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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Jun 12. 2022

문제의 원인은 언제나 내 안에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문제의 원인은 언제나 내 안에 있다. 그 사실을 잊는 순간 다툼이 발생한다. 먼 데 큰 일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나이 든 부부만이 남아 사는 가정사 또한 예외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천재다. 더구나 성찰을 통한 '문제의 원인은 내 안에 있음'을 발견한 지 얼마나 됐다고 내내 그 원인을 찾아내고 상기하면서 사는 일은 지극히 불편한 일인 동시에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성인들의 경우는 예외로 하고 말이다.


오랜 시간 함께한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서운함마저 불러일으킨다. '아직도 날 그렇게 몰라?'가 튀어나오기 직전 입을 다물어 버리는 건 결코 묵언수행이 아니다. 차라리 지옥에 한 번 다녀오는 편이 나을 법하다.





사나흘 물에 불린 마늘과 엊그제 도착한 50리터 들이 분갈이용 새 흙이 계속해서 나와 눈을 맞추려 들었다. 언제든 내가 할 일이다. 며칠에 걸쳐 마늘을 까고 분쇄기에 갈아 냉동실에 넣었다. 마늘 갈무리에 이어 분갈이도 일사천리로 끝냈다. 마늘 껍질이야 쓰레지봉투에 담아 내 놓으면 될 일이다. 문제는 새 흙으로 분갈이를  하고 난 뒤 딱 새 흙만큼의 헌 흙이 나왔다는 것이다. 버려달라고 내내 나를 바라보고 있다. 


헌 흙은 화단의 움푹 들어간 자리에 쏟으면 된다는 경비 아저씨의 말씀이 나를 살렸다. 일을 한 뒤 뒤처리를 말끔하게 처리하고 싶었지만 예전과는 몸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조금씩 덜어내 몇 번에 걸쳐 내다 버릴까 하다 남편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쉬지 않고 손가락을 놀리긴 했나 보다. 일을 마칠 즈음 오른손 중지 중간 마디가 약간 부은 듯도 하고 가끔 통증도 있다. 남편이 헌 흙을 내가 버리기 편하게 해 두어야 할 것 같다. 헌 흙을 새 흙이 담겨 있던 상토 봉지에 답는 수고까지는 하기로 했다.


상토 봉지에 헌 흙을 담고 상토 봉지 상단 입구를 배달 시 상토 봉지를 이중 포장하고 있던 더 큰 봉지로 씌워 두었다. 아파트 화단까지 헌 흙이 무사히 도착하기 위해서는 헌 흙이 담긴 봉지를 더 크고 튼튼한 봉지에 담아 할 것 같은데 내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 


저녁 무렵, 남편에게 헌 흙 봉지를 더 큰 봉지에 담아야 안전하게 아래층까지 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알렸다. 베란다 화분갈이까지 다 끝난 후에 숟가락이라도 올릴 수 있게 되어 미안하면서도 나름 기분이 좋은 남편이 바로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알았어."

남편이 허리를 굽혀 헌 흙이 담긴 50리터 비닐봉지를 불끈 들어 올렸다. 들어 올리긴 했지만 바로 내려놓았다. 같은 50리터라도 구입한 상토는 젖은 상태가 아니니 나 같은 사람도 끌어 옮길 수가 있었다. 하지만 버려야 할 흙 50리터는 마사토도 섞였고 그 동안 먹은 물기도 제법 남아 있어 새로 구입한 상토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무거웠다.


그래도 남편이 누구냐. 무슨 일이든 힘쓸 일이 있으면 적어도 내 앞에서만큼은 힘 자랑만은 질 수 없는 사람이다. 남편이 심기일전하여 다시 한번 헌 흙이 담긴 봉지를 들었다 놓았다. 그러는 사이 상토 봉지 위를 덮고 있던 큰 봉지가 미끄러지면서 버려야 할 흙이 와그르르 바닥으로 쏟아졌다.


재빨리 신문지를 갖다 깐다고 깔았지만 이미 늦었다. 어제 화분 정리 후 쓸고 닦고 쓸고 닦고 물청소까지 몇 번씩이나 한 자리다. 다시 쓸고 닦고 또 쓸고 닦아야 한다는 생각과 아픈 손가락 마디가 잠시 이성을 잃게 했다. 남편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쇳소리 섞인 목소리가 절로 내질러졌다. 

"아니 위에 있는 봉지에 헌 흙 봉지를 담아야 한다고 얘기했잖아."


아차 하는 사이 침묵이 찾아왔다. 분명 2~3초였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영원처럼 느껴지는 침묵이 지속되었다. 하지만 한 번 오른 감정이 사그라지는 데는 약간의 여유가 필요했다. 쇳소리를 죽이며 나직이 말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엘베에서 봉지에 상처라도 나 봐. 그걸 어떻게 감당하냐고? 그래서 봉지를 이중으로 하자던 건데."


