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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Dec 29. 2021

과신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지난가을 생강으로 내가 만들 수 있는 여러 가지를 만들었다. 생강편과 다진 생강은 냉동실에 넣어 두고 생강가루와 상온에서는 생각보다 빠른 발효가 될 수도 있을 생강주, 생강청 등은 바로 먹을 것들만 상온에 보관하고 나머지는 냉장실 깊숙이 넣었다.


그동안 한 잔씩 타 마시던 생강청을 다 마셔 오늘 아침 냉장고에 넣어둔 생강청 한 병을 꺼냈다. 생강청 꺼내는 김에 생강주도 꺼내어 상태를 살펴보기로 했다. 생강주 병 옆에 기억에 없는 꿀병이 눈에 띄어 꿀병도 꺼냈다. 인삼을 저며 넣은 모양이다.





1년 정도 두었다 먹을 청들은 날짜와 종류 등을 기입한 라벨을 붙여 상온에 보관한다. 생강청과 생강주는 두어 달 지나면 먹을 생각에다 냉장실에 넣으니 굳이 귀찮은 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라벨 없이 그대로 넣었다. 냉장실이 잘 알아서 괜찮은 상태를 유지해 주리라 믿었다. 냉장실의 기능보다는 내 머리를 믿었다는 표현이 옳겠다.


생강차를 타기 위해 병뚜껑을 열고 컵에 따랐다. 어느 정도 입에 맞게 숙성되었나 싶어 맛을 보았다. 반 모금 정도 마셨나 보다. 생강청이 아니다. 생강주다. 의심 없이 넘긴 생강주가 목구멍을 달궜다. 이 정도로 아침부터 가렵거나 잠을 청하지는 않겠지 싶으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생강청 병에도 생강주 병에도 모두 생강이 아래쪽에 가라앉아 있다. 생강주 병에 담긴 생강은 말려서 넣었는지 생강이 쭈글거리는 게 다를 뿐이다. 생강청인지 생강주인지를 왜 입안에 털어 넣으며 확인하려 한 것인지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생강주 한 모금으로는 아직 정신이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꿀병을 열어 인삼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이런 걸 두고 반복 실수라고 해야 하나. 인삼이 아니다. 아삭하게 씹히는 달달한 꿀맛 생강이다. 덩어리로 씹히는 생강은 눈살을 찌푸릴 정도고 기분 좋은 맛이 아니다. 대강 씹어 삼켰다. 입에 든 이상 상하지 않은 음식이라면 뱉지 않는 나는 이렇게 확인하지 않고 맛을 보다가 죽을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가끔은 한다.





생강청 세 술에 생강 꿀 한 술을 넣고 끓는 물을 부었다. 따끈하고 달달한 생강 꿀차를 한 모금 넘기며 소리 소문 없이 간밤에 살며시 다녀간 건너편 건물 옥상에 쌓인 눈밭을 바라본다. 까치 네 마리가 뭐라 뭐라 고갯짓을 하더니 두 마리가 옆 건물 지붕을 넘어 날아갔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제는 몇 개월도 믿어서는 안 될 머리가 되었나 보다. 생강술을 생강청인 줄 착각하고 입안에 털어 넣지를 않나, 생강을 인삼으로 알고 입에 넣지를 않나...... 요즘 들어 나에 대한 지나친 확신에서 비롯된 실수는 없었는지 돌아보는 아침이다.




사진 : Bluebird Provisions / unsplash




*** '과신 오류'에 대한 글이 있어 담아 봤습니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51065&docId=2176173&categoryId=51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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