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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있습니다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by 장미


네비게이션 업데이트 후 첫 나들이 날이었다. 출근하는 차량들 사이를 벗어나자 하늘은 맑고 바람은 살랑거려 날씨까지 나들이를 받쳐주는 듯 기분도 좋았다. 출발한 지 한 시간 가량 지난 시각이라 휴게소를 몇 개는 건너뛰기로 했다.


네비 양이 첫 휴게소 안내를 했다.

"OO 킬로미터 전방에 휴게소가 있습니다. 주유소 휴게소 다 있습니다."

내가 잘못 들었나 했다. 네비 양의 반복 안내를 듣고서야 내 귀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깔깔거리는 내게 남편이 내가 웃는 이유를 알겠다는 듯 한 마디 던졌다.


"다 있습니다?"

"아니 이 여자분이 사용하는 문맥과 너무 동떨어진 문구 아녜요? 더구나 나처럼 맥락없는 말 잘 흘리는 사람도 아니도 저 논리적인 말투에다 고운 목소리로는 어울리지도 않구요."

"좀 그렇지."

"'다아'라고 할 때 다른 단어들과의 길이를 맞추느라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알 것 같아요. '다 있습니다'를 빼도 다아 알아들을 수 있는데 말예요."





첫 번째와 두 번째 휴게소를 지나쳤다. 안내 표지판은 보이는데 네비 양이 아무 말이 없었다. 혹시 내가 자기의 안내 멘트를 비웃었다 생각한 건가?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이건 개인 정보 유출 우려가 있는 네비가 맞다.

이쯤에서 볼일도 보고 주전부리감도 한두 가지 구입해야 덜 심심하게 나들이를 즐길 수 있겠다. 남편 역시 지금쯤 담배가 고플 때도 됐다.


주차를 하고 휴게소를 향해 걸어갔다.멀리서 보는데도 왠지 휴게소가 지나치게 한산하다. 더구나 임시 화장실을 사용하라는 플래카드가 휴게소 정면에는 물론 양옆에도 붙어 있었다. 휴게소 화장실이 고장이라면 휴게소 측도 그렇지만 이용자들에게도 낭패다. 다른 곳보다 손을 더 깔끔하게 잘 씻어야 할 곳이 휴게소 화장실 아닌가 말이다. 안내를 맡은 아르바이트 생이 화장실을 향해 오는 사람들을 줄이 쳐진 안쪽으로 안내했다. 임시 화장실은 휴게소 정반대편에 있었다. 청색 지붕의 임시 화장실 앞에는 붉은 글씨로 임시 화장실이라 쓴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는 소형 물병이 쌓여 있었다. 등산용 모자를 쓴 두 사람이 볼일 보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작은 물병을 한 개씩 나눠 주고 있었다. 이런, 임시 화장실에 물도 나오지 않는다는 말인가. 저 물로 손을 씻으라는 뜻이다. '다 있다더니 제대로 된 건 하나도 없잖아.' 갑자기 네비 양이 첫 번째와 두 번째 휴게소를 앞두고는 안내 멘트를 날렸으나 우리가 내린 세 번째 휴게소에 대해서는 '다 있습니다'라는 말은 물론 아무 안내도 하지 않았음을 상기했다.


하필 영업도 하지 않은 휴게소를 택해서 내릴 게 뭐람. 입을 즐겁게 하는 호두과자나 맥반석 오징어구이는 냄새도 맡아보기 전에 이미 날아갔다. 게다가 화장실은 임시 화장실인데다 물도 안 나오는 화장실이라니 이게 말이 되남? 이런 일은 휴게소로 드는 입구에 써 붙여 놓아야 이런 불편함을 겪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어쨌든 임시 화장실이라도 사용하고 먹는 물로 손을 씻을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임시 화장실 내부는 깨끗했다. 물을 내릴 필요가 없는 화장실이었다. 핸드폰 등 물건을 변기 속에 빠뜨릴 경우 찾을 수 없다는 문구가 문에 붙어 있었다. 옆 칸에 들어 볼일 보는 이가 이 주의 사항을 밖에 있는 일행에게 큰 소리로 읽어주었다. 다 있지만 이용에 제한이 따르는 휴게소에서나 들어볼 수 있는 일이다. 볼일을 보고 나와 수도꼭지를 돌렸다. 예상했던 대로 물이 안 나온다. 먹는 물을 졸졸 뿌려 손을 씻을 수밖에 도리가 없다. 홀로 화장실을 이용한 사람은 손을 한 쪽씩 씻느라 더 애를 먹겠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는데 누군가 다른 임시 화장실에는 물이 나온다고 알려주었다. 재빨리 그쪽 화장실로 갔다. 쫄쫄쫄 나오긴 하지만 화장실 수돗물에라도 손을 씻을 수 있어 다행이다. 손을 씻는 데 시간이 걸렸나 보다. 근무복을 입은 여자분께서 내가 손을 다 씻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지금 수도 시설이 고장인데 여기만 물이 나와요. 그나마 물이 졸졸 나와서 고치려구요. 죄송합니다."

지금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불편할 사람들이다. 괜시리 불평을 했다. 그나마 속말로 불평을 했으니 다행이다. 속말로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손을 씻고 나오는데 물병 쌓아둔 곳에 있는 사람들이 물병을 들고 나를 불렀다.

"물 받아 가세요."

내가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저 손 씻었어요."


"가시면서 드시라구요.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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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할 거리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으면서 불평을 했다. 네비 양은 이 휴게소 관련해서는 '다 있습니다'라는 말은 물론 어떤 말도 하지 않았는데 나 혼자 북 치고 장구를 쳤다. 오늘 이 휴게소를 이용하지 못할 만한 어떤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속 끓일 필요 없이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보지도 않고 볼일을 다 봤다.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말도 듣지 않고 먹는 물로 이미 손도 씻었다. 주변에는 먹는 물로 손 씻는 사람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는데 말이다. 이게 다 네비 양의 '다 있습니다'란 멘트 때문이다. 사실은 매 휴게소마다 다 있지 않을 수도 있는 내게 필요한 어떤 것들에 대해 확인하지 않고 덤빈 나 때문이다.


넘겨짚지 말자고 자주 다짐하고 산다. 그럼에도 전혀 예상치 못한 데서 넘겨짚었다. '다 있습니다'는 틀린 말도 아니다. 따라서 깔깔 웃을 말도 아니다. 그런데 왠지 지금까지 들어왔던 안내 문구에 비하면 어울리지 않는 말처럼 느껴진다. 내가 가끔 찾는 '다있소' 매장도 아니고 말이다. 어쩌면 네비 양의 말까지도 이런 땐 이렇게 저런 땐 저렇게 말해야 한다고 내 안에서 이미 정해 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편하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알려주는 이상의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네비 양의 안내에서 문학이나 논리를 기대하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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