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반 만에 텃밭에 들렀다.
안 봐도 뻔한 풀 천지일 테고 어디 도망갈 요량도 없는 밭이 잘 있는지나 보고 오자며 느지막이 8시에 출발하였다. 그럼에도 풀이 우거지기 전 5월 5일 어린이날 씨앗을 묻은 단호박이며 오이, 열매마 등이 몇 개 정도는 주인을 반겨줄는지도 모른다는 야무진 꿈을 안고 갔다.
'웬 걸'이란 이런 때 딱 어울릴 말이다. 키가 한길도 넘게 자라 있어야 할 밭이 얌전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살펴보니 환삼덩굴이 밭 전체를 매트리스처럼 덮고 있다. 서둘러 계피 우린 물을 뿌리고 장화에 모자며 토시로 중무장을 한 다음 낫을 들고 환삼덩굴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호락호락할 환삼덩굴이 아니다. 환삼덩굴을 잘라내며 앞으로 나아가려 해도 가시가 드드드 옷을 할퀴고 덩굴은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뿐이 아니다. 환삼덩굴 아래엔 키가 큰 풀들이 지난여름 내린 비의 물길을 따라 결을 이루며 누워 있다. 여기 걸리고 저기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환삼덩굴 매트리스 위에 온몸을 맡기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환삼 가시가 옷감을 뚫고 살에 박힐 것 같은 느낌은 진저리를 치게 했다.
남편이 앞서 나가며 환삼덩굴과 그 아래 풀들을 잘라 매트리스를 굴리듯 굴리기 시작했다. 서서히 환삼덩굴 매트리스가 둥글게 말리기 시작했다.
풀을 걷어내자 풀 밑에 갇혔던 울금이며 생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편과 내게 지금이라도 와 주어 고맙다고 하기보다는 쨍쨍한 가을볕에 실눈으로 야속하다는 듯 곁눈질을 하는 것만 같다. 갑자기 환삼덩굴을 걷어냈으니 쨍한 볕에 온몸이 후줄그레해질 만도 하다.
"지금부터 서리 내리기 전까지라도 쑥쑥 커 주렴. 어떻게든 종자는 남겨야 하지 않겠니?"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강산이 몇 번 바뀌도록 텃밭 지기를 했더니 겨우 울금 말씀은 알아듣는 경지까지 왔다.
"종자 중한 줄은 아시는가?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니까 걱정 마시게."
울금을 바로 볼 수가 없다. 삼 년 전 남편 동창에게 부탁하여 겨우 구한 한 박스 울금 종자가 첫 해엔 풍년을 이루었다. 그러나 올해는 울금 심었다고 어디 명함도 못 내밀게 생겼다. 농사란 거둬봐야 심은 티가 나는 법이다. 심을 때는 자랑질에 잘난 척을 했지만 거두려고 보니 호미 아래 걸려 나오는 게 없게 생겼다. 풀과 같이 자라다 환삼덩굴 아래 쓰러져서 일어서지도 못하는 생강에게는 더더욱 고개를 못 들겠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감은 아예 감감소식이다. 하긴 몇 년에 한 번 정도는 고토석회라도 한 자루 둘레둘레 넣어 주면서 감을 기다리는 게 감에 대한 예의다. 감이 많이 열리면 따는 것도 귀찮아 하면서 먹는 일에만 열중인 주인을 위해 감이 열매 맺을 감을 잃지 않았다면 이상할 일이다.
별생각 없이 심은 꾸지뽕은 기세 좋게 잘 자라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몇 해 전 나눔 받은 야생 꾸지뽕에서 나온 씨앗을 심어 키운 나무다. 열매 맺기 시작한 지 삼 년째가 되는 올해는 알도 더 굵고 더 많이 열렸다. 꾸지뽕이 내 입맛에 딱 맞지는 않아도 당뇨에 좋다니 당뇨는 없지만 올해는 열매뿐만 아니라 잎과 가지도 조금은 수확해 겨우내 차로 만들어 마셔 볼 생각이다.
지난해 감이 열리지 않아 감 대신 남겨 두었던 꾸지뽕에서 나온 씨앗들이 싹을 냈다. 군데군데 어린 꾸지뽕나무가 자라고 있다. 얘들도 내년 봄엔 적당한 자리를 잡아 심어야겠다. 가을이 제대로 오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내년 봄에 할 일이 수북이 쌓인다.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봄이 오면 뭐든 열심히 할 것 같기는 하다. 정작 봄이 오면 지난가을을 추억할 뿐 가능하면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 든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마음 가는 데 몸 가고 몸 가는 데 마음 간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남편도 나도 텃밭과 함께 봄을 맞이하고 서툴지만 무성한 여름 동안 땀방울 흘려가며 가꾼 텃밭 작물들에서 가을이면 나름의 보람을 맛보며 즐거워하던 마음을 해마다 조금씩 접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1년에 서너 번 텃밭엘 다녀오면서 텃밭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는 없다. 남편도 나도 너무나 잘 아는 삶의 이치이기에 일이 바빠 텃밭에 소홀했다는 말은 그만큼 거둘 것이 없음을 자인하는 말이기도 하다.
