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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안'을 그녀와 함께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by 장미

어제 친구가 글 하나를 보내왔다.

나이 먹어서 가장 소중하고 필요한 것이 '친구'라고.



그런 친구 얼굴을 작년 봄에 보고 못 보았다.

코로나가 금세 물러가려니 별것 아니라 생각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코로나가 물러가기는커녕 1년을 훌쩍 넘긴 겨울과 봄을 지나

다시 여름이 다가오는데도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올봄엔 얼굴도 못 보고 보내려나 싶으니 기분이 가라앉는다.



이 친구와는 몇 개월에 한 번씩 만나곤 한다.

그러나 자주 만나는 친구에 비해 더욱 알찬 만남이기도 하다.

둘이서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하루 종일 함께 지내고도 날이 어둑어둑해지면

어쩔 수 없이 각자의 자리로 향하면서 아쉬움에 오래도록 손을 흔든다.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돌아보고 또 돌아보면서.

이런 헤어짐의 모습까지도 그녀와 나는 통한다는 데 흡족해하면서 말이다.



공식적인 외박 외에 나는 결혼 후 어느 친구와도 함께 밤을 지내본 적이 없다.

일박이라도 밖에서 함께 지낼 친구를 꼽으라면 당연히 이 친구가 1순위다.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안 Ⓒ뉴시스



지난 4월 22일 국토교통부는'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안' 공청회를 열었다는 보도다.

코로나 19로 인해 유튜브에서 열린 이번 공청회에서는

앞으로 10년간 우리나라에 새로 생길 철도들을 소개했다고 한다.

지도는 이 자리에서 선보인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안'의 모습이다.

뒤늦게 이 지도를 보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지도를 보니 거미줄이 조금 더 촘촘하고 탄탄해지는 느낌이다.

차를 직접 차를 몰지 않아도 수도권 어디든 가족의 힘을 빌지 않고도 다녀올 수 있겠다.

특히 나이 들수록 노인들이 일으키는 교통사고 건수가 만만치 않다.



각 지자체에서는 노인의 교통카드 반납을 권하고 있다.

70세 이상 노인이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면 10만 원이 충전된 교통카드를 준다고도 한다.

자주 교통사고로 이어지는 노인의 운전을 줄여 보겠다는 발상이다.



나는 장롱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운전면허증을 반납하지 않았다.

만약의 경우 70세가 넘더라도 위급상황이 발생한다면 운전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위급상황이 생기지 않아 운전할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은 그보다 더 크지만 말이다.

내가 70세가 되려면 열 손발가락으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날들이 남아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내가 살아 있다면 시간은 언젠가는 나를 70세 너머로 넘겨주는 날이 올 것이다.



지금처럼 남편의 운전에 의지해 어디든 다닐 수 있는 날이 더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요즘 들어 불러주는 데 많은 남편이 약간 부러워 보일 때도 있다.

대체로 자신이 누군가를 불러내는 편이니 불러주는 데가 많을 수밖에 없기도 하다.

젊어서는 사람 만나기 좋아하고 만나면 그럴싸한 이름을 붙여 모임을 만들고

일 년 삼백육십오일이 핑계 대지 않으면 모임에 나가지 않을 날이 없는 남편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스스로에게 내면으로 익히는 시간이 태부족으로만 여겨졌던 것이다.



그렇다고 가정적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이 자신을 원하는 한 가정은 뒷전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말 탄 독립운동가는 내가 남편에게 붙여준 별명으로 오래 써먹기도 했다.



그 덕분인지 불평을 하면서도 남편을 따라 정기적인 섬 투어에 먼 데 등산도 다녀오는 호사를 누렸다.

결코 내가 먼저 나서지 않는 내 성격은 나를 어느 정도는 방안퉁수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외출을 자제하는 요즘도 남편은 집에서만 지내는 날이 거의 없다.

남편이 종일 집을 비우는 날은 내 입에서 거미줄 치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그 거미의 새끼들이 자라 입안은 온통 거미줄로 가득하다.

깊이가 보이지 않는 생각의 우물만 더욱 깊어진다.



이런 날이 더 길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겠다.

'앞으로 10년 간...'이라는 국가철도망 계획 속에 뼈 같은 의미가 들어있는 건 아닌가 생각하게도 한다.







친구와는 친구가 암 투병에서 벗어날 무렵 나와 인연이 닿았다.

나 또한 병치레를 디디고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할 무렵이었다.

내게 '공주과'라는 말을 서슴없이 던진 친구도 그녀가 처음이다.

완전 무수리인 나의 진면목을 본 적 없는 그녀는

나도 할 수 있는 일을 자신이 척척 알아서 대신해 주기도 한다.

늘 민망해하면서도 그녀의 그 모습을 보고 배울 뿐

내 가족들 외에는 그녀에게 배운 그 살가운 모습을 별로 실천해 본 기억도 없기는 하다.



남편은 친구들과 연중행사로 두 번의 일박이 정해져 있다.

그런 날, 이 지도를 들고 친구와 함께 철도 여행을 즐기고 있는 꿈을 꾼다.

'더 아프지는 말자'고 답을 보냈다.



정기검진을 다녀올 때면 우리 집 쪽으로 방향을 틀어 얼굴 보고 차 한 잔 하던 데서 나아가

하루를 완전히 비워 종일 수다를 떠는 것으로 발전했다.

이제 일박 정도는 해도 좋을 시절이 온 것은 아닐까?

지도를 보며 내가 다녀왔던 곳 중에 좋았던 곳을 짚어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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