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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 스트로베리 문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by 장미


잠자리에 드니 창쪽 방바닥이 깊은 데까지 환했다.


몸을 일으켜 환한 자리로 가 누웠다. 문득 나는 들풀이었다. 내 온몸에 이슬이 내려와 쉴 수 있도록 숨소리조차 죽인 잡초였다. 나는 풋감을 달고 좋아라 하는 감나무였다. 감나무에 매달린 윤기 자르르한 잎이었다. 나는 한 마리 새였다. 갓 깨어난 어린 새였다가 알을 몇 배나 깐 깃털이 여럿 빠진 어미 새였다. 나는 털갈이 중에 피부병에 걸린 강아지였다. 목줄에 꿰어 나무에 매달린 채 눈치 보듯 달빛을 흘깃거리다가도 나뭇잎 그림자가 흔들리는 소리에 놀라 컹컹 짖는 한 마리 개였다. 나는 고된 노동의 하루를 접는 바람이었다. 달빛 이불을 덮고 잠들 수 있다는 건 행운이었다. 지난 하루를 다시 읽으며 대자연의 일부인 양 빠진 이를 맞추듯 나를 끼워 넣는 일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행복이었다.





2021년 6월 24일은 음력으로 5월 15일, 그러니까 오월 보름날이었다. 약간 흐리긴 했지만 비가 올 확률은 날씨에 문외한인 내 눈에게도 제로에 가까워 보였다. 어쩐지 저녁 해가 서산을 넘는 모습부터 예사롭지 않기는 했다. 저녁 식탁에 앉으려다 말고 거울에 비친 노을에 반해 노을 사진을 찍었다. 밝은 해를 맨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연중 몇 안 되는 날 중 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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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걸린 해가 어린 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놀이를 생각나게 했다. 단춧구멍 두 개에 실을 끼워 빙빙 돌려 실을 꼰 다음 손가락에 걸고 이완을 거듭하는 놀이는 어린 날 아버지께서 심심해하는 내게 가르쳐 주신 놀이였다. 실을 매단 단추는 작게 소곤거리든 듯한 위잉 위잉 소리를 내며 단추를 가지고 놀았다. 단추를 가지고 놀도록 실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신기하던 때였다. 아버지는 엄마가 뚝딱뚝딱 잘하는 일 빼고는 모든 일에 만능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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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정리하는 시간, 거실에 든 달빛을 따라 창밖을 보니 구름에 걸린 달이 또 마음을 잡았다. 그 모습은 기억에도 없는 전생이 있다면 전생에서 이생으로 오는 길목쯤이었다. 나는 탯줄에 매달린 채 엄마를 먹는 아기였다. 나는 엄마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엄마가 또 다른 세상으로 드시고도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절실하게 깨닫는다. 엄마는 내게 목숨 줄이었으나 그 소중함과 감사함을 몰랐고 오히려 무시했었다. 달빛으로 쓴 편지를 엄마께 보내고 싶다. 얼마 전에 거른 모기기피제 계피 물을 뿌리고 방충문을 열었다. 모기 걱정 없이 몇 장의 달 사진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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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만 해도 탯줄 감듯이 구름을 휘감았다 풀며 흐르는 달은 평소와 같은 노란색이었다.


달빛 환한 자리에 누우니 달이 보이지 않았다. 빛만 남겨두고 벌써 기울었나? 그럴 리가 없지. 달이 없는데 달빛이 있을 리가 있나. 아직 멀리 가지는 않았겠지. 어둡고 작은 이 공간을 환하게 비추는 주인공을 향해 등밀이로 창을 향해 다가갔다. 이런, 달이 창틀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안방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어 수줍어하는 달을 창틀이 숨겨주고 있었다. 괜찮아. 그냥 들어와도 돼. 마치 커다란 나무 뒤에 숨어 나를 지켜보던 친구를 대하듯 달에게 말했다.


그런데 달의 낯빛이 두어 시간 전 낯빛이 아니다. 구름을 완전히 걷어낸 달은 환한 노란색이 아닌 붉은색이다. 또 사진을 찍었다. 레드문은 지난달 그러니까 양력 5월에 있었다. 한 달 만에 보는 오늘 이 붉은 달은 어떻게 된 걸까? 달의 윤곽이 선명한 걸로 봐서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온통 하늘을 뒤덮은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밤 사이 공기의 흐름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 한 뼘쯤 열어 두었던 창을 모두 닫았다.


인간도 물과 바람처럼 흐른다. 정체되거나 흐름이 약한 곳에서는 이런저런 것들과 마음을 섞고 나누며 한가하게 흐르기도 하지만 대체로 소용돌이를 치며 흘러간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주로 살림살이에 치여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흘러간다. 저장마늘을 사다 까고 빻아 냉동실을 채우고 두 번째 오이지를 담그고 맛나게 간이 밴 첫 오이지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눠 보냈다. 다시 저녁이 왔고 하루가 지난 후에야 어제의 그 한가한 시간에 마음 나눴던 그 붉은 달이 궁금해졌다.


이미 기사화되어 있는 달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스트로베리 문이란다. 스트로베리 문은 인디언들이 6월에 뜨는 보름달을 부르던 애칭이라고 한다. 즉, 6월은 딸기가 붉게 익는 철에다 이때 뜨는 보름달이 붉은색을 띠어 인디언들이 스트로베리 문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솔로들은 달달해 보이는 붉은색의 스트로베리 문을 보며 솔로 탈출을 기원하기도 하고, 또 서로 간만 보며 상대가 먼저 고백하기를 기대하던 사이인 썸남 썸녀들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변함없는 사랑을 약속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레드 문에 비해서는 약간 핑크빛을 띤 것 같기도 했다. 미세먼지나 초미세먼지에 뒤덮인 듯 안개가 낀 색으로 보았으니 아주 먼 곳을 보는 내 시력이 완전히 죽지는 않았구나 싶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기도 하다. 붉은색으로 보이던 달이 사랑이라는 말이 들어가니 금세 핑크빛으로 바뀌었다.





달의 종류도 여러 가지다. 달의 참과 이지러짐에 따라 불리는 삭에서부터 초승달, 보름달, 하현달, 그믐달 외에 둥근달이나 반달이라는 이름도 있다. 또 양력을 기준으로 한 달에 두 번 보름달이 뜨게 되는 경우 두 번째 뜨는 보름달을 블루문이라고 부른다. 블루문은 기존의 우울한 달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요즘은 블루문을 보면 오히려 행복해질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 사는 일이 모두 생각하기에 따라 좋은 쪽으로도 그 반대로도 작용하는구나, 달도 예외는 아니구나 싶다..


이미 알고 있던 달의 모양 변화에 따른 여러 이름과 레드 문, 블러드 문, 슈퍼 문, 블루 문에 이어 스트로베리 문까지 알게 되었다. 스트로베리 문은 이름을 알기도 전에 만났지만 뒤늦게라도 이름을 알고 나니 왠지 달과 더 친해진 듯한 느낌이다.


"엄마, 달이 저기서부터 자꾸 우리를 따라오네."

"우리가 깜깜한 밤길 간다고 환하게 비춰주는 거지. 무서워하지 말라고."

외갓집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정수리에는 환한 보름달이 우리와 함께 있었다. 달의 종류에 '따라오는 달'을 끼워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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