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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도 아닌 것이
굴곡진 데는 왜 이리 많은지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by 장미

요즘 오전은 거의 집안 정리에 쏟는다. 한꺼번에 이것저것 들어내 놓고 정신없이 하는 예전 식이 아니라 하루에 딱 한 가지씩만 한다. 여러 날이 걸리지만 하루로 보면 부담스럽지 않고 한갓져서 좋다. 엊그제 가구를 재배치했지만 서랍 속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이 역시 하루에 서랍장 한 개씩만 건드리기로 했다.


코로나로 인해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다 보니 눈에 띄는 일거리가 많기도 하다. 코로나가 어느 정도 안정됐다고 하기 전까지는 가능한 한 외출할 일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집안에서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내려면 일거리를 만들거나 내일 할 일을 남겨 두어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 삶의 모습도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이후로 나뉘는 듯하다.


그중에는 속담도 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라는 속담이 그것이다. '오늘 다 할 수 있는 일도 오늘과 내일 사이좋게 나누어서 하자'로 바꾸어 말하게 되었다.





오늘은 변기 청소를 하기로 했다.


벽과 바닥의 타일 사이사이는 엊그제 닦아내서 깔끔하다. 변기 뒷부분의 굽은 부분은 닦기가 쉽지 않다. 벽에 딱 붙어 있어 다른 자리보다 공기의 흐름이 정체돼 있으니 자칫 곰팡이도 끼기 쉽다. 주기적으로 닦아 주어야 하는데 게으름을 피웠다. 아니나 다를까, 생각보다 덜하기는 했지만 그럴싸해 보이는 앞부분 뒤에 숨어 잘 보이지도 않는 움푹 들어간 자리에 곰팡이가 보인다. 변기 앞쪽으로 굽어진 뒷면은 보이지 않지만 안 보인다고 곰팡이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부분은 순전히 감으로 닦아내야 한다. 변기를 이런 모양으로 만든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기에 더 여러 번 손이 갈 수밖에 없는 부분을 닦으면서 불평을 한다. 청소를 전문으로 하는 이들이 존경스럽다.


"아니, 변기를 공중에 매달아 두고 쓸 것도 아니고 벽에 고정시켜야 하는데 보이지도 않는 이 부분은 어떻게 닦아내라고 이 따위로 구불거리게 만들어 놓은 거냐고."


닦는 데 걸린 시간은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벽과 변기 사이에 머리를 끼워 넣고 조금이라도 더 확인하면서 닦으려다 보니 허리와 무릎은 물론 온 팔다리가 다 쑤신다.


세면대는 다음날로 미룰까 하다 내친김에 마저 하기로 했다. 세면대 역시 물받이 아래 일정 부분까지는 자주 닦지만 그 뒤쪽은 날을 정해 닦으니 역시 곰팡이가 끼어 있을 수밖에 없다. 변기와 달리 겨울철이면 온수를 쓰는 세면대 아래쪽은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온수와 세면대의 온도 차 때문에 곰팡이가 더 자주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세면대를 받치고 있는 플라스틱 받침대에 있었다. 세면대와 받침대 사이에 있는 작은 틈이 새까맣다. 생각만으로도 벌써 목이 메어 왔다.





뒤늦게 중무장을 했다. 장갑에 마스크에 허드레 일복으로 갈아 입고 일단 물티슈를 들고 덤볐다. 변기 닦기 전 미리 중무장을 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은 버스 지난 뒤에 손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변기만 닦고 말 생각이었으면 변기만 닦을 걸 그랬다는 약간의 후회까지 밀려왔다.


먼저 세면대 아래쪽 뒷부분, 그러니까 물이 내려가는 구멍 양 옆 움푹한 부분을 물티슈로 닦아냈다. 변기 뒷부분을 닦을 때와 같은 불평을 해댔다.


"깨끗이 닦을 수 있게 튼튼하고 심플하게 만들지 못하고 이게 뭐냐고? 이렇게 구불구불하게 만들어서 뭐 디자인 상이라도 탔다는 거야 뭐야?"


겨우겨우 눈에 잘 띄지 않는 부분을 닦아내고 드디어 세면대와 받침대 사이 차례가 되었다. 락스를 적당히 희석해서 재빨리 뿌리려는데 락스를 뿌릴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줄줄이 바닥으로 떨어져 하수도 쪽으로 흘러간다.

딸냄이 사다 준 곰팡이 제거제의 거품 역시 원하는 자리에 제대로 조준이 되지 않는다. 생각만으로도 메이던 목이 실물 락스 냄새 앞에서 콱 잠긴다. 화장실에서 나와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 2차 도전에 돌입했다.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샤워기 물을 최대로 뿜어 세면대와 받침대 사이를 쏘았다. 작은 검은 덩어리들이 떨어져 나와 하수도 쪽으로 내려갔다. 더는 덩어리들이 나오지 않을 때쯤 헌 칫솔에 락스 원액을 묻혀 세면대와 플라스틱 받침대 사이를 문질렀다. 조금이라도 스며들기를 바라면서.





락스를 뿌려 두었으니 한 시간쯤 후 헹궈주면 되겠다. 물 한 잔을 마시는데 큰 딸이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 아빠 어디 가셨어요?"

"어, 아빠 동창 아저씨가 집 문제로 강원도 내려가 2년을 사셔야 한대. 아무래도 자주 못 볼 것 같다고 내려가기 전에 얼굴 한 번 보자고 하셔서."

"어쩐지. 전화를 안 받으시더라고. 엄마 아빠 당뇨는 없지?"

"몇 년 전에 경계선 근처까지 갔던 적 있는데 그때도 당화색소는 정상이랬어. 지금은 괜찮고. 왜?"

"내일 새벽에 맛있는 빵 도착할 거야. 베이글도 같이 보냈어요."

"오, 빵 고마워. 근데 웬 빵?"

"먹어보니 맛있어서."


딸에게 변기와 세면대 청소 이야기를 꺼냈다.

"얘, 변기랑 세면대 말이야. 살아 있는 것도 아니면서 뭐 그리 구불구불 구곡간장 같은 모양을 가졌냐고. 외형까지 말이야. 이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부분에 웬 무늬들까지 그리 넣어놨는지."

"엄마, 살아 있는 것들만 구곡간장일 리가 있겠어요? 먹는 것 버리는 건 물론 모든 것이 구곡간장을 통해 흘러가야 맞지 않을까? 누가 디자인하는데 청소까지 생각해요. 일단은 아름다워야지."

"맞네. 딸 말이 정답이네. 얘, 봄이다. 구충제 먹고 구곡간장이나 청소하자."

"넵,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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