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
지난번 시몬과 함께 김치를 만들 때 찾았던 레시피는 김치 2킬로그램을 만드는 양이니까, 여기에 우리가 만들 양만큼 곱하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여기, 함정이 있었는데... 그 레시피에 표기된 재료의 양이 무게가 아니라 개수란 사실이었다. 여기서 파는 배추는 우리 것보다 한참 작고, 무는 기다랗고 얇았다. 배는 모양이 정말 다르고.. 이러니 개수로 따져서는 양이 정확하게 나올 리 없었다. 이 때문에 재료의 양을 미리 가늠하기 어려워 결국 어느 정도 양의 김치를 한 번은 만들어 그걸로 부침개를 만들어봐야 우리가 필요하게 될 양을 계산할 수 있었다. 재료도 필요한 걸 한곳에서 구할 수가 없어 여러 곳을 발품 팔아 찾아다녀야 했다. 한국에서 그렇게 흔한 채반이 없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적당한 걸 구하러 다녔고 김치통이 없어 최대한 큰 플라스틱 통을 샀다. 뿐만 아니라 백 킬로 단위의 배추를 잘라 손질하고 깨끗이 씻어 소금에 절였다가 몇 시간 후 다시 씻어내는 과정만 해도 엄청 일이었다. 배추가 절여지는 동안에는 서둘러 김치 속을 만들어야 했는데 이것도 왜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지! 무를 써는 데만도 일인 데다가 양념장을 만들기 위해 이것저것 갈고... 일이 끝나지를 않았다. 그렇게 며칠 공장 돌아가듯 일을 했더니 몸이 축이 나기 시작했다. 아! 난 왜 여기서 이걸 하고 있는 것인가! 한참 김치를 만들다가 가끔씩 아파트 밖 공원 벤치에 누워 음악을 들었다. 그렇게 몇 분 쉬다가 다시 들어가서 일하기를 반복했다. 한국에서 멀쩡히 잘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뭘 해보겠다고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 와서는 이런 개고생을 하는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라 해도 그들과 나는 상황이 매우 달랐다. 그들에겐 인생에 정말 추억이 될 수 있는 큰 경험일 수 있지만 나에겐 그런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전과 다르게 이번 스웨덴 여행은 조금은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외국인 노동자의 설움을 새삼 느꼈다. 괜히 드는 소외감은 떨쳐낼 수 없는 외로움이었다.
어렵사리 얻어낸 우리만의 레시피로 열흘 동안 쓸 김치를 우리는 매일같이 만들었다. 그만해도 될 것 같다는 나의 의견을 듣지 않은 친구들의 요구로 끝내 우리는 650킬로의 어마 무시한 양의 김치를 만들었다. 결국행사 기간 동안 다 쓰지 못 한 김치는 한 포기씩 통에 담아 따로 팔았는데 이 또한 인기가 좋았다. 페스티벌이 시작하기 일주일 전쯤, 주최 측에서 모든 참가자들을 불러 모아 일정에 대한 공지를 알리는 등의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이 날 나와 리니아가 참가해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좀 놀라웠다. 음악 축제 치고는 요구사항이 꽤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채식주의 소비자가 많을 것을 예상하는 주최 측에선 비건 푸드를 판매하는 부스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이에 ‘글루텐 프리’의 식재료를 쓸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 행사 기간 내내 감독관이 순찰을 할 것이고 각 부스마다 음식의 상태를 확인하는데 이때 정상 범위를 넘는 ph 수치가 발견되는 부스는 당장 정지를 당할 것이라 권고했다. 사실 이 때문에 우리의 두 번째 메뉴였던 김치김밥이 김치볶음밥으로 바뀌었다. 실온에서 밥이 얼마나 오래 좋은 상태로 유지될지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손님에게 제공하는 식기에 절대 플라스틱을 써서는 안 되었다. 다행히 종이 대체 용품이 많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부분이다. 그리고 쓰레기 처리 관련과 시간 등 지켜야 할 규율을 알려주었고 각 참가 부스의 제안 사항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체크했다. 처음엔 너무나도 철칙 같은 이들의 모습에 긴장이 되었지만 나중에 점점 느끼게 된 건, 이들이 이렇게 초반에 으름장 놓기를 잘한다는 것이다. 여러 부분에서 스웨덴은 초반에 진입장벽이 높아 보이지만 알고 보면 이들만큼 관대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도 없다. 결국 끝에 가선 ‘아 이들도 마음 여린 사람들이구나’라고 자주 느꼈다.
행가 전 날 참가자들 모두 각자의 부스를 정비하느라 바빴다. 우리 또한 미리 가서 고르고 주문했던 업소용 냉장고와 조리대 등을 그날 받아 설치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처음인 우리는 다른 부스에서 하는 걸 보고 얼추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우리만 초짜인 게 분명하다. 알고 보니 다들 근처에 레스토랑을 직접 운영하고 있는 진짜 셰프들이었다. 우리가 정말 운이 좋았다. 하지만 그만큼 경쟁력에서 뒤질 수 있다는 거고 그걸 감안하고 우리는 그저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대망의 결전의 날을 기다렸다.
