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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Oct 27. 2021

엄마는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돼

나의 사랑 깨랑이들  


토요일인 그제 큰딸에게 다녀왔다. 지난 추석 이후 한 달 만이다. 챙겨간 것 건네고 받을 것 받은 다음 앉지도 않고 바로 돌아서 나왔다. 딸의 약속 시간도 코앞인 데다 남편 차를 타고 가긴 했지만 코로나 돌파감염까지 말썽이라 더욱 조심스러워서였다.


"엄마, 추운데 차만 한 잔 하고 가시지."

"아냐, 가야지. 엄마 3개월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만 보 이상 걷는 중. 너도 운동 열심히 하고."

딸내미가 엄마를 꼭 껴안았다.

"아무 때나 마음먹으면 실행하면 돼. 마음먹는 날이 작심한 날이잖니. 매일 작심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작심365일이 되지 않겠니?"

"알았어요, 엄마 최고."





다음날인 일요일, 텃밭에 다녀와 저녁을 먹는데 딸내미 전화다. 생일날 아파서 세브란스 응급실에서 지냈단다.

"왜? 어디가 아파서?"

"엄마 놀라실까 봐 어제 말씀 안 드렸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그것도 모르고 생일날 미역국 먹었냐고 물었던 엄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여느 엄마들과 다름없이 천리안이라도 가진 양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99% 알아맞혔다. 특히 큰 아이는 미주알고주알 밖에서 있었던 일을 세세하게 알려주니 미루어 짐작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스트레스를 좀 받았나 봐요. 프로젝트도 그렇고 논문도 그렇고 일이 산더미네. 지금은 천천히 가고 있어요. 11월이면 프로젝트도 마무리되고."

"그래도 응급실 갈 정돈데 엄마한테 알리지 않은 건 너무했다. 이 엄마가 딸 엄마 맞니?"

"더 늦게 알려드리면 정말 서운해하실까 봐 늦게라도 알려드리는 거죠. 아파 보니까 엄마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알겠어요. 내 일 하나 가지고도 스트레스 받아 아프기까지 한데 엄마는 우리들 키우랴 아빠 내조하랴......"

딸이 울컥한 모양이다. 목소리가 일그러지며 끊겼다.


"딸, 울지 마. 엄마를 이해해 줘서 고마워. 엄마가 되면 어느 엄마라도 다 비슷할 거야, 자식 위해서라면. 이것도 엄마 복이네. 엄마는 우리 엄마한테 한 번도 고맙다거나 사랑한다는 말 해 본 적이 없는데 우리 딸들은 엄마를 이해도 해주고 고맙다. 우리 엄마가 보시면 흐뭇해하시겠다."

"엄마, 그때 말 안 들어서 죄송해요."





텃밭 수확물을 다듬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둘째가 카톡을 보냈나 보다. 오전에 보낸 톡을 저녁 식사 후에야 확인했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SR] [오후 3:29] 엄마앙

[SR] [오후 3:29] 그때 시험 붙고 자식자랑도 못하게 해서 미안해요옹..

[SR] [오후 3:29] 이모티콘





딸들은 입학식에도 졸업식에도 학교에 얼씬도 못하게 엄포들을 놓았었다. 같은 고등학교와 같은 대학 동창 사이인 딸들의 결속력은 아무리 엄마라도 끼어들기 쉽지 않을 정도로 대단하다. 둘째 입학식이 끝난 후 학부모 초대의 날 행사 때 비로소 마음 편히 학교 구경을 할 수 있었다. 그러던 딸들도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나 보다. 사는 일이 엄마 아빠의 방패가 있던 시절과는 많이 다름을 느끼는 날도 많으리라.


어제오늘 딸들이 갑자기 철이 들었나 보다 싶으니 내 나이듦은 미루고 딸들의 성장에 눈가가 촉촉해진다. 나도 내 엄마께 우리 딸들이 내게 하듯 이쁜 모습을 좀 보여드렸더라면 엄마가 얼마나 행복해하셨을까 싶어진다. 돌아가신 후에 삐죽 찾아가 묘소에 절하고 살가운 척하는 내가 참 못났다.


엄마란 존재란 무엇일까. 나이 들어서 엄마란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었다. 엄마란 아니 부모란 무엇이기에 자식들은 하나같이 부모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 하는지 나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른 형제자매들에 비해 사랑을 덜 받는다는 생각이 들면 토라져서 툴툴거리거나 말도 하지 않고 서운해하는지 같은 인간일 뿐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그만일 일을 부모에게는 왜그게 안 되는지 말이다. 엄마의 나에 대한 사랑이 남동생들에 대한 사랑보다 늘 부족하다고 느끼며 불만을 품던 시기였다. 그 시절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나는 자주 많이 그리고 오래 아팠었는지도 모른다.





거의 언제나 둘이 한 편인 딸들은 그러나 서른을 훌쩍 넘어서도 엄마가 누구를 더 사랑하는지에 대해서는 늘 티격태격한다.


딸들, 사랑한다.

엄마는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돼. 엄마를 이해하는 건 세상의 모든 이치를 알려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단다. 엄마에게는 딸들이 함께하는 삶 자체가 딸들에게 이해받는 것보다 훨씬 좋은 선물이란다. 딸들의 엄마인 내게 내 엄마가 주신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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