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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이 Jul 28. 2024

에도 시대의 한 장면 속으로, 구라시키 미관지구.

1박 하길 참 잘했다, 구라시키.

 다카마쓰에서 맞는 마지막 날 아침, 날이 개고 맑음.

다양하진 않지만 건강식으로 차려진 조식을 담뿍 담아와 먹고.

다카마쓰역을 향해 며칠 전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다카마쓰의 한자인 高松을 나타내듯 역 앞을 지키는 여러 그루의 소나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다카마쓰와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떠나기 전 역사 안에서 사누키 우동 도장을 수첩에 찍어 남겨보았다.

열차를 타고 오카야마에 도착해서 구라시키로 향할 예정.

일본 열도의 주요 섬 시코쿠와 주코쿠를 잇는 철길 위에서 감상하는 크고 작은 형제 섬들.

어느덧 도착한 구라시키역의 첫인상은 매우 앤티크 했다.

1박을 묵어갈 도미인 호텔에 잽싸게 체크인하고.

구라시키 미관지구를 구경하기에 앞서 호텔 근처의 골목에 위치한 소바집으로 향했다.

내 일본 소울푸드 중 하나인 자루소바. 담음새가 정갈하다.

간결하지만 그윽한 고소함이 느껴지던 면과 짭짤한 쯔유, 따끈하고 바삭했던 튀김을 소금에 찍어먹는 맛이 조화로웠다.


에도 시대(1603~1868)와 메이지 시대(1868~1912)에 지어진 옛 전통 가옥과 거리를 간직한 구라시키 미관지구.


강에서 유유히 떠다니는 나룻배를 감상하며 일본 영화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오묘했다.

날아가지 않고 정해진 구역에서만 노닐던 커다랗고 하얀 백조가 귀엽고 평온해 보였다.

구라시키와 오카야마는 일본의 대표적인 데님 생산지이기도 하다. 데님 소재의 의류샵이 곳곳에 숨어있고, 이 미관지구 안에 있는 리락쿠마샵에서만 청바지를 입은 리락쿠마를 살 수 있다.

적막하지만 400년의 전통을 지키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옛 거리의 느낌이 내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한참을 미관지구 골목골목을 구경하다가 마주친 아치 신사 입구.

계단이 꽤나 많아 오를까 말까 망설인 끝에.

해가 저물어져 갈 때 내려다보는 미관지구의 전경은 정말이지 평화로웠다.

뿌듯한 발걸음으로 아치 신사에서 내려오는 길.

소나무를 누가 저렇게 멋있게 다듬어 놓았는지, 안에 들어가 보고 싶을 정도였다.

곧 어둠이 찾아올 미관지구 거리에서

사람들은 하나 둘 저녁을 먹으러, 또는 호텔로 쉬러 제갈 길을 찾아가는 듯했다.

나룻배 사공들도 배를 매어 두고 하루를 마무리한 후 떠나갔다.

제일 신기했던 건, 저녁이 되자 끄엉끄엉 울다가 물가의 자기 집으로 때맞춰 퇴근을 하는 백조 녀석이었다.


우리가 하루 일과를 마치면 집에 가서 쉬기 전 샤워를 하듯이, 저 녀석도 한참 제 몸의 물기를 털고 깃털을 고른 후에야 안으로 들어갔다.


‘미물도 퇴근 시간을 알고 워라밸을 지킨다. 나도 저 백조처럼 살아보자.’


그래서 그 백조를 따라 나도 이제 그만 쉬자고 결심했다.

마땅히 당기는 메뉴나 식당이 없어서 편의점에서 이것저것 주워 담아 방으로 들어갔다.

시원한 캔 레몬사와에 치킨너겟 몇 조각으로 간단한 저녁을 먹은 후.

도미인 호텔 어디에나 있다는 대욕장에서 온천을 하며 따끈히 몸을 녹였다.

목욕을 마친 후 호텔에서 주는 무료 아이스크림까지 완벽.

구라시키는 미관지구 거리부터 숙박까지, 모든 게 꿈같고 달달한 기억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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