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어제저녁 일기예보를 놓쳤다. 아침에 보니 반가운 비가 제법 내리고 있다. 화분에 묻어둔 실파 키가 부쩍 자랐다.
대파는 씨앗을 뿌려 솎아낸 실파나 판매하는 대파 모종을 구입해 심으면 대파가 된다. 아기가 자라 어른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난 몇 해 텃밭에 소홀했다. 그 바람에 모든 씨앗이 동이 난 상태라 대파 모종이든 실파든 구입을 해야 했다. 대파 모종에 비해 훌쩍 자라 있는 실파가 대파로 자라는 데 빠를 건 당연하기도 하다.
크기가 크니 모종 내기도 수월한 실파 두 단을 구입했다. 텃밭에 내기 전 실파 몇 대를 윗둥 잘라내고 페트병 화분에 심었다. 페트병 화분을 베란다 난간에 걸쳐 놓으니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어린이날 전날 심었으니 한 20일 사이에 청소년 대파인 듯 제법 대파 티까지 난다. 비 오는 아침 오뉴월 하룻볕을 실감하며 감사한다. 약을 치지 않은 파에 잘 끼는 굴파리 등 해충도 생기지 않았다.
며칠 전 저녁 식사 중 남편이 문득 씨앗 이야기를 꺼냈다. 얼마 전 알게 된 사람 중에 유독 나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단다. 나물을 좋아하다 보니 식물에 대해서도 거의 도사급이란다. 모르면 몰라도 책이라도 한 권 냈다면 대박 날 내용들도 수두룩하다고도 했다. 남편의 상식 선에서 대박 날 내용들일 뿐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야기여서 내게는 이미 들어 알고 있는 이야기도 있고 전혀 생소한 이야기도 있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호박에 관한 이야기야말로 내게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큰 충격을 주고도 남을 내용이었다. 호박에 벌레가 생기는 이유는 호박 모종을 팔아먹으려는 씨앗 회사의 크고도 깊고 검은 의도가 숨어 있다는 데 놀랐다. 즉, 호박 모종을 사서 심은 그 해 열린 호박에는 벌레가 생기지 않지만 거기서 나온 씨앗을 심은 다음 해부터는 호박에 벌레가 생기게끔 씨앗을 조작해 놓았다는 것이다.
나는 호박 모종을 구입해 심은 적이 없다. 호박 씨앗을 구해 심고 호박이 열리면 수확한 호박에서 씨앗을 갈무리해 두었다 다음 해 봄 다시 심는 줄로 알고 있고 늘 그렇게 해 왔다. 호박뿐이랴, 오이며 고추, 가지, 토마토까지 씨앗을 맺는 모든 식물들은 씨앗 갈무리에 온 정성을 쏟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게 호박 씨앗을 나눠준 이는 해마다 호박 씨앗을 한 양재기 정도는 모아 말렸다가 필요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곤 한다. 그런데 그 씨앗을 심어 키운 호박들이 언제부턴가 문제를 드러냈다. 잘 자라는 듯싶다가도 호박 꼭지가 물러 떨어지는 건 예사고 누렇게 잘 익어 따 들여 품고 있노라면 호박 옆구리가 무르곤 했다. 갈라 보면 구더기가 바글거렸다. 구더기 중에도 잘 자란 녀석은 천장까지 튀어 오르기도 했다. 그때부터였다. 해마다 호박을 심기는 심되 아무리 잘 여물어 보이는 호박이라도 호박을 수확한 후에 집으로 바로 들고 들어오는 일을 접었다. 호박을 딴 그 자리에서 호박을 갈라보고 이상이 없는 것들이면 짜 맞춘 후 집으로 데리고 들어온다. 다행인지 호박은 접착력도 좋아 갈라낸 자리를 바로 붙이면 한동안 상하지 않게 보관할 수도 있다. 자른 자리에서 투명한 액이 나와 잘린 자리를 봉합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모두 씨앗을 받아 심어 자란 호박 모에서 열린 호박에는 벌레가 끼게끔 씨앗을 조작을 해 놓은 결과라니 금치 못할 일이다. 모종을 사서 심었을 때는 나타나지 않지만 한 대를 걸러 어떤 형질이 나타난 이후 지속적으로 같은 형질이 나타난다니 대단한 두뇌를 가진 인간들이다. 일회성의 건강한 호박은 호박 씨앗을 판매하는 회사의 호박 씨앗을 통해서만 수확 가능하다는 사실에 돈이란 무엇인가에까지 생각이 파고든다.
