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 ILLUSTRATOR Jul 15. 2023

가슴통증

3년간 날 갉아먹었던.


그 당시 우리 집에 에어비엔비 숙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안방을 게스트에 세내어주었기 때문에 나는 작은방에서 아들과 작은 침대에서 함께 자야 했다. 당연히 자세가 불편했지만 그럭저럭 잘 만 했다. 어느 날 새벽, 난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는 걸 느꼈고 무언가가 가슴을 꾹 누르고 있는 걸 느껴 공포감에 눈을 번쩍 떴다. 하지만 내 위는 공허한 공기뿐이었다. 옆을 보니 아들이 긴 잠에 빠져있었다. 다시 숨을 들이쉬는데 너무 힘이 들었다.


순간 무한한 공포감이 엄습했고 당장 몸을 일으켰다.


그날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난 계속해서 밤마다 이 고통에 시달렸고 잠버릇이 있는 아들이 혹시나 나를 치는 바람에 순간 숨이 멎을까 봐 불안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적어도 3번 많으면 6번까지 자는 동안 잠에서 깼다.


며칠 후 난 병원을 갔다. 먼저 찾아간 곳은 심장관련과였다. 숨이 안 쉬어지니 뭔가 심장 쪽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닐까 생각했기 재문이다. 병원에서 하라는 검사를 다 마치고 나중에 결과를 받아들었을 때 아무 이상이 없다는 걸 알고 안심했다. 그리고 또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고민했다. 심장이 아니면 어느 쪽일까.. 통증이 있으니 이번엔 정형외과를 찾아갔다.


가슴에 통증주사를 몇 번 맞았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엔 흉부외과를 찾아갔다. 거기서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의사는 먼저 내가 어느 과 검사를 이전에 받았었는지 물었다. 그리고 증상을 듣더니, 자기 경험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본인도 비슷한 통증을 가졌었다고. 본인은 공황장애란 확실한 병명이 있었지만 내 경우엔 병명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나와 비슷한 증상으로 내원하였으나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병명을 알기 위함이라면 1000가지도 넘는 검사를 할수는 있다고 했다. 하지만 병명을 알고 나서 치료 또한 병명을 얻은 만큼이나 다양할 것이고 어떤 치료를 취할지 또한 모두 내 선택이라고 했다.그리고 한 가지 이야기를 더했다. 전 세계적으로 나와 같은 증상을 가진 환자들을 임상실험한 자료를 보면, 그들은 특별한 처치를 받지 않고 2~3년 안에 통증이 모두 사라졌다는 결과를 얻었다는 것이다. 결국 난 흉부외과에서는 아무런 검사를 치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통증은 여전했고 이에 삶의 질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추하고 기억하기 싫은 것들인데...


1. 마음껏 웃을 수 없었다. 가슴이 부풀어지도록 웃으면 통증이 느껴졌다.

2. 몸을 완전히 옆으로 틀수 없었다.

3. 대변을 시원하게 누지 못했다. 힘을 주면 가슴에 통증이 찌릿하게 느껴졌다

4. 뛸 수 없었다.

5. 잠을 편히 못 잤다.

6.건강 염려증이 생겼다.

7. 잇따라 허리 통증, 골반 통증이 다시 시작됐다.

8. 폭식이 생겼다. 스스로를 절제할 수 없었고 남들 없을 때 몰래 먹는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9. 우울증이 생겼다.

10.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다.


매일 아침 난 울면서 잠을 깼다.통증으로 이미 의식이 깨어진 상태에서 고통으로 인한 눈물이 떨어지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하,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처절하고 지금 너무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다음 찾아간 곳은 내과였다. 위내시경, 피검사 등등하라는 걸 다 했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역시 찾지 못했고 마지막으로 한 곳에 희망을 남겨두었다. 양방이 모두 통하지 않았으니 한방으로 가보자. 며칠 동안의 검색 끝에 한 한의원을 찾았다.


예약한 첫날, 나는 현재 내 몸 상태를 체크하기 위한 몇 가지 검사를 했다. 그리고 받아든 결과가 아주 흥미로웠다. 나를 앞에 앉혀놓고 설명하는 간호사의 말투는 계속 미안한 감이 돌았다. 여태 이런 환자를 못 봤다는 거다.

