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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Aug 27. 2022

사위 사랑 오이지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해마다 오이지를 반 접씩 서너 번은 담가 나눠 먹곤 했지만 올해는 거를 생각이었다. 


첫째 원인은 두 딸들이 오이지무침을 썩 즐기기 않는다는 데 있었다. 갖은양념 넣고 무쳐 보낸 오이지를 몇 개월 후 냉장실에서 보냈던 그대로 발견했을 때 알아차렸다. 오이지 같은 엄마 시절의 음식은 보낼 것이 아니라 딸들이 집에 왔을 때 함께 먹을 반찬으로 곁들여 식탁에 올리는 정도면 충분했다. 그런 반찬이 한두 가지가 아니긴 하다. 요즘은 마트에 없는 반찬이 없으니 딸들이 엄마 시절의 음식을 못 먹을까 염려할 일도 아니다. 딸들도 엄마가 힘들여 오이지나 김장 담그는 걸 원치도 않는다.


두 번째로는 남편과 내 식성의 변화다. 식성 변화뿐이겠는가 식사량이 거의 반으로 줄어 반찬 서너 가지 있으면 오이지 같은 반찬은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었다. 작년에 세 번째로 담근 오이지 예닐곱 개가 김치냉장고 한 구석을 여전히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며칠 전 둘째네 다니러 가서는 안사돈께 물 없이 담그는 오이지를 담가드릴 예정이었다. 안사돈께서 다른 건 다 잘 되는데 물 없는 오이지는 잘 안 된다시던 말씀을 기억하고 있어서다. 담가서 보내 드려도 좋겠지만 내려간 김에 사돈지간에 살아가는 이야기 나누면서 담그면 후딱 끝날 일이기도 했다. 소금으로 문질러 오이를 씻고 물기 닦아 김장 비닐에 차곡차곡 담은 다음 적정 분량의 소금과 설탕, 식초, 소주를 넣고 밀봉하면 끝이다. 그리고 하루 정도 지난 다음 입구가 묶인 김장 비닐을 전후좌우로 흔들어 굴려 오이들에 전체적으로 간이 배도록 도우면 끝날 일이다. 요즘 같은 날씨면 닷새 정도만 지나도 맛난 오이지를 먹을 수 있다. 


반갑게 만나 인사를 나누고 저녁 식사를 하면서 안사돈께 오이지를 담가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안사돈께서 눈을 휘둥그레 뜨시며 놀라신다. 모처럼 딸 집에 오셨으니 맛난 것 드시고 즐겁게 쉬다 가시라는 말씀이다. 거기 남편이 한 마디 거들었다. 

"앞으로 오이지는 사돈께서 직접 담가 드시라는 뜻 같은데요."


남편의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만들어 먹는 것과 누군가로부터 나눔 받아먹는 것의 차이란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군가로부터 나눔 받아먹는 음식은 먹는 내내 감사의 마음이 샘솟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내가 만들 수 있다면 차원이 달라진다. 나 먹을 양 외에 조금 더 만들었다면 이웃에 나눠줄 수도 있고 아예 처음부터 나눠줄 생각으로 대량을 만들 수도 있다. 건강한 음식을 내가 만들어 먹는다는 자부심 외에 나눔에서 오는 뿌듯함은 나눔 받았을 때와는 전혀 다른 기쁨이다. 무엇보다 손 큰 안사돈께서는 철철이 감자든 고구마든 과일이든 몇 박스씩 구입해 보내고픈 사람들에게 보내실 때 나를 잊지 않으시니 나도 더 좋은 것을 드리고 싶은 것이다. 그 나눔 품목 가운데 오이지가 포함돼서 안 될 것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남편의 말이 끝나자마자 안사돈께서는 물론 사위도 둘째도 오이지 담그지 말고 편히 쉬라고 입을 모았다. 내게는 오이지 담그는 일이 손에 익어 힘든 일도 아닌데다 맛나게 담글 수도 있는데 말이다.






