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남편 출근 후 동네 한 바퀴 더 돌고 난 다음 막 샤워를 끝낸 참이었다.
카톡이 울렸다. 코로나19 유행 전에는 가끔 함께 차를 마시던 이웃 주민이었다. 사마귀 사진도 보내왔다.
- 손님 오셨네요.
나도 답을 보냈다. 아침 운동하다 본 제법 큰 사마귀 사진과 함께. 사진 위치 상 내가 사마귀를 보았던 물받이 그 자리인 듯했다.
- 아침 운동하면서 7시 안 돼서 뵌 것 같은데 아직 거기 계신가 보네요. 감사해요.
- 보셨군요. 못 보셨으면 보시라고.
- 네, 좋은 손님이시기를. 집안으로 모실 수 없는 손님이라.
- ㅎㅎㅎ
점심 전 마트에 다녀오다가 그 이웃을 만났다. 그녀가 아침 일찍 사마귀가 있던 자리에서 사마귀를 보고 있었다. 사마귀를 앞에 두고 그녀와 사마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가 사마귀 먹이가 없다며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자리를 조금 옮겼나 봐요. 풀 뜯어먹으러 가려는 걸까요?"
"사마귀는 풀 안 먹어요. 육식성이거든요. 살아 있는 작은 곤충들을 잡아먹고 살아요."
"아, 그래요? 처음 알았어요."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적 있는데 교미 후에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더라고요."
"어머, 수컷이 알의 양분이 되는 거네요."
"그렇죠."
"어쨌든 풀 밭으로 가야겠네요. 풀은 먹지 않더라도 풀밭에 가야 먹잇감이 있을 테니까요."
"아까 더듬이를 건드려봤는데 앞 두 다리를 들고 공격인지 방어인지 태세를 갖추더군요."
"그러고도 남죠,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곤충이죠."
덩치를 보아하니 암컷일 확률이 크다. 여기 이대로 있다가는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되었다. 어깨에 장바구니를 멘 채 사마귀 더듬이를 건드려 보았다. 뒤쪽으로 얌전히 모으고 있던 앞발을 펴면서 다리를 높이 들었다. 세모꼴의 머리를 그녀와 내 쪽으로 향한 채 고정된 자세를 취했다. 소리를 가진 곤충이었다면 위험에 처했다는 의미를 소리를 냈을 수도 있다. 한 번 더 더듬이를 건드렸다.
푸드덕, 제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펄쩍 날아올라 조금 높은 곳으로 옮겨 앉았다. 그리고 더는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날아오를 때 본 속 날개는 진한 황금색이어서 겉 날개 양쪽의 초록색과 대비되었다. 지금은 이 자리가 좋은가 보다. 저 있을 자리에 잘 있는 사마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흉 비슷한 것을 본 건 아닌가 민망해졌다. 나이 든 두 여자가 심심할까 싶어 날아와 준 것인지도 사마귀에게 말이다.
점심 후 하늘이 맑게 개면서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분리수거도 하고 한 바퀴 돌아올 겸 집을 나섰다. 가을이 이렇게 다가오는구나 싶었다. 사마귀 있던 자리를 먼저 살폈다. 사마귀가 그 자리에 없다. 날아갔나 보다. 아니었다. 반대편 벽에 처음 보았을 때와 같은 자세로 비스듬히 붙어 있었다. 저와 같은 자세로 먹잇감이 나타날 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을 수 있다니 사마귀에게 존경심마저 들었다. 더구나 지금 사마귀가 앉아 있는 자리는 곤충이 나타날 확률이 거의 제로라고 볼 수 있는 시멘트 벽이다. 가뭄에 콩 나듯 보이던 파리나 노린재류도 요즘은 보이지 않는다.
분리수거하려고 들고 있던 플라스틱 두부 상자로 사마귀를 유인했다. 플라스틱 두부 상자에 사마귀를 담아 풀밭에 데려다 놓을 참이었다. 사마귀가 푸드덕 날아 다른 자리에 앉기를 서너 번, 등 쪽의 회갈색 날개와 그 양옆으로 초록색 무늬를 가진 날개를 펼칠 때마다 안쪽의 황금색 속 날개가 빛났다.
다섯 번 만에 사마귀는 날아올랐다. 플라스틱 두부 상자 같은 건 단 1초라도 사마귀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듯 날개를 펼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길어도 삼사 초 사이였을 것이다. 내게는 더없이 길고 아름다워 보이는 그 시간을 뒤로하고 사마귀는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 나무들 사이로 날아 사라졌다.
가을 문 앞에서 아름다운 손님을 만났다.
하지만 집안으로 들이지 못했다. 차 한 잔 나누지도 못했다. 당사자가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다를 뿐인 손님의 생태에 대해 돌려세우지도 않고 면전에서 들으라는 식으로 험담을 했다. 머리가 온통 투명한 두 개의 연두색 눈으로 가득했던 손님에게 사과한다.
많이 먹고 건강한 가을맞이 해서 알 많이 많이 낳기 바란다. 너를 날려 보낸 내 유치한 행동이 너를 위한 것이었다는 시답잖은 말은 하지 않겠다. 가을에 들기 전 마음부터 청소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