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인문학으로 다시 질문하기
저녁마다 현관문이 덜컥 열리면,
먼저 들어오는 건 아빠가 아니라 통닭 냄새와 술냄새였다.
통닭집에서 소주 한잔을 하고 오신 아빠는
얼굴에 기분 좋은 붉은 기운을 띠고,
한 손에는 기름이 배어 바스락바스락 울리는 종이봉투,
다른 손에는 달큼한 빵 봉지를 들고 계셨다.
그때마다 나는 숨을 멈췄다.
행복이 문틈으로 흘러들어오는 순간을 놓칠까 봐서.
그 순간, 나는 어린아이로 돌아갔다.
『어린 왕자』의 말처럼,
“어른들은 한때 모두 아이였다. 하지만 이를 기억하는 어른은 거의 없다.”
나는 그 기억을 잊지 않았다.
아빠의 손에 들린 종이봉투의 냄새,
그 기름진 온기,
동생들과의 소란,
그리고 술기운 어린 웃음.
아빠가 들어오기 전, 우리는 늘 기다렸다.
바닥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다도,
책을 읽다도,
귀는 현관 쪽으로 가 있었다.
초저녁쯤이면 어쩐지 심장이 빨라졌다.
‘오늘은 사 오실까, 그냥 오실까.’
졸음이 밀려올 즈음, 문이 덜컥 열렸다.
술냄새와 기름 냄새가 동시에 밀려들었다.
세 남매는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막내는 양말을 질질 끌며 쿵쾅쿵쾅,
여동생은 내 뒤에서 “오늘은 나야!” 하고 외쳤다.
밥상 위에 통닭이 ‘툭’ 하고 놓이자,
방 안은 순식간에 장터가 됐다.
닭 껍질이 바삭 부서지는 소리,
콜라병이 치직 열리는 소리,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까지—
행복은 그렇게 소리로 피어났다.
닭다리는 언제나 내 몫이었다.
하지만 그날도 둘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닭다리를 높이 들고 외쳤다.
“오늘 학교에서 시험 백점 받았어!”
그 말은 마치 마법 주문 같았다.
모두가 잠시 조용해졌다가,
곧 “그래, 오늘은 너다” 하는 듯한 웃음이 터졌다.
닭다리는 내 자존심이자,
가족의 사랑이자,
어린 나를 세상과 이어주던 첫 다리였다.
좁은 방 안은 웃음과 냄새로 가득했다.
그 시절 우리 집은 부자도, 가난한 집도 아니었다.
다만 따뜻한 냄새가 나는 집이었다.
그 온기가 나를 키웠다.
지금도 치킨 냄새를 맡으면
그날의 불빛, 그때의 웃음이 되살아난다.
다행인지, 내 아이도 치킨을 사랑한다.
그래서 주말에 뭔가 특별한 걸 먹고 싶을 때,
둘이 밀린 애니메이션을 보며 수다를 떨고,
빈 속을 맛있게 채우고 싶을 때면 어김없이 치킨을 시킨다.
나는 간장맛이나 기본 후라이드를 좋아하지만
아들은 무조건 치즈가 뿌려진 뿌링클과 치즈볼 추가다.
처음엔 “아, 안 맞아.” 하고 투덜댔지만,
지금은 그 다름이 우리만의 재미가 되었다.
서로 치킨의 취향은 다르지만,
웃는 포인트가 같다.
각자 동시에 터지는 웃음에 또 웃는다.
이렇게 다르면서 같음을 확인하며
주말 저녁의 둘만의 힐링의 시간을 보낸다.
닭다리를 건네던 아빠의 손길이
이제는 내 손끝에 겹친다.
치킨 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을 때면,
아빠의 웃음과 내 아이의 웃음이
같은 시간 안에서 포개지는 듯하다.
지금의 우리 집에서도
치킨은 여전히 행복의 음식이다.
그 기름진 온기,
식탁 위를 돌며 오가는 웃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는 따뜻한 냄새.
그 모든 것이 오늘도 내 몸에, 내 기억 속에 새겨진다.
오늘의 인문학 & 질문
어른들은 한때 모두 아이였다. 하지만 이를 기억하는 어른은 거의 없다.
All grown-ups were once children... but only few of them remember it.
- <어린왕자 by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중에서
<나에게 질문해보기>
Q 1. 어린 시절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