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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돔 굽이굽이 펼 황진이는 어디 계신가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by 장미


캐나다 북서부 어느 지방에서는 더위 때문에 사망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6월 28일 하루 동안 69명이나 되는 사람이 더위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다. 정확한 원인은 더 살펴봐야 하겠지만 기상학자들은 지구온난화가 그 원인이라고 본다는 얘기다. 지구온난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입으로만 떠들다 끝낼 일은 더더욱 아니다.


문득 어려서 겨울을 앞두고 어른들이 하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벌써 가을이 다 갔네. 없는 사람에게는 그래도 여름이 낫지. 이번 겨울은 또 얼마나 추울까 모르겠네."


내가 한 세기를 산 것도 아니고 불과 반세기 조금 더 살았을 뿐인데 몇십 년 사이에 겨울과 여름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이 이토록 달라졌는가 싶다.





어린 날을 돌아보면 겨울을 앞두고 어른들은 할 일이 참 많았다. 이엉도 새로 해 올려야 하고 김장과 메주 쑤기, 문풍지 바르기 등 곁에서 지켜보자면 하루도 한가하게 쉬는 날이 없어 보이는 가을이었다.


문풍지 정도야 가족끼리 날 잡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누렇게 변색된 문풍지에 물을 뿌려 불린 다음 종이를 뜯어내고 새로 산 새하얀 창호지를 붙여 말리면 된다. 아버지는 창호지를 붙이실 때 푸른 국화잎 한 장을 손잡이 가까운 부분에 끼워 넣곤 하셨다. 국화잎을 붙이고 그 위에 작은 창호지를 오려 한 겹 더 붙이면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엉이나 김장은 가족끼리는 할 수 없는 벅차고도 벅찬 일이었다.


요즘은 짚으로 지붕을 해 얹은 집 즉 초가집은 민속촌에나 가야 볼 수 있다. 내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만 해도 기와집에 사는 사람보다 초가집에 사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따라서 가을이면 햇 볏짚으로 이엉을 엮어 묵은 이엉 위에 올리곤 했다. 이엉은 2~3년 만에 한 번씩 새것으로 바꿔 올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초가집이 사라지고 현대식 주거가 보급되면서 이엉 얹는 모습도 볼 수 없게 되었다. 볏짚은 논에서 갈아 퇴비화시키거나 크고 둥글게 뭉쳐 팔기도 한다. 이엉을 엮어 올리는 날 아버지들은 동네 너른 마당에 모여 앉아 이엉을 엮곤 했다. 다 엮은 이엉은 아래쪽에 있는 아버지들이 지붕에 올라간 사람을 향해 던져주여야 했다.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김장 풍속도 한 해 다르게 새롭게 변했다. 요즘은 김치는 담가 먹는 것보다 사 먹는 게 훨씬 경제적이라고 할 정도로 김장을 하는 집이 줄었다. 그만큼 김치공장도 많이 늘었다. 어머니들이 하던 일을 공장에서 대신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나 어렸을 적 엄마들은 겨울을 앞두고 해마다 몇 백 포기씩 김장을 담가야 했다. 김치의 종류만 해도 몇 가지인지 지방색을 띤 김치까지 헤아리자면 수없이 많기도 하다. 이엉을 엮어 올리는 일이나 몇 백 포기에 달하는 김장처럼 여러 사람이 힘을 함께 보태지 않으면 안 될 일들에 사람들은 하나 둘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래서 품앗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합쳐 돕는 생활이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겨울을 준비하실 때면 어른들은 늘 자신보다 가난하게 사람들이 추운 겨울을 잘 이겨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걱정들을 하곤 했다.

"그러게 말일세. 올 겨울엔 얼어 죽는 사람이 없어야 할 텐데."

"없는 사람은 배고파도 더운 여름이 낫지."





