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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아버지 신 주소, 1열 50번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by 장미



photo-1444927714506-8492d94b4e3d.jpg?type=w1 © paulearlephotography, 출처 Unsplash



조화를 살까 하다 그만두었다. 도착해서 보니 조화라도 사들고 올 걸 그랬나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 앞에는 하나같이 조화가 꽂혀 있었다. 길게 늘어선 세상을 떠난 사람들 앞을 지나 엄마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가는 길. 1열 50번으로 세상에 살다 간 흔적을 남긴 분들을 찾아가는 길은

쨍한 해가 눈을 찌르듯 파고드는 날보다는 비 한두 방울 내렸다 그쳤다 하는 오늘 같은 날씨가 적당하다.

이사를 하면 주소가 바뀌는 건 당연하다, 1열 50번.





누군가 포장한 채 곱게 눕혀 두고 간 생화 다발은 봄이 왔음에도 점점 깊은 땅색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이가 살아서 좋아했던 물건인 듯 작은 인형들과 예쁜 병들을 투명 박스에 담아 놓아두기도 했다.

투명 박스 안쪽에는 약간의 물방울이 맺혀 있었고 역시 종일 받는 햇볕에 점점 제 색을 잃어가는 중이었다.

조화도 유행이 있나 보다. 진한 색의 장미와 국화, 수국 들 대신 올해는 달콤해 보이는 연한 주황의 카라가 많이 눈에 띈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목숨을 어디에 두고 가는 것일까. 생명이 없어 보이는 조화는 그러나 만들어지는 순간 조화로서의 생명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색이 다 바래 버려지게 되기까지 아름다운 모양과 색으로 주변을 환하게 밝힌다. 인간은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목숨을 지니고 있다가 다른 세상으로 드는 순간 목숨을 내려놓고 조화와 같은 모습으로 변하는 건 아닐까. 조화를 만들어낸 누군가처럼 인간을 빚어낸 존재에 의해

목숨은 내 안에 들어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하는 것일까.


혼란한 생각을 떨치고 바라보니 조화가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왠지 나란한 조화들 앞으로 걸어가는 것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화의 주인들께 고개를 숙이는 마음으로 걸었다.


군데군데 꽃잔디 몇 개가 고개를 들고 있었다. 나도 지난번에는 꽃잔디를 들고 와 심었었다. 한두 송이라도 꽃이 올라와 있기를 은근히 바랐다. 코로나 19 핑계로 지난해엔 한 번 다니러 오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경계에 심은 쥐똥나무 사이로 하얀 꽃들을 조르륵 달고 있는 조팝나무가 가지 하나를 삐죽 내밀었다. 조화 대신 조팝꽃이라도 꽂아드릴까 싶어 조팝나무 한 가지를 꺾었다.





하염없이 조화들을 지나쳐 가고 있는데 남편이 불렀다.

"그만 가요. 여기 계시잖아."

1열 50번을 한참을 지나치며 생각 없이 가던 발길을 돌렸다.


조금 전 꺾은 조팝꽃 가지를 향꽂이에 꽂았다. 나와 내 형제들이 들고 왔던 조화들도 햇볕에 바래고 시간에 많이 낡아 있었다. 붉었던 꽃도 새파랗던 잎도 모두 하얀 낡은 포를 쓴 색으로 변해 있었다. 세상에 올 때의 포와 세상을 다 살고 돌아갈 때의 포의 색은 둘 다 약간의 흰색을 뒤집어쓴 색임이 분명하지만 올 때와 갈 때의 색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태어날 때의 색은 닦으면 선명해지지만 갈 때의 색은 아무리 닦아도 선명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새것과 헌것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버지. 저 왔어요. 너무 오랜만에 왔죠."

"장인 장모님, 저 왔습니다."


