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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메부추 꽃

꽃들이 말을 하다

by 장미

2019년 봄, 나눔 받은 두메부추 씨앗을 화분 가득 뿌렸다.


조르륵하게 자라던 두메부추가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몇 포기 남지 않고 사그라졌다. 완전한 자연 속에서 자라야 할 풀이 아파트라는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 그런가 보다 했다.





서너 포기 살아남은 상태로 2021년 봄을 맞았다. 씨앗을 묻은 지 만 2년째다. 대견하게도 그중 하나가 크게 자라면서 그 곁에 새끼도 몇 개 쳤다. 어느 날부턴가 도톰한 잎 하나가 하늘로 치솟기 시작했다. 쓰러지고 꺾이는 모습이 안타까워 화초 지지대를 세우고 택배 상자 공간 채우기 용으로 따라온 작은 공기주머니 하나를 잘라 지주대에 끼웠다.


그런데 이건 뭐지? 70여 cm는 족히 자란 두메부추의 도톰한 잎과 그 아래서 마구 자라 오르는 가느다란 잎새들 사이에 봉긋한 것이 솟아 나오고 있었다. 꽃대다, 야호. 겨우 하나 살아남은 두메부추가 드디어 꽃까지 보여줄 모양이다. 살아남아 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은데 꽃대까지 올려주다니 기대한 적 없기에 기쁨이 하늘을 찌를 듯 클 수밖에 없다.


꽃대를 잎새들 사이에서 빼내 기념사진을 한 컷 찍었다. 파 씨처럼 생긴 까만 두메부추 씨앗 하나가 싹을 내더니 꽃을 보여주기 직전까지 왔다. 마음이 들떴다. 만 2년 만이다.





하지만 소실점처럼 남은 지난 2년이란 시간 끝에 서서 꽃을 기다리는 일은 길기만 하다. 일일 여삼추라는 말을 곱씹는다. 누가 뒤에서 잡아끌기라도 하듯 기다리는 시간은 고무줄처럼 늘어나 더디 흐른다. 그런 와중에도 제법 꽃봉오리 모양을 갖추어간다. 꽃봉오리들이 통통해지면서 꽃을 싸고 있는 포가 찢어지고 찢어진 포는 말라간다. 아기를 낳아 기르는 일과 무엇 하나 다를 게 없다. 어쩌면 익히 보아온 파 꽃과 색만 다른 꽃이거나 색조차 같은 꽃일 수 있다.


택배 따라온 작은 공기주머니 하나를 더 잘라 지주대에 끼웠다. 잎의 성장 속도는 눈에 띄게 줄어들고 꽃대의 성장 속도가 잎의 키를 따라잡았다. 창가에 앉은 두메부추의 건강한 꽃을 보기 위해 황사와 미세먼지 수준이 나쁨 아닌 날에는 종일 문을 열어두었다. 해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꽃대가 방충망에까지 가 닿지 않도록 아침저녁으로 화분의 위치를 돌려주는 일도 기꺼움에 겨워 어쩔 줄 모르는 내 몫이었다.





두메부추 꽃은 분홍색으로 알고 있다. 내가 키우는 두메부추도 분홍색이 감도는 걸 보니 분홍색 꽃을 보여줄 모양이다. 작은 꽃들이 모여 피는 우산 모양의 전형적인 산형 꽃차례 모습이다. 작은 꽃봉오리 하나하나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만물의 모습을 본다.


그래, 저 고운 꽃들도 저처럼 공손하고 간절하게 기도를 올리며 피는구나. 내 기도 또한 저 꽃과 무엇이 다르랴. 두메부추 꽃에게서 다시 배운다. 조금 더 간절하게 기도하고 기도 이전에 조금 더 공손하고 겸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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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2021년 4월 12일 점심 식사 후 제법 내리는 4월의 비를 바라보다 두메부추 꽃봉오리와 눈이 마주쳤다. 발그레한 두메부추 꽃 하나가 열려 있다. 나비의 더듬이처럼 생긴 수술 두 개와 그 가운데 암술 하나. 공손하고 간절한 꽃의 기도를 창조주께서 들어주신 것이다.


이쁘다. 곱다. 나도 함께 눈을 감고 두 손 모야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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