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말이 안 통해도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하니까 별 무리가 없을 줄 알았다. 그리고 짧은 영어라도 의견을 전달할 수 있으니 어느 곳에서도 큰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그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나라 언어를 제대로 할 줄 모르면 그야말로 왕따가 된다.
독일어를 하는 이놈의 나라 사람들은 영어를 진짜 대부분 못한다. 스웨덴에 있을 때는 동네 할머니들도 기본적으로 하길래 대부분이 그럴 줄 알았다. (프랑스를 제외하고)
한국 사람들도 영어 잘 못하지 않나라고 반박하면 안 된다. 한글은 기본적으로 라틴어와 멀리 동떨어진, 세계에 단 하나뿐인 독창적 구조로 창조된 우리나라 말이라, 라틴어를 뿌리에 둔 많은 서양권의 언어와는 특별하게 다르다. 영어든 프랑스어든 독일어든 그들이 가진 알파벳과 문장 구조는 조금씩 특징이 있기는 하지만 상통하는 면이 많다. 감히 말하건대 영어가 공용어로 상용됨을 알고 나서도 영어를 배우지 않은(우리보다 배우기 훨씬 쉬웠을) 이들의 게으름에 잔소리를 하고 싶다. 결국 내가 하고픈 말은, 독일어가 어렵고 그래서 여기서의 삶이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 나의 마음가짐은 달랐다. 영어도 영어지만 다른 외국어를 배우면 배울수록 그 나라의 정서를 알아가는 기쁨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 그런데 이건 뭐랄까, 사랑하지 않는 대상을 억지로 그래보려고 애쓰는 것 같다. 이 나라 사람들에게 그렇게 정이 가지를 않는다. 독일어의 발음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언어가 딱딱해서 사람들도 딱딱한가 보다.
현재 남자친구의 아빠와 그의 와이프(두 번째 결혼)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독일어 수업을 하고 있다. 사실 이걸 시작하게 된 계기도 나름 재미있다. 지난 여름 남자친구의 아버지는 우리를 점심 식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에 15분 늦었다는 이유로 문 앞에서 돌려보냈다. 그런 냉혈인간이 웬일로 이번에 나를 배웅하러 공항까지 와 주었다. 집에 가는 길에 잠시 맥도널드에 들러 점심을 먹는데, 독일어 공부 얘기가 그 자리에서 나왔다. 이번이 두 번째로 오스트리아에 오는 것이었고 이번에 나는 독일어 학원을 다니지 안기로 했다. 한 달에 50만 원을 내야 하는 게 솔직히 부담이기도 했고 유튜브에 무료로 떠돌아다니는 강의를 내가 꾸준히 듣기만 한다면 혼자서도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세 달 동안 혼자 공부를 해 본 결과, 누군가와 독일어로 대화를 하는 게 아무래도 효과적일 거라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순간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의도를 숨긴 채 남자친구에게 말했다.
“ 오스트리아에 퇴직하고 일 안하는 사람들 많잖아, 그 사람들 맨날 심심할 텐데 나랑 독일어 공부를 하면 괜찮지 않을까?”
사실 그 아버지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직접 물어봐도 되지만 저번의 경험으로 난 괜히 말 꺼냈다가 차갑게 거절당할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그다음 주에 남자친구로부터 이에 대한 아버지의 제안을 들었다. 나만 괜찮다면 그가 사는 곳에 내가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독일어 수업을 하면 어떻겠냐고 말이다. 본인보다 그의 와이프가 이에 흥미를 꽤 느꼈던 모양이다. 아무튼 그 뒤로 나는 매주 그들과 수업을 하는데 가만 보니 나보다 그들에게 이 수업이 삶의 활력을 주고 있다는 게 보였다. 유아 수준의 독일어를 가르치면서 어리숙한 나의 발음을 들으며 가르치는 즐거움과 뿌듯함을 느끼는 게 보였다. 사실 그들에게 배우고 있는 커리큘럼은 학원에서 이미 뗀 거라 나에게는 너무 쉬운 단계지만 굳이 그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둘의 작은 열정적인 모습을 보는 게 내게도 작은 기쁨이기 때문이다.
3년 정도면 귀가 트인다고 하는데, 지금 내 상황이 곧 또 한국으로 돌아가야 해서 꾸준하게 내가 공부를 할지 의문이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렇게 말이 안 통하니 그들의 대화에 낄 수 없고 나중에 알고 보니 내 말을 하는 거였는데 두 눈 뜨고 그것도 못 알아들었다는 사실에 기각 막히고 사람 앞에 두고 못 알아듣는 걸 알고서 아무 말이나 했다는 데에 자존심이 팍 상했다. 알아듣는 게 없으니 어린애가 된 것 같고 그러다 보니 정말 모자란 행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드는 생각은 한국에만 와봐라…
그래서 나는 남자친구와 함께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 가는 날에는 마음의 준비를 한다. 오늘도 혼자 놀아야 하니 어떤 책을 읽을까? 어떤 동영상을 볼까? 그리고 또 이런 부적응을 즐기기도 한다. 어차피 못 알아들으니 사람들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아도 돼 혼자 생각하는 버릇이 더 길어지고 한국말로 떠들때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가끔 즐기기도 한다.
말이 통해도 마음이 통하지 않는 사람.
말이 안 통해도 마음이 통하는 사람.
이 중에 나는 후자를 선택했고 이게 낫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모르겠다. 말이 통하는 나라에 혼자 편하게 살면서 공용어인 영어 하나만 제대로 해서 세계를 여행하는 삶이 벌써 거창하게 그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