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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Jun 09. 2022

분갈이 후 기분이 좋아졌다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지난 5월 8일에 분갈이용 상토 50L를 구입했다. 


어버이날 집에 들른 첫째에게 네이버 페이 사용 방법까지 배워 구입했으면서 정작 분갈이는 한 달이 다 되도록 미루고 또 미루었다. 평일엔 알량한 하루 두 시간짜리 아르바이트가 핑곗거리가 되어 주었고,  주말엔 텃밭에도 다녀왔고 둘째네 집에도 다녀왔으니 분갈이할 짬을 내기가 쉽지는 않았다.


집안일도 이제는 힘에 부치는 시기가 되었다. 화분이든 뭐든 하나씩 정리하고 더는 늘리지 않기로 정한 부분은 잘 지키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화분마다 헌 흙을 비워내고 새 흙을 채우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흙을 만지는 일이니 하다가 접을 수도 없는 일이라 일단 벌려 놓으면 하루를 잡아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제저녁까지는 며칠에 걸쳐 마늘 한 접을 깠다. 오늘은 아침 다섯 시 반경 산책 겸 빨리 걷기로 5천 보를 걸은 상태라 약간 피곤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일은 또 내일 할 일이 있을 터다. 현충일까지 사흘을 쉴 수 있으니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오늘은 분갈이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상토를 볼 때마다 마음의 부담이 커져 더는 미룰 수가 없겠다.





신문지를 여러 장 넓게 깔고 일단 화분을 옮겼다. 그런 다음 먼저 화분 받침에 낀 흙먼지를 물로 깔끔히 닦아내고 마른 걸레질을 하여 대강 자리를 잡아 두었다. 분갈이 후 볕 좋은 쪽에 둘 화분과 그늘 쪽으로 두어도 좋을 화분을 구분하다 보면 여러 차례 화분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간이 의자에 앉아 분갈이를 시작했다. 먼저 열대 구아버부터 분갈이에 들어갔다. 작은 화분에서 몇 해 동안 지내느라 많이 힘들었겠다. 뿌리가 뻗고 또 뻗어 화분 밑구멍 아래로 나오기도 했고 엉켜 있기도 했다. 흙을 대강 털어내고 먼저 화분보다 큰 화분으로 옮겨 심었다. 모아 두었던 삶은 달걀 껍질을 상토에 조금씩 섞어 화분을 채웠다.


열대 구아버 네 그루를 큰 화분으로 옮겨 심고 나니 나머지는 그야말로 껌 씹기요 식은 죽 먹기다. 문제는 분갈이 후에 나온 이미 사용한 흙이었다. 튼튼한 상토 비닐봉지에 버릴 흙을 담아 두었다. 남편의 힘을 빌리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은 또 남편의 도움을 받아야 할 일이 생겼다. 분갈이한 화분에 물을 주어야 하지만 화분 자리를 정한 다음에 주기로 했다. 물을 주고 나면 상토만일 때와는 달리 그 무게 때문에 힘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분갈이한 화분을 자리를 잡았다 바꾸고 또 잡았다 바꿔가며 겨우 분갈이를 마쳤다. 오후 2시 반이다.

다육이들은 화분도 작고 가벼운 데다 지지난해 한 번 뒤집었으니 올해는 지나가기로 한다. 


참외 한 개 깎고 아침에 먹다 남긴 사과 한쪽과 방울토마토 네 개를 들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늦은 점심을 먹었다.





얼마 동안 매사 나를 시큰둥하게 한 원인이 할 일을 제때 하지 못한 데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둘째네 다녀오면서 기분이 풀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어깨가 뻣뻣하고 앉았다 일어서기가 수월치 않을 뿐만 아니라 손가락 마디가 아픈데도 마음은 개운하다. 급기야는 비스듬히 누워 참외 조각 하나를 입속으로 밀어 넣는데도 개운하다. 


겨우내 비어 있던 화분 예닐곱 개를 버리고 나니 화분들도 약간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진작에 했더라면 뭔가 달랐을까? 


큰 화분 세 개는 분갈이를 하지 않고 모종삽으로 화분 가장자리 뿌리만 잘라주었다. 더부살이 중인 토마토 뿌리가 상했는지 시름거린다. 아기 주먹 만한 토마토가 열린 후 더는 꽃을 피우지 않고 있는 토마토다. 일반 토마토인가 하면 방울토마토 같고 방울토마토인가 하면 일반 토마토 같은 애매모호한 토마토다.


시름거리는 토마토 곁순과 꼭지 부분을 잘라 물에 담가 두었다. 뿌리가 내리면 다시 더부살이를 시켜볼까 한다.






과일을 먹으며 쉬고 나니 개운하다. 나는 지구력이 약하다. 빨리 지친다. 그러나 회복력은 빠르다. 조금 쉬고 나면 언제 힘들었던가 싶게 나돌아다닌다. 


6시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마늘을 갈무리하기로 했다. 반숙달걀에 간장과 물을 1:1로 섞어 부어 두었더니 간장 물이 들었다. 달걀 껍질은 모아 두었다 화분 옆구리 흙에 묻어두기로 한다.


마늘까지 정리하여 냉장고에 넣고 나서 달걀장조림과 내가 구운 빵과 된장국으로 저녁을 먹었다. 공사다망하신 남편은 요즘 거의 동창들과의 만남으로 내게 혼자 저녁식사를 하도록 한다. 내 남편인데 공유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내 남편으로만 지냈던 데 대한 반작용인가 보다.


분갈이 후 기분이 좋아졌다. 남편이 늦는다는 데도 너그러워졌으니 화초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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