환삼덩굴 매트리스 위로 유일하게 우뚝 솟아 자란 풀, 비염에 좋다는 도꼬마리가 열매를 많이 달았다. 지난해 늦가을엔 갈색으로 여문 도꼬마리 열매를 제법 따 모았었다. 이미 비염이 지나간 후라 봄까지 그대로 방치하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사이 가시에 한 번 호되게 찔리고 나서 그대로 쓰레기통 속으로 직행시켜 버렸다. 그 봄엔 비염이 완전히 가신 줄로 알았지 비염이 도질 가을이 금세 닥칠 거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다. 가시에 찔리면서 따 모은 도꼬마리 입장에서는 억울할 일이기도 하다. 텃밭에 그대로 두었더라면 얼마나 많은 도꼬마리가 이 가을 텃밭에 가득했겠느냐고 이미 가 버린 도꼬마리의 독백이 들릴 것만 같다.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본 도꼬마리 법제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갈색으로 잘 마른 도꼬마리 열매를 약불에 30분 정도 볶아 가시를 제거한다. 볶는 과정에서 도꼬마리의 독성이 제거된다.
2. 볶은 후 체로 쳐서 가시 찌꺼기들을 깨끗이 털어낸 후 사용한다.
3. 도꼬마리 10그램을 물 2리터에 넣고 30분 달여 아침 저녁으로 마신다. 콧속 또는 가려운 데 발라도 좋다.
나는 첫 시도이니 약하게 시작하기로 한다.
오이 씨앗 심었던 자리엔 오이 흔적도 없는데 밭 가장자리 이웃 밭 경계 즈음에 오이 한 줄기가 자라고 있다. 오랜 가뭄 끝에 비가 자주 내리면서 씨앗 심은 자리가 패이고 아직 뿌리 내리지 못한 씨앗이 물길 따라 내려가다 잡은 자리인가 보다. 누렇게 익어도 거두는 손길을 못 만난 오이 하나는 곯아 버렸고 내 손바닥 만한 누런 익은 오이 하나 수확했다.
반으로 갈라 씨앗을 갈무리하고 노각 한 접시 무쳐냈다. 주인 발소리 한 번 듣지 못하고도 잘 자라준 노각이라 그런지 천상의 맛이란 이런 맛이 아닐까 싶게 맛나다. 마트표 노각과는 차원이 다른 오 차원쯤은 되는 맛이다. 내년 봄에 심을 오이 씨앗은 확보했으니 이걸로 족한다.
열매마는 잎만 무성하고 열매는 이제 겨우 작두콩 정도로 자랐다. 세 포기 심은 토마토는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환삼덩굴 위에 겨우 목만 내민 채 가을볕 아래 노란 꽃을 피우고 있다. 환삼덩굴을 걷어 주었으니 시월 한 달 동안 얼마나 여물어줄지 기대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은근히 기대하게 된다. 오뉴월 하룻볕에 키가 쑥쑥 자란다면 구시월 하룻볕에선 어떤 식으로든 열매를 맺을 것이며 이미 맺힌 열매는 크든 작든 탄탄히 여물 수밖에 다른 뾰족한 도리가 없다. 부디 쨍쨍한 볕이 시월 내내 지속되라고 진심 어린 주문을 외워본다.
마음 먹으면 산더미일 텃밭 일이 일을 하지 않기로 마음 먹으니 특별히 할 일이 없다. 텃밭을 시작한 이래 모든 힘든 일에 앞장서온 남편이 특별히 할 일도 없으니 오늘은 그나마 쉬운 오가피 열매라도 거뒀으면 한다. 검게 익어 반짝거릴 정도가 되어야 쓸모가 있을 오가피 열매가 아직은 푸른색이 태반이다. 시월 말까지는 기다려야 까맣게 익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또 흙을 일구고 겨울 작물인 마늘을 심곤 하던 남편이다. 마늘 심고 나면 진이 빠져 오가피 열매 따는 일도 하고 싶지 않을 수 있겠다. 하지만 아직은 오가피 열매를 거둘 시기가 아니다.
오가피를 뒤로 하고 발길을 옮겼다. 언제 자랐는지 모를 산초나무가 두 그루나 우뚝 서 있다. 까맣게 익은 열매 반, 푸른 열매가 반인 산초 열매를 따 모았다. 효소를 담갔다 마실 참이다. 산초 향은 우리 가족 중 나 혼자만 좋아하는 향이라 조금만 모아도 오래 두고 차로 마시며 산초 향을 즐길 수 있다.
산초 열매를 따고 돌아서는데 산초나무 옆에 내 허리춤 정도 자란 밀원식물 바이텍스 한 그루가 우뚝하다. 언제 바이텍스 씨앗이 떨어졌을까. 발아해서 이처럼 자라는 줄도 모르는 사이 벌써 꽃도 피웠다. 나는 어쩌면 풀 같은 인생이기에 나무를 늘 동경하는지도 모르겠다. 월동만 된다면 수명이 다할 때까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누리며 볼거리도 먹거리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기에 말이다.
지금 생각 같아서는 내년엔 어떻게든 환삼덩굴 싹을 모조리 걷어낼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송이송이 뭉쳐 영근 환삼 씨앗이 배 아프게 웃어젖힐 말이기는 하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야무지게도 그렇다. 텃밭 지기 이십 년에 환삼덩굴 매트리스로 밭은 덮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말이다.
열두 시 반, 둥글게 말린 환삼덩굴 매트리스를 뒤로 하고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