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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ILLUSTRATOR Nov 27. 2022

스웨덴에서 사찰음식

첫 번째 프로젝트

3개월의 기나긴 스웨덴 여행 후 서울로 돌아온 나의 일상에 변화가 생겼다. 남편은 우리가 없는 동안 혼자서 이사를 마무리했고, 직장을 그만두고 원하던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난 이듬해 초부터 정말로 사찰음식을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운이 좋게 마침 사찰음식 레스토랑을 운영하려고 준비 중인 스님 밑에서 일을 도와드리며 수강을 무료로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서울에 오겠다던 리니아가 정말 우리 집에 왔다. 변함없는 그녀의 돌발 행동이 발동했고 결국 우린 큰 일을 내고야 말았다.


친구들이 한국에 왔지만 주중엔 사찰음식을 배우러 다니느라 시간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날 만든 음식을 집에 싸와서 저녁마다 한국 사찰음식을 선보일 수 있었다. 밥을 기본으로, 다양한 반찬들이 항상 올라오는 밥상 차림에 친구들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음식에 즐거워했다.


“매번 이렇게 음식을 하면 일이 너무 많지 않아? 한두 가지도 아니고...”


그동안 생각하지 않았던 건데 이 질문에 우리네 식습관과 그들과의 다른 큰 특징을 발견했다. 바로 음식을 저장하는 문화! 우리에게 냉장고는 밑반찬을 저장하는 창고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들에겐 그 목적보단 싱싱함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쓰는 게 더 익숙하다. 그들은 매번 음식을 해 먹지만 우린 찌개나 찜 등 메인 요리를 하고 나머지 밑반찬은 냉장고에서 바로 꺼내 먹을 수 있으니 어찌 보면 더 간편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가장 새로운 건 바로 ‘김치냉장고’였다. 냉장고 한 대가 전부 김치를 위한 저장고라니! 일 년 내내 두고 먹는 말에 더 놀라워했지만 발효음식에 큰 특징이자 장점이 오래 묵힐 수 있다는 것에 감탄을 터뜨렸다.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김치는 참 바르고 유익하다.

어느 날,  저녁 메뉴를 고민하던 중에 그동안 김치를 이용한 다름 음식을 해주지 않았다는 벌 받아야 할 나의 과오를 깨닫고선 김치부침개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참치를 넣으면 더 맛있을 테지만 채식주의자인 그들을 위해 김치만 넣어도 맛 보장인 부침개를 만들었다. 그리고 간을 더할 간장소스를 만들어 내었다. 새로운 메뉴의 등장에 리니아는 “이게 뭐야? 냄새 좋은데!”라며 반가운 표정을 했다.


“김치 팬케이크!”

김치로 만든 팬케이크란 말에 호감이 간 그녀는 바로 맛을 보고, 다시 한 조각을 간장 소스에 찍어 먹더니 눈이 휘둥그레지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우와! 이거 정말 대단한데! 정말 맛있어! 김치로 이런 걸 만들었다고? 처음 보는 맛이야! 당장 시몬에게 말해야 돼!”


며칠 전 스웨덴으로 먼저 돌아간 시몬은 안타깝게도 김치부침개 맛을 보지 못했지만, 리니아가 영상통화로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는 바람에 그 맛을 무척이나 궁금해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진작에 해줄걸..! 리니아는 맥주 안주로 딱이겠다며 계속 칭찬을 연발했다. 그리고 내게 던진 한마디!


“우리 이거 스웨덴에서 팔자!”


이건 또 뭔 소리?! 내 귀를 솔깃하게 한 그녀의 말에 난 의자를 바짝 끌어당겨 앉았다.


“곧 있으면 여름이잖아, 축제의 계절이라고! 스웨덴에는 여름에 뮤직 페스티벌이 엄청 크게 여러 곳에서 열려. 거기서 이 김치 팬케이크를 파는 거야! 축제 기간이라 사람들은 술을 마실 거고 이건 안주로 정말 완벽해, 그리고 무엇보다 김치로 만든 거잖아! 분명 사람들이 좋아할 거야, 내가 장담할 수 있어!”


그 순간 리니아 뒤로 광채가 눈부시게 반짝거렸고 그동안 기약 없이 의지로 버틴 사찰음식을 배우는 동안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내 입가는 저만치 귀에 닿아있었다. 저런 천재..!