오늘 연휴 삼일 중 마지막 날이다. 기다리던 비가 지난 새벽부터 내리고 있었나 보다. 텃밭에 심은 오이 씨와 호박 씨, 열매마가 이 비에 싹을 냈으면 좋겠다. 생강도 토란도 울금도 부디 말라서 가 버리지만 않았다면 이 비에 살아날 수도 있지 싶었다. 두 손을 모아 보았다. 


"우리 아들이 안사돈이 보내 주신 오이지 맛있다고 묵고 또 묵고 있습니다. 짜도 않고 맛납니다."

드문드문 내리는 빗방울들이 귀에도 쟁쟁하게 작년에 안사돈께서 하셨던 말씀처럼 들렸다. 그래, 할 일도 없는데 오이지나 담그자. 오늘이 지나면 사흘씩 쉴 수 있는 날이 언제 또 올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날이 2022년 오이지 담그기에 좋은 철일지는 더더욱 알 수 없었다.


캐리어를 끌고 우산을 쓰고 빗속을 걸어 마트로 향했다. 호랑이 장가가는 날인지 비스듬히 해가 비치는데 빗방울은 굵었다 가늘었다 바람이 불다 쉬다 변덕깨나 부린다. 오이지 오이 반 접과 새송이버섯, 실파와 방울토마토를 캐리어에 싣고 집으로 향했다.


오이는 싱싱하다. 오이 쉰 개 다듬어 씻고 오이지 담그는 일이 처음 오이지 담글 때와는 달리 내게도 이제는 별것 아닌 일이 되어간다. 시들어 눌어붙은 오이꽃을 따내고 기다란 오이 꼭지를 잘라냈다. 오이를 한 번 씻은 다음 굵은소금으로 오이 겉면을 박박 문질러 닦았다. 혹자는 오이 겉면을 굵은소금으로 문질러 씻으면 오이 표면에 상처가 생겨 나중에 골마지가 낄 수도 있다며 베이킹 소다를 이용해 오이를 씻기를 권한다. 아니다, 괜찮다. 굵은소금으로 박박 문질러 씻어도 골마지가 끼지 않는다. 예전 그리고 그보다 더 예전에도 엄마들은 굵은소금으로 오이 표면을 문질러 씻어 오이지를 담갔었다. 물론 첫 소금물은 끓이자마자 바로 오이에 부으며 시간 차를 두고 2회에 걸쳐 오이지의 물을 쏟아내어 다시 끓인 다음 이때부터는 식혀서 붓는 과정이 있기는 하다. 요즘도 물없이 담그는 오이지의 단맛을 원치 않은 이들은 재래식으로 오이지를 담그기도 한다.


빈 김치통에 김장 비닐 두 장을 겹쳐 넣었다. 씻어둔 오이의 물기를 닦아 김장 비닐에 담았다. 오이 쉰 개가 김장 비닐 안에 담겼다. 이 위에 설탕 4와 1/2컵, 식초 4와 1/2컵, 소금 2와 1/4컵, 소주 1컵을 붓고 그대로 두 개의 김장 비닐 입구를 각각 여러 번 비틀어 묶었다. 뚜껑을 닫아 빈 자리 아무데나 한구석에 놓아두면 된다.






오이지를 담근 김장 비닐은 담근 지 하루 지난 내일부터 하루 한 번씩 이리저리 굴려주면서 간이 골고루 배도록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 소금과 설탕과 식초, 소주가 오이에 스미면서 오이 물을 빼내며 맛난 맛을 갖게 될 것이다. 오이지는 간이 배면서 노릇노릇하게 익을 것이며 일주일이 지난 이번 주말쯤부터는 식탁에 올릴 수 있다. 잘 익은 오이지는 김치냉장고에 넣고 보관하면 된다.


다음 주 화요일쯤 오이지를 무쳐 사위에게 택배로 보낼 예정이다. 올해 오이지는 순전히 사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담갔다.

"우리 아들이 안사돈이 보내 주신 오이지 맛있다고 묵고 또 묵고 있습니다. 짜도 않고 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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