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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Oct 10. 2021

비는 그치고 비는 내리고

시시


장마철 먼 데 하늘이 빤해지면

남동생은 밖으로 뛰쳐나가며 소리쳤다

비 안 와 엄마

놀다 올게


가늘어졌을 뿐인 빗방울의 뿌리

먹구름을 올려다보는 엄마 눈이

사르르 떨렸다 열두어 살

아들에게 가느다란 빗방울은 비가 아님을

엄마는 유전적으로 알고 태어난 듯했다


다저녁에야

빗방울인 듯 땀방울인 듯

물 범벅으로 들어서는 아들을

까까머리부터 발끝까지

엄마는 또 말없이 오독오독 소리 나게 씻겨 주었다


남편이 등산 가방을 둘러맸다

비 그쳤네

다녀올게


며칠째 내리는 가을비가

깊어가는 가을의 가늘지 않은 비가

남편 등에 빗금을 그었다

이런 날 내 안에선 세상 떠난 지 오랜

엄마 유전자 한 방울이 스멀거린다

해마다 단풍은 

쌓인 내력 위에 홍수로 내리는데

비는 내리고 

비는 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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