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워! 이 여정의 마지막 도시 히로시마.
기대 이상으로 다양한 음식이 차려져 있어서 깜짝 놀랐던 구라시키 도미인 호텔의 조식.
반찬들의 담음새도 알록달록 정갈했고, 특히 지라시 스시는 골고루 재료를 넣은 그림 같은 모양만큼이나 맛이 고르고 달았다.
두어 번 식사를 가져다 먹은 후 따끈한 커피까지 완벽한 마무리였으나 자리에서 일어나기 아쉬울 정도로 훌륭한 조식이었다.
체크아웃 전 호텔방에서 내려다본 미관지구의 한구석을 눈에 담아보았다.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에 앞서 호텔에 짐을 맡겨둔 채 한 곳을 더 들른 후 미관지구를 떠나기로 했다.
오하라 미술관.
1930년 개관한 일본 최초의 사립 서양 미술관으로, 오하라 마고사부로가 지었다. 그의 친구이자 그가 후원하던 일본의 근대 서양화가 고지마 토라지로가 1929년 사망한 이후 그를 기리기 위한 곳이기도 하다.
고지마 토라지로의 개인 작품도 한 개 관에 집대성되어 전시하고 있다.
특히 인상이 깊었던 그의 대표작은 ‘기모노를 입은 벨기에 소녀‘였다. 동서양 매력의 조화를 붓끝에 화려한 색감을 담아 표현하고자 했던 그의 안목이 돋보였다.
고지마 토라지로는 오하라 가문의 후원을 받아 유럽으로 유학을 떠나 그림 공부를 하며 많은 명작과 유명화가들을 만났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모네의 ‘수련’이나 엘 그레코의 ‘수태고지’, 피카소, 샤갈과 같은 거장들의 작품을 수집해 지금의 오하라 미술관에 전시하게 되었다.
도쿄나 교토와 같은 대도시가 아님에도 이렇게나 큰 규모에 다양한 유럽 거장들의 작품을 품고 있는 오하라 미술관을 거닐 수 있음에 감사한 하루였다.
발이 좀처럼 잘 떨어지지 않던 구라시키였다.
고즈넉하고 평온한 그 마을에 기회가 되면 부모님과도 와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다음이자 이번 여정의 마지막 목적지인 ‘히로시마’로 향했다.
신칸센을 타고 오후 네시가 되어서 도착한 히로시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조식 이후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터라 히로시마 역 안에서 요기를 하기로 했다.
‘중화 소바 가바’라는 식당이었는데 라멘의 매콤한 냄새에 이끌려 자리를 잡았다.
갈증이 나니 우선 콜라로 목을 축이고.
주문한 라멘이 얼큰한 냄새를 풍기며 앞에 놓였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정말 맛있게 먹었다. 게다가 매콤한 국물이 아직은 지치지 말라고 기운을 북돋워주었다.
호텔로 걸어가는 길, 꽤 번화하고 넓은 히로시마 거리의 풍경.
호텔에서 업그레이드받은 제일 고층의 넓은 방.
혼자 쓰기에 너무나도 넓어서 창가 쪽의 침대에서만 머무르기로.
파노라마 형태의 넓은 창문을 통해 훤히 내려다보이는 시내와 반을 나눠가진 하늘이 밤낮으로 바뀌는 그림을 보는 듯했다.
히로시마에서의 첫날이니만큼 호텔에서 그냥 쉬기엔 아쉬운 마음이 들어 주위 구경을 하러 나왔다.
비가 온 탓으로 한산했던 혼도리 아케이드 상점가.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게임 스테이션이 반가웠다.
다른 세계에 들어온 듯 한 활발한 기계음 사이를 누비며 갓챠 구경을 하는 재미가 있었다.
갓챠 종류 중에 우리나라 라면과 음식 모형이 있는 걸 보고 웃음이 나왔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 라면은 일본에서도 인기를 꽤 얻은 것 같다. 돈키호테에 가도 한 코너에 떡하니 자리를 차지한 다양한 종류의 우리나라 라면을 최근 몇 년 사이에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호텔로 걸어 돌아오는 길에 ‘오코노미무라’ 간판을 찍었다. 오른쪽 건물이 통째로 오코노미야키 식당이 모인 ‘오코노미무라’이다. 머무는 동안 히로시마 오코노미야키를 꼭 한번 먹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산책의 마무리는 언제나 즐거운 일본 편의점 구경.
그렇지만 욕심부리지 않고 해쉬브라운과 맥주로 간단한 저녁을 먹었다.
풍성한 거품에 진한 술맛이 느껴졌던 아사히 쇼쿠사이 맥주.
처음 보는 파란색의 기린 캔맥주와 콘샐러드 조합도 신선했다.
이제 15일 여정 중 마지막 도시에 도착했다.
한 번은 와보고 싶었던 히로시마였고 정말 그곳에 와있었다.
남은 3일을 마지막까지 알차게 여행하고 경험하고 돌아가자며 여기까지 온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과 내일에 대한 설레임에 잠기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