그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배부르게 먹고 등 따습게 살기 위해 공장을 짓고 공장에서 일을 했다. 농사는 기계화가 됐고 수확량도 늘었다. 수확량이 많은 해에는 이웃 가난한 나라에 쌀을 무상 제공하기도 한다. 먹고살 만해졌다. 그럼에도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한다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 때문에 목숨을 잃기도 한다.


거리에는 한여름 뙤약볕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그늘막이 설치되어 있다. 관공서든 마트든 에어컨을 틀어두고 누구든 들어와 쉴 수 있게 한다. 바야흐로 여름이 겨울에 비해 나을 것이 없는 계절로 변한 것이다. 겨울은 겨울대로 혹한을 몰고 와 사람이 편안하게 살기 쉽지 않으니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는데 여름철 더위가 지나치게 심해 겨울 못지않게 살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내가 어른이 되기 전에는 한여름 기온이 30도가 넘어가면 죽을 듯이 느껴지곤 했었다. 그런 여름 기온이 언제부턴가 30도 넘는 날이 늘었다. 여름 기온 30도 정도는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그러더니 그 후 몇 해 사이에 35도를 넘나들기 시작했다. 어느 지역에서 드디어 39도를 넘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아직 36도 아래서 숨을 쉬고 있으면서도 숨이 턱턱 막혔다. 1도 내려가는 겨울보다 1도 올라가는 여름이 견디기 더 힘들어졌다. 내가 살아오는 몇십 년 사이에 의복은 추위를 막고도 남을 정도로 품질이 좋아졌다. 거기에 겨울 기온도 조금씩 올라 추위가 추위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반면 여름 기온은 가파르게 상승한 것처럼 느껴진다. 여름에 대한 적응이 더 쉽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번 69명의 귀한 생명을 앗아간 캐나다 북서부의 폭염은 열 돔 현상 때문이라고 한다. 열 돔 현상은 '지상 5~7km 높이의 대기권 중상층에 발달한 고기압이 정체하거나 아주 서서히 움직이면서 뜨거운 공기를 지면에 가둬 더위가 심해지는 현상(시사상식사전)'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고기압에서 내려오는 뜨거운 공기가 마치 돔(반구형 지붕)에 갇힌 듯 둘러싸기 때문에 열 돔으로 불리며 열 돔 현상은 미국과 아시아 등 중위도에서 주로 발생한다고 한다. 열 돔 현상이 생기면 지금까지에 비해 5~10도 이상 기온이 높은 날이 계속 이어진다니 견디다 못해 목숨까지 잃게 되는 것이다. 미국 중서부 지역의 옥수수 농사는 열 돔 현상에 '콘 스웨트(corn sweat) 현상까지 더해지면서 무서운 폭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한다. 콘 스웨트 현상은 드넓은 옥수수 밭에서 자라는 옥수수들이 수분을 대기로 내보내 열 돔 현상이 생긴 지역에 습도까지 높아지니 더욱 견디기 힘들 수밖에 없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등 따습게 먹고살자고 시작한 여러 가지 일들이 그야말로 갖가지 이변을 낳게 되었다.





현대판 황진이를 기다린다.


예전의 황진이는 동짓달 기나긴 밤 허리를 베어냈지만 현대판 황진이는 이 열 돔도 그대로 보관하기를 바란다. 예전의 황진이는 서리서리 사려두었던 동짓달 밤 허리를 사랑하는 님 오신 밤에 굽이굽이 폈지만 만민을 사랑하는 현대판 황진이는 열 돔을 보관했다가 한겨울 추위에 떠는 배고픈 사람들에게 고루 나눠 줄 것이다. 아니 과거 빙하기와 같은 시기가 지구상에 다시 나타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때를 위해 열 돔을 차곡차곡 쌓아 보관해 둘 황진이는 어디 있는가 말이다.


비약이 심했다. 한여름이 아닌 한겨울에 열 돔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 너무 멀리 나갔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추위가 심한 겨울도 문제지만 더위가 펄펄 끓는 여름 또한 겨울 못지않게 어려운 계절임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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