내 목소리는 뒤로 갈수록 점점 꼬리를 내렸고 남편은 나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조용히 말했다.

"지금처럼 조용히 다시 알려주면 되지. 그걸 꼭 소리를 질러야 맛이냐?"

그래 소리를 질러야 맛이다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지는 해 정도의 표현에도 감지덕지해야 할 시기를 지나고 있다. 눈을 내리깐 채 쏟아진 흙을 바라보고 있는 내게 남편이 다시 말했다.

"내가 다 해 줄게."





노래 가사의 '내가 다 해 줄게'는 그럴듯한 사랑의 감정의 표현이다. 그러나 지금 남편 입에서 나온 '내가 다 해 줄게'는 같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지옥보다 더 무겁고 떨쳐내고픈 끈적한 속삭임이다.


남편은 이제 팔팔하던 삼사십 대의 남자가 아니다. 국가적인 호칭으로는 '어르신'에 속한다. 누구나 인정하는데 나라는 여자만이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니다, 남편 또한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아내의 마음에 부응하려 부단히 애를 쓰는 중이다. 남편도 나도 우리의 가장 좋은 시절을 결코 놓아주고 싶지 않은 속내를 서로에게 묵시적으로 전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늙었어' 하면서도 '이까짓 것 정도야' 하는 식으로 일단은 덤벼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내의 쇳소리 풍부한 목소리에 바짝 정신 차린 남편이 헌 흙 봉지를 덮고 있던 더 큰 봉지를 벗겼다. 버리려고 담아 두었던 흙이 화르르 쏟아져 내렸다. 나는 더는 말하지 않으려고 입술을 안쪽으로 꼭꼭 모아 들였다. 남편은 한 번도 내가 하는 일을 폄하하거나 도움을 거절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도와주기에는 젊었을 때엥 비해 나이만 많이 먹은 여전히 어린 소년 같은 데가 많은 남자이다. 


좋자고 한 화분 정리가 남편과 나 사이에 분란을 일으켜서는 말도 안 된다. 태어날 때부터 어른이었던 여자 내가 참자. 마늘 먹고 인간 여자가 된 곰이 참자. 단군신화는 이 땅의 여자들에게 참는 법을 잘도 가르쳤다.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어쨌든지 참아야 하느니라.


남편이 무거운 상토 봉지를 들어 올리는 동안 나는 큰 봉지를 헌 흙 봉지 아래쪽으로 밀어 넣었다. 헌 흙 봉지가 큰 봉지에 어렵사리 담겼다. 나는 큰 봉지를 위쪽으로 잡아 올리고 남편은 헌 흙 봉지를 전후좌우로 힘주어 당겼다. 헌 흙 봉지가 큰 봉지 안으로 쏙 들어갔다.

남편이 그제야 나를 바라본다.

"됐지?"

"됐어. 근데 우리 이 흙 봉지 이대로 한쪽 구석에 세워두고 사용하면 안 될까?"

"버리자며? 봉지가 찢어져서 엘베에 흙 흘릴 수도 있다고 이중으로 담아 버리자며?"


선량은 하지만 뒤끝 있는 남편이다. 

"방금 생각난 건데 이대로 세워 두고 알로에 옮겨 심으면 어떨까 해서. 알로에가 새끼를 몇 개나 쳤는디 봉두난발 저리 가라야."

"그러든지."


버리기로 했던 흙을 버리지 않고 이중으로 봉지에 담아 한쪽 벽에 세워 두었다. 헌 흙 봉지와 바깥쪽 봉지의 잘린 면을 각각 둥글게 바깥으로 말았다. 며칠 새 알로에까지 정리하고 나면 앞으로 몇 해 동안은 분갈이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다. 알로에는 물을 주지 않아도 오래 잘 사는 식물이다. 이렇게 흙이 많으니 묻어만 두고 쓰러지지 않도록만 살피기로 한다.





남편이 헌 흙 봉지를 벽 모서리에 세워두고 봉지 아래쪽을 작은 플라스틱 막대로 괴며 말했다.

"쓰러지면 큰일 나잖아. 혹시 물을 흘릴 수도 있고."


언제 목에서 쇠 긁히는 소리를 냈던가 싶게, 언제 아내에게 불만이 있었더냐 싶게 부부는 또 저녁을 맞았다. 저녁 식사 후 주말 연속극에 눈을 두고 앉았다. 남편이 붙이는 파스와 반창고를 들고 왔다.

"손가락 이리 내 봐. 파스랑 반창고로 부목처럼 대 줄 테니까 내일 현충일까지 손가락 쉬시라고. 그리고 분갈이는 올해로 땡. 조금씩 정리하면서 더 늘리지 말고 버릴 건 버려야 할 시기잖아."

 

그걸 깜빡했다. 젊은 척 살아도 더는 늘리지는 말아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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