다음 날 본격적으로 말뫼 뮤직 페스티벌이 열렸다. 들었던 만큼 규모가 매우 컸고 사람들도 엄청 모여들었다. 엄청난 인파를 거느린 이 행사에서 음식만 잘 팔면 정말 큰돈을 벌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괜시레 기대가 커지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거대한 무대 건너편에 술을 파는 큰 바가 있었고, 그 옆에서부터 시작해 음식부스가 전체 광장을 에워쌌다. 그중 한쪽 코너에 자리를 잡은 우리의 부스는 직접 나뭇가지로 만든 간판이 크게눈에 띄지 않았지만 ‘한국사찰음식’이란 이름을 보고 호기심에 들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진짜 한국식 김치를 맛보려는 사람들과 진짜 한국사람이 파는 건지 반가운 마음에 찾아오는 한국 사람들도 있었다. 이번 행사의 책자에 우리 부스가 맨 처음 페이지에 실렸고, 행사 도중에 한 라디오 진행자가 인터뷰를 하러 왔다. 가장 궁금했던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의외로 뜨거웠다. 처음 보는 김치 팬케이크와 김치볶음밥은 ‘김치’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호감을 사는데 충분했다. 행사가 반쯤 치러질 때쯤, 어디서 또 그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리니아는부스 한쪽에 ‘김치 워크숍’이라는 팻말을 걸고, 참가자를 모집하는 내용의 글을 공지했다. 그리고 얼마 못 가 팻말 하단에는 메일 주소가 많이 달렸고, 이 때문에 우리는 행사가 끝나고 날을 잡아 김치 워크숍을 가졌다. 행사 시작부터 마지막 날까지 아는 얼굴의 이웃들이 찾아왔고 친구들의 지인과 그들의 지인까지, 소식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초반에 아마추어 냄새를 풍겼던 우리의 부스는 날이 갈수록 자리를 잡아갔고 밥을 볶는 나의 스킬은 스스로 놀랠정도로 능숙해졌다. 부끄러워 나서지 못했던 홍보도 직접 거리에 나가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행사 도중에도 사건은 끊임없이 터졌지만 우리 넷은 차분하게 서로를 응원하며 해결해 나갔고 눈물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열흘을 그렇게 정신없이 보냈다. 행사가 끝난 다음날, 다 같이 모여 부스를 정리하고 간판을 내린 후 짐을 하나하나 챙겨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우리의 프로젝트가 결말을 맞았다. 행사가 끝난 뒤에도 우리는 할 일이 많았다. 주방을 빌려 썼던 이주민센터에서 이틀 동안 김치 클래스를 가졌다. 이민자들에게 김치를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김치부침개도 함께 만들었다. 그리고 행사 중반에 약속했던 김치 워크숍을 치렀다. 미처 다 쓰지 못한 많은 양의 김치는 한 포기씩 통에 담아 리니아의 집에 두었던 업소용 냉장고에 보관해 동네 주민들에게 온라인 예약제로 마저 다 판매했다. 사용했던 장비들은 다시 재활용 센터로 팔았고, 그간 모아두었던 영수증을 분리해서 파일에 정리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다 같이 마티가 이번 여름에 여자 친구랑 샀던 시골집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우리는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브리핑을 가졌고 이 또한 내게 작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사실 준비 기간 동안 우리의 팀워크가 내내 좋았던 게 아니었다. 시몬의 불성실함으로 초반에 안 써도 됐을 지출로 예산에 타격을 입었고 이걸 수습하느라 마티가 꽤 힘들어했다. 나 또한 레시피를 정하면서 가장 가까이 지냈던 시몬과 의견 충돌이 많아 감정이 상했고,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그를 보며 리니아 또한 불만이 늘어나기 시작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다 문제가 있기 마련이고 이제 다 끝났으니 그냥 묻어가나 싶었는데 뒷풀이로 여행까지 온 마당에 자리를 잡고 굳이 이번 프로젝트에 관한, 후 브리핑을 하자는거다. 맘 불편하게... 빙 둘러 앉은 자리에먼저 마티가 운을 떼었다. 시몬에게 못마땅했던 개인적인 감정과 객관적으로 드러난 그의 실수의 결과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내는데 당사자도 아닌 내가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로 팩트를 날리는 마티가 냉혈인간으로 보였다. 이를 듣는 시몬의 마음이 어떨지 너무 신경이 쓰여 그의 표정을 계속 살폈다. 다행히 시몬은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쿨하게 인정했다. 그리고 다시 웃음이 이어지는 그들의 반응에 난 너무 얼떨떨했고 여전히 그 자리가 편하지 않았다. 마침내 순서는 어떻게든 피하려 했던 나에게도 돌아왔고, 말을 떼기 시작하기까지 오랜 뜸을 들었는데도 그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주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도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진심이 튀어나와 버렸다. 그동안 리니아와 시몬에게 서운했던 마음을 말해버렸고 이로 인해 그들의 당황스러운 얼굴을 보고야 말았다. 사실 내가 이 타이밍에 영어를 능숙하게 했더라면 말을 돌려서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짧은 나의 영어실력에 비유나 은유 따위 없이 필터 없이 팩트만을 나불거리고 있었다. 약간 민망한 감정으로 그들의 대답을 기다렸는데, 이들도 갑자기 나에 대해 서운했던 부분을 털어내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그들의 서운함에 나 또한 놀랐다. 마침내 서로의 마음을 다 듣고 난 후 우리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적어도 그 자리에서는 그랬다.) 그리고 그들은 다음에 이런 기회가 또 올 것을 대비해 이번에 저질렀던 실수와 부족함을 어떻게 채울지에 대해 토론했다. 친구끼리 하는 프로젝트인데도 이렇게 마무리하는 그들의 방식에 좀 낯설었지만 이런 자리를 꼭 불편하게만 여기는 나의 편협함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며칠 후 김치 클래스를 가졌던 이주민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김치 클래스 이후, 이 센터에서 운영하는 카페에 새로운 브런치 메뉴로 ‘김치 팬케이크’가 등극했고 반응 또한 괜찮다는 아주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19년, 이곳에 다시 찾았을 때 난 그 당시 아시안 마켓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식재료를 발견했다.
바로 ‘부침가루’!!!!!
혼자서 뿌듯한 마음으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