그녀의 하이파이브에 찰지게 손바닥을 마주치고 자리를 잡고 앉아 우린 깊은 대화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즈음은 그녀가 곧 스웨덴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고 떠나기 전에 무언가 떠올라 다행이었다. 그녀는 여기 올 때 나랑 무언가를 해 볼 생각으로 다짐한 것이 있었고 이를 위해 우리는 그동안 광장시장, 동대문 시장을 돌며 옷을 만들 소재에 대해 연구하고 아이디어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확실한 아이템이 잡히지 않아 갈피를 못 잡고 있던 타이밍에 올 것이 온 것이다. 그게 음식이 될 줄은 몰랐지만 마침 음식을 배우고 있던 내게는 좋은 아이디어였고 어쩌면 이 기회로 스웨덴에 발을 푹 담그게 될 무언가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하게 되었다. 그날 저녁, 리니아는 발 빠르게 한 페스티벌 주최자에게 메일을 보냈고, 스웨덴에 돌아가면 더 알아보고 되는대로 신청서를 넣겠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녀와 이반이 떠났다. 한동안 왁자지껄했던 우리 집은 다시 조용해졌고 나는 리니아의 소식을 기다리며 꾸준히 사찰음식을 배우고 있었다. 우리의 프로젝트는 이미 진행 중이었고, 스웨덴에서 리니아는 여기저기 신청서를 넣고 함께할 멤버를 구하고 나는 한국에서 메뉴를 정하고 이에 대한 준비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의 그룹 채팅 창에 영상 통화가 걸려왔다.


“자 모두 잘 보이는 거지? 먼저 전할 소식은 우리가 드디어 한 뮤직 페스티벌에서 자리를 얻었다는 거야, 바로 ‘말뫼 뮤직 페스티벌’!. 우리가 사는 도시 말뫼에서 열리는 거고 꽤 큰 규모가 될 거야.  마지막으로 남은 한자리가 우리에게 승인이 났어. 그리고 함께 할 멤버로 마티가 들어오게 됐어. 염려하고 있던 참가비 문제는, 마티가 엄마한테 도움을 받기로 해서 잘 해결됐어!”


말뫼 페스티벌.

그곳에서 우리는 ‘Korean Temple Food'라는 이름을 걸고 부스에 참가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 이 페스티벌의 음식 부스에 참가자들은 현재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들이 대부분이었고 들어가기에도 어려운 자리였다. 하지만 우리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우리 팀의 이름과 메뉴 때문이었다. 덜컥 이 자리를 꿰차게 될 줄이야. 이제 정말 잘해야 하는 일만 남았다. 8월 10일-17일까지, 열흘 동안 이어지는 기간에 팔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메뉴를 김치부침개와 김치김밥, 두 가지로 정했고 이를 위한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만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일지 계산해서 양을 가늠하고, 현장에서 음식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사전 조사가 필요했다. 그리고 나에게 내려진 가장 큰 미션은 그 많은 김치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전체적인 계획이었다. 부침개를 만들기 위해서는 익은 김치가 필요하고 김치를 익히기까지 적어도 일주일은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김치를 단 하루 만에 만들 수는 없는 일이고 며칠 동안 김치를 만들고 또 얼마나 만들어야 하는 거지? 부침개 하나를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김치가 들어가야 하나? 김밥을 내가 김밥천국 아주머니만큼 빨리 말 수 있을까? 젠장! 거기에 단무지는 있나? 아니..... 김밥용 김은 있었나? 세상에나! 이거 정말 큰 일 났다.

우리의 소식을 들은 스님께서는 거의 나를 혼내실 만큼 어이없어하셨다. 일을 벌인 담대함은 크게 봐주셨지만 그런 큰 행사 경험이 없는 우리가 해내기에는 무리라며 걱정하셨다. 그리고 그 메인 메뉴가 김치란 사실에 혀를 내두르셨다. 그리고 한국 사찰음식이란 타이틀을 걸고 먹칠할 생각 말라는 스님의 매서운 당부에 난 매우 큰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점점 숨통이 조여오자 나는 스님을 모시고 갈 생각까지 하고 친구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나의 심정을 듣고 이해 한 친구들의 대답은 의외였다.


