 한지 모르겠지만, 이곳 먼 나라까지 날아온 여자애를 보며 단순하게 들은 생각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가끔 얼핏 내비친 불안함을 그가 읽었을지도.
이번 여행의 마지막날 우리는 다 같이 저녁에 사우나를 하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고 숲을 지나 돌밭을 달려 한참 후에 호숫가에 다다랐다. 그곳에는 인근 지역 주민들이 이용하는 사우나가 있었고 한 주민에게 부탁해서 사우나를 할 수 있었다. 해는 이미 져서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우리는 사우나를 시작했다. 피곤했는지 이반은 벌써 잠에 들어 한쪽에 눕혀 놓고 어른 다섯이서 함께 사우나실로 들어갔다. 뜨거운 공기가 내려앉은 가운데 각자 그동안의 피로를 내려놓았다. 내가 느낀 사우나는 스웨덴 사람들에게 어떤 의식과도 같았다. 그전에 무슨 일이 있었든 간에 이 공간, 그 시간만큼은 모든 게 용서가 되고 모든 걸 내려놓게 된다. 우리는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며 마음으로 위로를 전했다. 잠시 후 모두 맨 몸으로 밖으로 뛰쳐나와 물속으로 풍덩 들어갔다. 난 그날 너무 어두워 공포감에 물속으로 뛰어들지 못했다. 여름이지만 밤에 물은 굉장히 차가웠다. 사우나를 모두 마치고 나서 우리는 달빛 아래 호숫가에 앉아 시간을 조금 더 보냈다.
다음날, 추적추적 비가 내렸고 그 비를 맞으며 우리는 마티와 일리야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다시 말뫼로 떠났다. 워낙에 시골이라 차가 없는 우리에게 자전거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시몬은 일이 있어 먼저 떠났고, 나는 리니아의 집에서부터 타고 온 자전거를, 리니아도 타고 온 자전거 뒤에 이반을 태우고 먼 길을 달렸다. 조금만 가면 기차역이 아니라 정말 몇 시간은 자전거로 달려야 하는 거리인데도 한 번 불평을 않는 리니아가 난 항상 신기했다. 나 같으면 진작에 남자친구에게 아이를 맡겨 보냈을 텐데 무슨 사정이었는지 리니아는 이반을 직접 데리고 가야 했다. 가다가 화장실이 급하면 그냥 길에 서서 일을 보았다. 배가 고프면 가방에 든 과일이나 간식을 먹으면서 잠시 쉬었다. 기차역에 도착하면 자전거를 싣고 기차에 올랐다. 이런 여정이 여러 번 반복되다 보니 나도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가만히 생각해보다 그들에게 물었다. 원래 스웨덴 사람들이 이러느냐고. 웃으면 돌아온 그들의 대답은
“아니, 네가 그동안 싼 에어비앤비 숙소를 예약했고, 보통의 그 호스트들은 부유하지 않아. 그들만의 적은 돈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있어, 네가 그들의 삶에 들어온 거고. 그리고 내가 보기에 너도 그다지 평범하지는 않아.”
하하, 웃을 수밖에 없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