아침에 급히 챙겨 간 포와 막걸리, 방울토마토와 바나나를 올렸다. 접시에 종이컵까지 넉넉하게 잘 챙겼으면서 빠뜨린 젓가락 자리가 휑하다. 절을 올리고 묘소 주변으로 막걸리를 뿌렸다. 내가 심은 꽃잔디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엄마, 요즘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어딜 다닐 수가 없어. 마스크도 엄마가 쓰던 그 가제 마스크가 아니야. 감기 걸리거나 목 아플 때 잠깐씩 쓰던 마스크가 아니고 부직포라는 새로 나온 섬유로 만든 마스크야. 바이러스라고 하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아주 작은 것이 기침을 하거나 말을 할 때 튀어나와서 다른 사람의 코로 들어가면 그 사람도 같은 병에 걸린대. 그 바이러스가 왕관같이 생겼대서 이름도 코로나 바이러스래."

엄마가 뭐라고 하는 것 같았다.


"아니, 왕관이 코에서 나오는 게 아니고. 왕관을 외국말로 코로나라고 하거든. 왕관 모양으로 생긴 바이러스가 2019년에 처음 발견됐대서 코로나 19라고 이름을 지은 거야. 엄마, 옛날에 나일론 나왔을 때 생각나?

엄마가 빨아 삶고 다시 빨아 풀 먹이고 다듬잇방망이로 두들겨 상큼하던 이불 홑청이 낡으면 허름한 보자기 같은 걸로 썼잖아. 해가 쨍한 날 모래밭에서 막대에 묶어 그늘막 만들어줄 때도 썼고. 그래그래, 엄마. 그때 풀 안 먹여도 홑청은 막대에 잘 안 묶어져서 엄마가 앞니로 잡아 물어 묶기도 했잖아. 그 무렵이었을걸. 나일론이란 게 나왔지. 가볍기는 새털 저리 가라 할 만큼 빨아 널기도 전에 마르니 아마 엄마가 젤로 좋아했던 것 같아. 그 나일론 정도는 아니지만 요즘 세상 사람들이 다 쓰는 이 마스크뿐만 아니라 다른 물건들 만들 때도 부직포가 엄청 쓰인대."

엄마가 또 뭐라 뭐라 하는 것 같았다.


하늘은 빗방울을 뿌릴까 말까 망설이는 것 같았다.

"애들도 거의 못 만나. 오늘도 둘째 내외가 올라오겠다는 걸 다음으로 미루자고 했어. 코로나 19에 걸리면 잘못하면 목숨을 잃기도 하고 후유증이 심하다네. 좀 잠잠해지는 것 같다가도 환자 수가 확 늘어서는 좀처럼 줄지를 않아. 홍역 예방주사 같은 백신이라는 게 나와서 온 세상 사람들이 그걸 맞으려고 기다리는 중이기도 해. 얼굴 안 보고 안 아픈 게 낫지 엄마? 엄마, 삐죽 얼굴 내미는 거지만 자주 오도록 할게. 엄마 잘 지내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편히 계세요. 젓가락도 안 들고 와서 죄송해요."





아버지 가신 지 20년이 되었다. 아버지 가시고 2년 2주를 더 사시다 어머니도 아버지를 따라가셨다.


어제저녁, 멀리까지 가서 시험 치르고 돌아온 남편이 피곤할 것을 알면서도 내일 엄마 아버지 묘소에 다녀오자고 했을 때 거절하지 않았다. 고마웠다. 어디 소용될지 모르는 자격증 시험을 앞두고 긴장했었는지 일찍 곯아떨어진 남편이 안쓰러워 보이기는 했지만 코로나 19 핑계로 너무 오래 못 찾아뵈었다. 시어르신들 묘소는 엄마 아버지 묘소에서 1시간 거리에 있지만 시어르신들께는 남편이 얼마 전 시동생과 함께 다녀왔으니 생략하기로 했다.


저녁, 남편이 여운 같은 감동을 주었다.

"오늘 저녁은 소인이 준비하겠사옵니다."

"그런데 왜?"

"장인 어르신께서 그러시더러구. 오늘 저녁은 자네가 준비하시게."


내가 엄마와 수다를 떠는 사이 남편은 아버지와 무슨 이야긴가를 주고받았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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