겉으로 봐서 난 무척이나 멀쩡한데 내 속은 빨강, 검정. 매우 위험한 상태였다. 실제로 그 결과는 색깔로 구별하게끔 되어있었다. 가장 좋은 순으로 파랑-초록-노랑-주황-빨강-검정.

보통 내 나이대에게서 나오는 색은 파랑에서 노랑사이 라고 했다. 내 결과지는 온통 빨강이거나 검정이었다.


간호사가 비유하기를, 내 차는 여태 너무 달려와서 연료도 없고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난 쉬지 않고 더 달리려고 하려는 상태라고 말했다.

쉬어야 할 때는 쉬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몸의 신경이고 뭐고 다 망가진 상태라고.

이런 충격적인 결과를 받고 난 친구를 찾아갔다. 그 친구는 내 얘기를 듣고 자신도 그 검사를 해보고 싶다며 남편과 동행했다. 그들의 결과지를 나중에 보았는데 정말 파랑, 초록, 노란색만 있었다.

이후 난 6개월 동안 매주 그 한의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결과가 어땠냐고?

통증은 여전했고 한의사도 처음 장담으로 시작했던 자신감이 점점 의심으로 물들기 시작한 게 보였다. 아 이분도 어쩔 수 없어 당황하고 계시는구나. 그리고 난 어느 날 이 한의사의 말을 듣고 더 이상 이곳에 오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6개월 동안 치료를 했는데도 큰 변화가 보이지 않아요. 제 생각에, 조심스럽게 말씀드려봅니다만, 아직 정신과 진료를 받아보지 않았다면 그쪽으로 가보기를 권장합니다. 그리고 환자분,,, 지금 코로나 사태도 그렇고,, 상황이 그러하긴 한데요. 그렇지만 기회가 된다면 애도 두고 혼자 여행을 떠나보심이 어떨까 생각도 드네요."


그 한의사는 거의 매주 내게 이 질문을 했었다.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느냐고. 난 매번 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했지만 한의사는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거 같다고 말했다.


난 정말 혼자서 삶을 다시 시작했다. 그곳에 가자마자 정신과 병원을 찾아갔고 꾸준히 6개월간 약을 먹었다. 나중엔 거의 약을 알아서 끊었다. 통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횟수가 점점 줄었고 이제 그 통증에서 패턴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통증이 시작될 것이라는 몸의 신호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럼 다음 날 기어이 통증이 왔다. 이제 통증이 있어 괴로운 게 아니라 그 자체를 인정하게 되었다. 아 오늘은 통증이 또 이쪽에 오는구나. 어느새 그 통증은 가슴에서 등으로 왔다 갔다 돌아가면서 찾아왔다.


여전히 난 폭식을 끊지 못했고 몸무게가 6킬로가 늘었다. 혼자 산책하고 스트레칭하면서 관리를 했지만 여전히 그곳에 올 때만큼의 몸무게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 와중에 난 다른 일로 씨름을 하고 있었고 우연한 만남으로 사랑을 키워갔다.


그 사람과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난 그곳을 작년 8월에 떠나왔다. 이후 부모님댁에서 지내는 동안 내 외로움은 많이 치유되었고 초반에 여전히 갖고 있던 내 폭식 습관으로 걱정이 많으셨던 엄마는 이제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난 요새 폭식을 거의 하지 않는다. 보는 눈이 생기니 혼자 있을 때만큼 마음껏 먹을 수 없었고 처음엔 잔소리로 들렸던 걱정의 말이 이제 그게 진심으로 느껴지면서 자제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2019년 1월에 시작되었던 가슴 통증은 언제 정확히 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잠깐 작년에 한 번 왔다가 금방 사라졌다. 3년 반 동안은 나와 함께였던 것 같다.


가슴 통증.

정말 잊고 싶은 친구다.

많은 걸 겪게 했던 나쁜 친구다.

많은 걸 깨달은 계기이기도 하다.

지금 난 이 친구가 왜 찾아왔는지 정확히 안다.

내 마음의 걱정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가 어떻게 치유되었는지도 안다.

매개는 '사람'이었고 이 때문에 걱정 없는 희망 거리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가난했던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