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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Aug 24. 2021

처서 새벽, 매미 울음 끊기고
먼 데서 귀뚜라미 소리만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눈을 뜨니 새벽 두 시 반이다. 


문득 사위가 조용하다. 귀를 기울여도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일찍 잠들었던 것도 아닌데 일찍 눈이 떠진 걸 보면 또 생각 많은 가을 안으로 성큼 들어선 것이다. 


달력을 보니 처서다. 작년 처서에 찍은 사진과 처서 관련 속담을 찾아 읽었다. 보라색 비비추의 계절이 가고 꽃도 잎도 모양새는 비슷하지만 희고 큰 꽃을 가진 옥잠화가 피기 시작했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속담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가을이 왔다는 속담이기도 하다. '처서가 지나면 풀도 울며 돌아간다'는데 벼가 패고 알곡이 여무는 일만 남은 듯 봄부터 가꿔온 많은 것들이 더 이상의 성장은 멈추고 수확을 앞두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어제 일기예보로는 2021년 처서인 오늘 8월 23일엔 태풍 오마이스 영향으로 강풍과 큰 비가 예보되어 있다. '처서에 비가 오면 흉년이 든다'라는 속담은 예부터 결실기에 든 작물들이 비를 맞으면 제대로 여물기 힘들다는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처서 무렵엔 태풍이 지나가지 않는 해가 거의 없기도 하다. 이러니 '처서에 비가 오면 큰애기들이 울고 간다'라는 속담도 나왔으리라. 처서 날 비가 와서 흉년이 들면 혼기를 앞둔 큰애기들 결혼 자금이 달릴 테니 말이다. 


지금껏 맛나게 잘 먹은 과일들 맛도 빗물이 들어 맛이 떨어질 테다. 하지만 제때 모종으로 심은 김장 배추는 뿌리가 잘 내려 물골 근처만 아니라면 태풍 정도는 잘 견딜 수 있다. 시기를 놓쳐 며칠 늦게 심은 김장 배추나 배추보다 심는 시기가 늦는 무는 뿌리내릴 시간이 모자라 피해가 갈 수도 있겠다. 몇 해 텃밭 농사 지어봤다고 이 시기 태풍에 대한 기억들이 새록새록 한 새벽이다.


한 달 후면 추석인데 사과와 배 등 과일을 적어도 떨어뜨리는 큰 피해만은 남기지 말고 태풍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꽃 피고 진 후 맺힌 열매들을 보며 가을 맞아 수확만을 기다리고 있을 농부들 마음이 읽힌다. 좋은 시작과 함께 노고를 마다하지 않았으니 그 몇 배의 좋은 결과를 앞두고 태풍 때문에 노심초사할 마음 말이다.


태풍이 지나고 나면 '처서 밑에는 까마귀 대가리가 벗겨진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뜨거운 한낮의 볕이 구월 중순까지는 이어지리라. 떨어지지만 않고 나무에 붙어 있을 수 있다면 사과든 배든 어떤 과일이든 까마귀 대가리 벗겨질 볕에 달달하고 맛나게 익어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으리라.





광복절까지만 참으면 더위도 한풀 꺾인다.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숨쉬기도 힘들 정도로 근래 보기 드물었던 더위가 불과 보름 전까지 이어졌었다. 그 더위 속에서 입추가 다가왔고 절정으로 치닫던 더위도 말복을 맞아 한숨 돌릴 기대에 부풀었다. 


오늘 새벽엔 얇은 카디건을 걸쳐야 할 정도로 선선한 기운이 강하다. 세 시 반이 넘자 불콰한 남자들이 이쑤시개로 이 사이에 낀 음식 찌꺼기를 빼낼 때 내는 이 바람소리로 우는 새들이 아침을 노래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매미 소리는 들리지 않고 귀뚜라미 소리만이 메아리처럼 들려온다.


성하면 기울게 마련이다. 절기를 알지 못하던 어린 시절에도 광복절이 지나면 하루 다르게 날씨가 선선해짐을 느끼곤 했었다. 그 시절엔 말로만 들어 실감이 덜했음에 틀림없지만 우리에게 고통을 준 일제의 극성도 극도에 달하자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마침 그 시기가 가을을 앞둔 시점이어서 일제의 패망과 여름이 꺾이는 부분이 맥락을 같이하여 성하면 기운다는 말에 대한 이해도 쉽게 다가왔다. 만물이 그렇고 만사가 그렇다.





올 한 해 무엇을 하며 가을을 맞고 있는가.


올해도 지난해처럼 코로나19로 인해 먼 데 여행 한 번 못하고 가을을 맞았다. 아니 올해는 코로나19의 변이종들이 유행하는 데다 감염병에 대한 행동 수칙이 강화돼 가족들조차 제대로 못 보고 명절을 보냈고 가족 기념일도 보냈다. 강화되고 그 강화된 수칙이 2주 연기되기를 수 차례 지속되고 또 연기되었다. 백신을 맞았는데도 다시 코로나19에 감염되기도 하고 백신 접종 후 사망 소식까지 접하며 죽음을 근처에 키우며 살고 있음을 실감하며 지낸다.


먼 후일, 우리 후손들은 오늘의 우리를 어떻게 기억할까. 지층과도 같을 인간 역사의 어느 시기에 그러저러한 감염병이 있었다고 오늘의 우리를 기억할까. 과거 페스트가 유행하던 시기에 대해 지금 내가 아는 척하며 말하듯 말이다. 같은 인간임에도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이렇다. 


인간이 아직 극성기에는 이르지 않았기를 바란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임과 동시에 쇠락의 시기이기도 하다. 어느 시기라도 무위도식으로 살지는 않았다고 자부할 수는 있다. 하지만 감염병으로 인해 몸이 묶여 있으니 마음의 자유도 제한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시기에 맞이하는 가을이 결실이 아닌 쇠락의 길이라면 많이 아쉽고 아리다. 


다섯 시다. 사방은 언제 환했던 적 있었냐 싶에 어둡다. 해가 짧아진 탓도 있을 테고 구름이 낀 탓도 있겠다. 세상사 어느 것도 하나만 똑 떨어져서 일어나지는 않는다. 어느 먼 나라 말 없는 고운 나비 날갯짓에서 인 바람이 내 눈꺼풀을 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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