“우리 부스에 스님이 서 있으면 인기는 많을 거야 하하. 하지만 들어봐, 이건 우리의 한 프로젝트고 네가 이에 대한 부담을 느낄 거 없어, 우리가 팔 음식이 김치고, 특히 채식주의자에게 팔거라 사찰식 김치를 만들 거지만 이게 사찰음식의 전부라 일반화할 수는 없어. 어찌 보면 우린 그 이름을 이용하는 거고 사찰음식의 정체성을 무너뜨리거나 그 정의를 훼손할 그 무엇도 하지 않아. 스님이 직접 오시겠다면 국제 간 교류 사업이 될 테지만, 이건 우리끼리의 개인적인 프로젝트야. 스웨덴에서 이걸로 너에게 딴지를 걸거나 또 큰 기대를 하지도 않을 거야.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지 마. “


사실은 걱정이 많이 되었다. 혹시라도 이게 미디어에 실려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내가 스님도 아닌데 사찰음식이란 이름을 써도 되는 걸까. 하지만 친구들의 말을 듣고 마음의 부담을 덜기로 했다. 만약에 이 일로 나중에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건 그때 생각하기로 했다. 당장은 김치를 만들 것에 대한 계획과 두 번째 메뉴에 대한 고민이 먼저였다. 사찰식 김치를 만들거라 액젓을 쓰는 대신 집간장을 써야 했고 이는 지난 2월에 스님과 함께 된장을 담그면서 나온 간장을 가져가기로 했다. 밖에서 쌀밥을 오랜 시간 보관하기 위해서는 스티로폼이 유용할 것이라는 것, 갑자기 모여들 사람들을 대비해 음식을 80% 이상은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한다는 등의 스님의 조언을 노트에 받아 적었다. 그리고 가서 잘하고 오라며 용돈도 챙겨주시며 응원해 주시는 스님의 마음을 받아 난 다시 스웨덴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탔다. 이번엔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난 2018년 8월에 열릴 행사에 한국 음식을 팔러 스웨덴에 가게 되었다. 지난번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날, 리니아의 부엌 바닥에 앉아 한참 수다를 떠는데 마티가 그랬다.

언젠가 우리 같이 꼭 돈 버는 일이 아니더라고 같이 무언가 일을 한 번 내보자고! 그리고 내가 그랬다.


“그래, 팝업 레스토랑 어때? 시몬도 지금 셰프니까 나랑 같이 음식하고 마티와 리니아는 기획하면 되잖아!”


이래서 말조심하라는 거다.


페스티벌이 시작되기 3주 전에 난 말뫼에 도착했다. 이번엔 일층의 클래스, 쥬시 커플이 여행을 떠나 그들의 아파트에서 내가 지내게 되었다. 물론 돈 같은 건 없다. 그저 그 집의 식물에 물을 주는 것이 전부였다. 다시 만난 이웃들은 나를 반갑게 맞이해줬고 이 프로젝트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리니아의 엄마가 지원군으로 나서 이반을 돌봐주기로 했다. 음식 준비를 위한 장소로 집 근처의 다문화 프로그램 문화센터의 주방을 이용할 수 있었고 이에 대한 대가로 김치 워크숍을 가지기로 했다. 준비 기간 중 시몬의 직장 동료가 음식을 도왔고, 지원군이 필요하다는 나의 부탁에 멀리서 칼이 와주었다.

쥬시의 집에서 열심히 김치 속을 만드는데 누군가가 들어왔다. 나의 이름을 부르며 크게 미소 짓는 그에게 포옹을 하며 반가움을 전했다. “마티!!!!!!”

그리고 그의 옆에, 그의 오랜 연인 일리야가 함께 있었다. 그녀 또한 우리를 도울 수밖에 없었고 우리 다섯은 한 달 동안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매일 아침마다 만나 회의를 하고 의견 충돌에 싸우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외국인과 친구가 되기도 힘든데 내가 그들과 싸우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지 못했던 나의 불만들은 쌓여만 갔고, 결국은 폭발했다. 웃고 울며 난리 부르스를 쳤던 2018년 스웨덴의 여름은 40도를 웃돌았던 기후 이상에 우리의 열기를 더해 아주 뜨거웠다.

다음 에피소드에 이 치열했던 여름의 이야기가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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