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엄마, 왜 어린이들은 이가 빠지는 거예요?"
아이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네 살에서 다섯 살 사이의 여자 아이다. 곱게 가르마를 타고 양옆으로 높이 올려 동글동글 말아 묶은 머리 모양이 곱기도 하다. 호리호리한 체구에 분홍 가방을 메고 한 손에는 분홍 우산까지 들었다.
엄마와 치과를 다녀오는 길인가 보았다. 꽤 어려 보이는데 벌써 이갈이를 하나? 아니면 체구만 작을 뿐 가방 모양으로 보아서는 초등학교 1학년일 수도 있겠다. 자신의 이가 아니라면 엄마의 이 치료 과정에 따라갔다 오는 길일 수도 있었다.
"응, 어린이들이 어른이 될 준비를 하는 거예요."
편안한 검은 티셔츠에 역시 편안해 보이는 검은 트레이닝 복 바지를 입은 통통한 엄마가 대답했다.
"어른이 될 준비."
여자아이가 엄마의 말을 반문이 아닌 머릿속에 새겨 넣듯 따라 했다.
"그럼요. 어린이들은 이가 빠지면 새로 이가 나요. 살아갈 날이 어른보다 많아서 그렇기도 할 테고 맛있는 것 꼭꼭 씹어 먹으라고 그러는 것 같아요. 하지만 어른은 이가 한 번 빠지면 다시 나지 않아요. 그래서 어린이 때도 이는 늘 조심해야 하지만 어른이 되면 이 다치지 않도록 더 조심해야 해요."
"그럼 어른이 돼서 이가 빠지면 어떻게 해요?"
"이 빠진 자리에 이처럼 단단한 걸로 이 모양을 만들어 넣어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원래 얼굴 모양이 달라져요. 또 음식을 제대로 씹을 수 없어 소화도 잘 안 되죠."
두 사람이 나와는 반대편인 자신들의 갈 길로 갔다.
공원 쪽으로 발길을 옮기며 빙긋 떠오르는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여유가 많아 좋은 시절이다. 엄마는 이에 대해 저처럼 꼼꼼하고 상세하게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음은 물론 이로 인해 힘들어하는 이들은 날마다 발전하는 신기술을 모두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내가 아이를 키우던 30여 년 전만 해도 이에 관해서라면 젖니와 간니 정도 외에는 특별한 지식이 없었다. 요즘은 의술의 발전과 함께 임플란트 기술도 하룻밤 자고 나면 새로운 것이 나와 있다. 더불어 임플란트 시술 비용도 초기에 비하면 엄청나게 떨어졌다.
우리 집에서 치약을 쓰게 된 건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다. 큰고모는 한강물에서 향비누로 이를 닦곤 했다. 아버지께선 소금을 비벼 검지와 중지로 이를 닦으셨다. 그러던 것이 요즘은 칫솔과 치약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상품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내 이와 잇몸 상태도 잘 알아야 하고 칫솔과 치약에 대해서도 공부가 필요하다. 때로는 지나친 풍요가 번거롭게 느껴지지까지 한다.
나는 어금니 하나를 임플란트로 해 넣었다. 남편은 무려 네 개씩이나 임플란트로 어금니를 채웠다. 특히 남편은 임플란트 도입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바로 임플란트를 해 넣었기에 요즘 임플란트 비용의 너덧 배는 지불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남편의 말에 따르면 임플란트가 가진 이를 대신한다는 큰 장점 외에 내 이가 아니기에 느끼는 단점 또한 꽤 크게 느껴진다. 임플란트를 해 넣은 그 사이에 음식물이 많이 끼어 불편함은 물론 자신의 이로 음식물을 씹어 먹을 때에 비하면 음식 씹는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남편은 치과에 자주 다녀오지만 그런 점은 어쩔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올 뿐이다.
모든 것이 향상하고 발전해도 그 향상과 발전이 우리가 바라는 많은 것을 모두 만족시켜 줄 수는 없다. 보다 큰 장점을 택하다 보면 조금 덜한 불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아이의 앞 얼굴을 보았더라면 더 좋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른쪽 뒤에서 30도 정도 각도에서 보았던 아이의 하얀 볼과 눈꼬리, 단정히 빗어 올려 묶은 머리 아래로 드러난 귀와 가느다란 목만이 남았다.
요즘은 부모에게 반말을 하거나 길에 멋대로 누워 떼를 쓰는 어린이들을 보기 힘들다.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배울 것이다. 엄마 아빠는 물론 어른에게 반말을 하지 않도록 말이다. 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에게 경어로 대하는 선생님도 많을 것이다. 나 역시 초등학교 2~3학년 때는 우리들에게 경어로 대하시는 선생님께 배웠다. 그때 그 선생님 덕분에 당시 우리 반이었던 아이들은 사람이든 사물이든 조금은 더 깊이 그리고 따뜻하게 대하는 사람으로 성장했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또한 집에서는 아까의 그 엄마처럼 자녀에게 경어를 써 주는 부모도 많이 늘었다. 더 중요한 것은 요즘 부모들은 아이의 질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잘 몰라서 대충 얼버무리는 이는 거의 없다. 아이가 알아들을 때까지 세세하게 설명을 해 줄 뿐만 아니라 잘 모르는 것은 아이와 함께 책을 보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기도 한다.
부모가 몰라서, 혹은 알아도 바빠서 '나중에 알려줄게.' 식으로 아이의 질문을 묵살하지 않는 것은 아이의 미래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논리적이면서도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데 그만한 영양제도 없을 듯하다. 당연히 아이는 자신의 알고자 하는 욕구를 채웠으니 떼를 쓰거나 길거리에서 뒹구는 일도 없다.
아이가 자신과 같은 연령대를 '어린이'라고 지칭하는 데서 또 한 번 미소가 지어졌다. 어린이. 젖 먹던 때의 이가 빠지고 새로운 이가 나면서 어른이 될 준비를 하도록 설계된 멋진 어린 인간이다.
내내 떠오르는 미소를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