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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ILLUSTRATOR Jul 15. 2023

오마이빈 (프롤로그)

틴더

일단 ‘빈’이라는 단어가 생소한 사람들을 위해 알려두겠다. 빈은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의 독일어식 명칭이다.

Wien = Vienna


독일어를 모국어로 쓰는 오스트리아인의 정식 수도 이름인 거다.


굳이 이 설명을 붙이는 이유는 내가 그걸 전에 몰랐기 때문이다. 빈이란 곳을 들어는 봤지만 그게 비엔나인줄은 몰랐다. 그리고 비엔나가 오스트리아의 수도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빈은 음악의 도시이며 많은 한국의 음대생들이 유학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빈에 대한 간단한 소개다.


이렇게 무관심했던 도시가 내게 생활터전이 되었다. 불과 1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그동안 나의 과거사를 뚝 잘라놓고(글의 연결성을 위해 간간히 언급할 가능성은 두고)

작년 6월부터 내게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다.


2022년 6월 제주도 서귀포시 화순리.

그 당시 난 동네 성박물관에서 청소부로 아침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하루에 4시간씩 일하고 있었다. 일부러 오전 일을 구한 이유는 오후에는 진짜 내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일을 마치고 점심을 간단히 먹은 후 나는 아이패드를 꺼내 그림을 그렸다. 2년 전에 시작한 동화책 일러스트 작업을, 나는 같은 작가와 시리즈물을 만들고 있었는데 4권째 책의 그림을 그리는 중이었다. 스스로 유배지라 생각했던 고독한 제주도의 삶을 버티게 해 준 유일한 나의 즐거움이자 희망이었다.


한 편, 얼마 전 깊게 빠졌던 종교에 의심이 들어 그 공동체를 나온 후 나는 사람에 대한 열망이 가득 차 있었다. 부연 설명을 하자면, 고독했던 외로움을 극복하고자 종교에 발을 담갔지만 내게 필요한 건 ‘영’이 아닌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삶을 그리워했다.


그곳에서 친구를 만들기란 쉽지 않았다. 내가 쓴 방법은 데이팅 앱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다. 유치하고 부자연스럽고 왠지 듣기 거북한 점이 있다는 것,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사람이 혼자 고립되다 보면 생각의 범위도 같이 좁아지는지 그렇게 만나는 게 유일하다고 생각했고, 쉽다고 생각했다. 부담도 없었다. 말 몇 마디 해보고 대화가 안 통하면 끊으면 그만이었다.

이 앱을 1년 정도 꾸준히 이용했다. 처음엔 호기심이었고 점점 재미를 들렸다가 어떤 사람과 진지한 관계를 종종 생각해보기도 했다. 보기 좋게 사기도 당했고 (내 월급에 7배나 달하는 금액을 내 스스로 남에게 덥석 내줬다.) 이로 인해 실망도 하고 울기도 많이 했다. 다음번에 만나는(실제 만남이 아닌 랜선만남)에게 의심이 쉽게 들어 이 놈이 진심인지 아닌지 가려내는데 시간을 많이 썼다.


이 앱으로는 진정한 사랑이나 친구는 만들 수 없다는 걸 늦게 깨달았지만 이미 중독이 되어버린 나는 이를 끊을 수 없었다. 대신 다르게 이용했다. ‘하루짜리 친구’를 만들기 시작한 거다.

아침에 누군가와 매칭이 되면 그 사람과 하루 대화하고 다음날이면 그 사람과의 대화창을 삭제하고(그럼 다시는 대화가 불가능하다) 또 다른 사람을 찾았다. 이런 식으로 쓰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럴수록 진짜 사람과의 만남에 대한 그리움도 같이 커가기 마련이었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온 나는 침대에 누워 앱을 켰다. 그리고 일할 때 생각했던 걸 기억해 내 위치를 다시 설정했다. 그 당시 나는 혹한 제주도를 한 해 겪은 후라 다가오는 겨울에는 따뜻한 나라에 가 있으리라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앱에 환경설정에서 나의 위치를 ‘발리’로 설정했다. 잠시 후 나를 ‘라이크’한 이성의 리스트가 올라왔고 화면을 죽 내려가며 상대를 고르는 작업을 했다.

그즈음 나에게는 상대방의 얼굴과 프로필을 보고 대강 내게 맞는 사람일지 아닐지를 어렵지 않게 가려낼 수 있는 눈썰미가 생겼다. 쓸데없는 대화시간을 줄이기 위한 공략 중 하나이다. 별 볼일 없자 나는 곧 나의 위치를 다시 바꾸었다. 태국. 여기도 나쁘지 않지…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편하게 누워있는데 알림이 왔다. ‘누군가 나를 슈퍼라이크 했으니 바로 확인하세요’라는. 이 앱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슈퍼라이크는 제한적이라 되도록이면 아껴두었다가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만 보내는 소중템이었다.


누굴까?

프로필에 별 말이 없고 사진도 달랑 하나였다. 매력적인 얼굴도 아니고 어필하려는 노력도 한 자 보이지 않는 이 사람이 나를 슈퍼라이크 했다? 일단 고마운 마음이 있어 나도 라이크를 했다.

사실은 그 정성 없음이 진정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믿음이 있었고 한 번 대화하는 것 정도야 괜찮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그에게서 인사말이 왔다. 난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도중에 이 사람이 말을 걸면 대답을 해주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저녁쯤 이 사람은 또 메시지를 보냈고 나는 굳이 대화창을 삭제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점점 나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는 눈치가 보였다. 그는 내가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 물었고 난 내 인스타계정을 알려주었다. 한참 후 그는 나의 그림에 굉장한 찬사를 보냈고 이에 나도 이 사람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가 오스트리아 사람이고 현재 발리에 어떤 연유로 오게 되었는지 들었다.


그의 얘기는 솔직했고 진정성이 느껴졌다. 다음날에도 난 이 사람과의 대화창을 지우지 않고 우린 계속해서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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