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오늘 점심은 콩국수다.
주말 점심은 으레 콩국수나 냉면을 먹을 철이 도래했다. 어제저녁 씻어 물에 담가 둔 콩을 삶으며 부르르 끓어오르는 거품과 함께 떠오른 껍질을 걷어냈다. 콩국수용 콩은 오래 삶으면 메주 냄새가 난다. 그렇다고 너무 일찍 불을 끄면 고소한 맛도 떨어지고 콩비린내가 날 수도 있다. 더구나 콩을 삶을 때는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국물이 넘쳐흐르니 곁에서 지켜보며 넘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콩을 삶는 동안엔 늘 할 일이 많다. 콩을 삶는 일이 지극히 단순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콩이 삶아지기를 기다리는 동안은 다른 시간에 비해 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를 동시에 하지 않으면 굉장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지난 주말에는 콩을 삶는 동안 싱크대를 붙잡고 스쾃과 팔굽혀펴기를 20회씩 번갈아 하는 동안 콩이 다 삶아졌다. 콩도 삶고 운동도 하고 나니 남몰래 나 자신을 위해 큰일을 한 듯 뿌듯했다. 오늘 아침엔 운동 아닌 일들이 많다.
아침에 먹을 과일 몇 알을 몇 번 헹군 다음 식초물에 담갔다. 배합해 둔 식초물은 오늘로 다 썼다. 다시 만들기로 했다.
천일염 + 베이킹파우더 + 식초 + 물.
식초를 먼저 넣고 베이킹파우더를 넣을 걸 그랬나? 페트병 깔때기 위로 거품이 솟아오른다. 배합 순서가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다. 가능하면 손이 덜 가는 걸 원하는 어떻게 보면 게으르고 어떻게 보면 잔머리 마녀다.
과일이나 채소 씻을 때 사용할 식초물을 그때그때 섞기 귀찮아 한꺼번에 만들어 놓고 쓰려니 이런 일도 생긴다. 질산이나 황산 등 독한 물질을 사용하는 게 아니니 천만다행이다.
난각칼슘을 만들 때도 달걀 껍데기를 넣은 병에 식초를 부으면 거품이 생긴다. 뚜껑을 완전히 닫아두면 난각칼슘을 만든 초기에는 폭발의 변을 당할 수도 있다. 난각칼슘을 만든 후 폭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병뚜껑에 바늘구멍을 몇 개 뚫어 두거나 뚜껑을 완전히 닫은 상태에서 열림 쪽으로 한 바퀴 풀어 두어야 한다.
배합 식초물의 거품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콩이 끓어 넘치지 않나 살펴가며 어제 사 온 오이와 부추를 다듬어 씻었다. 오이는 굵은소금질을 하여 박박 문질러 씻은 후 방금 배합한 식초물을 조금 부어 담가 두었다. 부추는 위아래를 쳐내고 떡잎들을 골라냈다. 얼갈이는 어제저녁 바로 다듬어 씻어 데친 후 두 끼 양으로 나눠 냉동실에 넣어 두었으니 손 많이 갈 일이 한결 줄었다. 잘했다. 자화자찬이 절로 나오고 입꼬리가 귀에 가 걸리는 걸 숨길 수가 없다.
콩 삶은 냄새가 고소하다. 한 알을 꺼내 후후 불어가며 먹어보니 적당한 식감에 고소한 맛이 난다. 막 삶아 뜨거운 콩에 아몬드 한 줌을 넣어 섞었다. 아몬드도 콩과 함께 불은 다음에 갈아야 간 다음에 불어 입자가 커지는 걸 방지할 수 있다.
그 사이 식초물의 거품이 많이 가라앉았다. 그러나 오늘 하루 정도는 뚜껑을 열어 두어야 한다. '펑' 하는 소리에 놀라지 않으려면 말이다. 오이와 부추는 헹구어 물기가 빠지도록 소쿠리에 건져 두었다.
과일을 건져 헹구고 빵 두 조각과 커피 두 잔을 식탁에 올렸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고 공격하고 방어하는 전쟁이 드디어 끝났다.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 식초와 베이킹파우더가 만나면 거품이 생기는 이유는 숙제다.
베컴 머리를 한 남편이 부스스한 얼굴로 아침을 먹기 위해 다가왔다. 오늘 아침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오늘도 나만이 아는 비밀로 조용히 마무리했다. 모순矛盾이 제 역할을 잘해 낸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