세계적인 종자 회사 몬산토가 우리나라 토종 씨앗은 물론 전 세계 많은 씨앗들의 소유권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바다. 하지만 씨앗 소유권을 넘어 그 씨앗을 원래대로 보존하지 않고 조작을 할 수도 있겠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세상 사람 모두가 나와 같은 바보라면 몬산토 같은 세계적인 종자 회사를 차려 전 인류를 상대로 한 먹거리 전쟁용 씨앗을 판매할 리도 없기는 하다.
씨앗 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지난해와 올해 초 씨앗 구하느라 마음을 썼던 일이 새삼스럽다. 특히 지난해에는 남편 동창을 통해 울금 종자를 구했다. 혹시라도 텃밭 울금들이 실패할 때를 대비하여 화분에 몇 알 묻어둔 울금들이 삐죽거리며 싹을 내밀고 있다. 내가 씨앗을 많이 가지고 있을 때는 나눔을 원하는 이들에게 손쉽게 나눠 줄 수 있었지만 올해는 흔해 빠진 오이 씨앗 한 톨 남아 있지 않았다. 씨앗 보관도 하는 이들이나 하는 일이다. 내가 씨앗을 나눠준 이들 중에는 씨앗 보관 중이라는 이가 한 사람도 없었다. 보험 겸한 씨앗 나눔이 모두 헛수고로 돌아갔다.
올 초에는 블로그 이웃분께서 여주 등 몇 가지 씨앗 나눔을 하셔서 신청했다. 다행히 당첨권 안에 들어 씨앗을 보냈다는 소식까지 접했지만 씨앗은 한 달이 돼 가도록 소식이 없었다. 무료 나눔이었기에 씨앗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말조차 건네지 못하고 도착할 날만 기다리고 있던 차에 나눔 주신 분께서 먼저 소식을 물어왔다. 아직 씨앗이 도착하지 않았다고 답을 드렸다. 그런 후 다른 곳에서 여주 외 여러 가지 씨앗 나눔이 있어 손을 든 결과 각종 씨앗을 한 바구니는 받았다. 특히 여주 씨앗은 얼마 전 남편의 당 수치가 경계선 근처까지 올라간 적이 있어 감사하기 그지없었다.
종자 전쟁은 내가 모르는 사이 전 세계 곳곳으로 이미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전쟁은 아마도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들이는 데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토종 씨앗을 갈무리하고 보관하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들이 있다. 토종 종자를 보관하는 데 목적을 둔 그네들이 세계적인 종자 회사처럼 영리를 목적으로 활동하지는 않을 터다. 그럼에도 토종보다 더 나은 씨앗을 만들어내기 위해 씨앗 개량을 하게 되더라도 본래의 형질을 가진 토종 씨앗들은 부디 그대로 보존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씨앗에게도 뿌리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오늘의 씨앗들이 화석으로라도 발견된다면 다행이리라. 인간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더 크고 더 때깔 곱고 당도도 높은 작물들의 씨앗을 만들어낼 테니 말이다. 사람도 부분 대체를 할 수 있을 만큼 의술이 발전했으니 식물에 대해서야 더 왈가왈부할 일도 아니다.
비 맞고 있는 실파를 보며 텃밭에 심은 실파를 잘 키워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한 달 한 번이나 갈까 싶은 텃밭이라 하늘과 바람과 별의 도움 없이는 잘 키운다는 건 불가능할 일이다. 그중 적어도 몇 포기는 내년 이맘때쯤 꽃대를 올릴 것이다. 그 꽃대에서 나온 씨앗을 받아야겠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씨앗 소중한 줄 아는 이들에게 나눔을 하고 또 해야겠다. 누군가 종자 회사에서 판매하는 호박 씨앗처럼 벌레가 끼게끔 대파 씨앗까지 조작하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