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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Jun 19. 2022

아끼다 썩어 버린 안부 하나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집수리하시나 봐요. 어르신 안채에 계시죠?"

"읎어요."

"네? 당으로 힘들어하시는 여성 어르신 댁 아닌가요?"

"세상 떴어요."

"네?"

"봄에 세상 떴다구요."


들고 있던 참외 봉지를 떨어뜨릴 뻔했다.


집을 지은 지 오래되긴 했다. 내가 이 동네에 텃밭을 구입한 지도 올해로 26년이 되었다. 그 훨씬 이전에 지어진 집이니 건축자재부터 낡지 않으면 이상할 터다. 


서울 출퇴근이 가능한 지역이라 전원생활과 도시 생활을 겸한 젊은 사람들이 십여 년 전부터 부쩍 늘고 있는 추세다. 그럼에도 이 동네 역시 본래 사시던 분들은 60세 이상인 분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내 물음에 응대해 주신 분 역시 특유의 말투와 함께 짧게 다듬은 하얀 머리카락이 말없이 이 지역을 지켜왔음을 말해준다. 그분이 집수리를 책임진 분인지 네 사람의 인부들에게 일을 지시한다. 나는 잠시 방금 헐어낸 헌집의 폐자재라도 된 양 붙박이가 되었다.





"당은 있다셨지만 건강해 보이셨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먼 데 날아가는 새를 보며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작업에 방해만 되는 것 같아 이 힘든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작업을 지시하고 있는 분께 참외 봉지를 내밀며 말했다.


"지난해 저 위 밭에 마늘을 심었거든요. 준비해 둔 퇴비가 없었는데 마침 여기 어르신께서 퇴비 한 포를 선뜻 내주셨어요. 마늘 심어 놓고 겨울 동안 못 와 보다가 5월에 다녀가고 두 달이 흘렀네요. 어르신 안부도 여쭙고 퇴비 주신 덕분에 마늘 잘 자라고 있다고 감사 말씀 올리려고 들렀는데 많이 늦었네요. 더 일찍 왔어야 하는데 사는 일이 생각 같지 않습니다. 어르신들 일하시다가 이 참외 깎아 드세요."


그는 손사래를 쳤다.

"아뇨 아뇨. 사람도 가고 읎는데 참외는 무슨."

"연고자는 안 계시나요?"

"네."


나는 잠시 그대로 더 서 있었다. 그 사이 차에서 내린 남편이 곁에 와 섰다. 

"돌아가셨다네. 이른 봄에 와 뵐 걸 그랬네."


그랬다. 내가 이 마을에 작은 밭을 마련하고 자주 들르던 오래전 그때 전해 들었다. 내게 퇴비를 내어준 그녀는 한 남자의 두 번째 아내로 이 마을에 왔다. 내게 그 이야기를 전한 이의 말투에서 재혼이란 시대가 많이 흘러도 여전히 누군가의 입살에 오르내릴 수 있는 일이며 따라서 그 본인이 듣지 않는 자리에서 살짜기 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일 수 있겠다는 사실을 마새허개 느꼈다. 재혼이 아니라면 굳이 그녀의 결혼에 대해 말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세하게 타인의 사생활에 대해 알고 싶지 않은 내가 그녀 몰래 그녀의 비밀 하나를 알아버린 것이 내내 미안했다. 그녀로부터 그녀의 사영을 직접 들을 수 있을 만큼 나는 그녀에게 곰살맞게 굴 줄도 몰랐다.


그녀에게는 지적 신체적 장애를 가진 아들이 있었다. 결혼을 했으나 평탄치 못하다는 정도는 그녀의 재혼에 대해 내게 알려준 이와 그녀가 나누는 대화를 통해 귀동냥으로 들어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떴다. 우리가 여름철이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놀고 있으면 몇 천 원의 휴양지 관리비를 받는 일을 맡아하던 그녀의 남편도 언제부턴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잠으로 오랜만에 지난가을 그녀를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도 겨울로 접어들기 직전 뒤늦게 마늘을 심으려는데 준비해 둔 퇴비가 없어 맨땅에 그냥 심으려는 찰나 그 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라도 있었던 듯이 말이다.

"이 퇴비 작년에 받아둔 거라 풀씨도 다 삭았을 거예요. 한 포 갖다 써요."

퇴비 값은 굳이 사양하셨다. 마늘을 심고 나면 내년 봄에나 와 볼 게으른 농부의 텃밭이니다. 봄에 맛있는 거라도 사다 드려야겠다 마음에 적어 두었다. 그러나 오월 초, 씨앗 몇 가지 묻으러 올 때는 정작 그녀에 대해 적어 두었던 기억의 장은 펼쳐보지 못했다. 그리고 두 달이 흐른 칠월 초에야 그녀를 생각하게 되었다.


'부디 좋은 곳에 가서 아프지 말고 편히 쉬세요.'


두어 번 더 참외를 권했으나 극구 받지 않겠다고 외면하는 이들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려 우리 밭으로 향했다. 세상 뜬 사람에게 주려고 가져왔다는 참외를 자신들이 왜 받아먹느냐고 언짢은 마음이 들었을 수도 있겠다. 가끔 우리 밭에도 마실 다녀가듯 들러서는 초보 농사꾼인 우리 부부에게 이런저런 농사 조언을 해 주던 그녀의 꾸밈없는 친절함이 새삼 쓸쓸함이 되어 내 마음에 머문다.





남편이 예초기를 메고 풀을 깎는 동안 나는 쇠어 버린 삼잎국화를 낫으로 쳐냈다. 그녀가 나눠 준 퇴비를 먹고 자란 홍산마늘 주아가 긴 봄가뭄에도 시들지 않고 풀 속에서 잘 버티고 있다. 그녀의 동그란 얼굴이 환하게 미소 짓는 듯하다.


'나 생각해서 와준 것만 해도 고맙지. 참외는 뭐러 들고 오셔.'

'너무 늦어서 죄송해요.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얼굴 보며 손잡고 말 한 마디라도 더 나눌 수 있었을 텐테 미안합니다.'

'괜찮아요, 츰 여기 왔을 때는 많이 낯설었어요. 마음 주고받고 섞으며 산다는 게 어렸을 때나 멋 모르고 할 수 있는 일이지 나이 먹으니까 녹록지 않더라구요. 영감이랑 아들이 먼거 간 게 마음 아팠지만 사는 게 다 혼자 아니유? 다 자기 살기 바빠 남 돌아볼 여유가 없다는 거 나도 살아봐서 알아요. 잘들 살아요.'


멋대로 그녀의 마음을 상상하며 나보다 두어 살 많았을 그녀를 위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더 좋은 세상에서 아낌없는 사랑하시며 편히 지내세요.'


사람 사는 일이 이렇게 황망할 수 있을까. 지금 나는 누군가에게 전할 감사의 말이나 마음을 또 미루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있다. 아니 많다. 그것도 아주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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