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언젠가 다시 떠나고야 말.
다카마쓰에서 맞는 셋째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날이 끄물끄물했다.
호텔 창밖의 비 내리는 거리는 다니는 차가 별로 없어 깨끗하다고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여긴 정말 소도시구나, 교토와 또 다른 여유로움이 있는 동네다.'
그나저나, 우동을 먹으러 가기 딱 좋은 날씨였다.
흐린 날을 헤치고 고르고 골라둔 식당을 향해 전철을 타고 출발했다.
다카마쓰라는 작은 도시를 가르는 좁은 철길에서 다른 세상에 온 듯한 기분도 들었다.
구글 지도 평점이 4.3으로 꽤 높았던 '테우치 우동'.
식당 오픈 시간인 9시에 맞춰가서 그런가, 멀리서 보기엔 한가로워 보였다.
문 앞에 이르러서는 곧 착각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이미 식당 안에는 열명 이상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주문을 하고 있었다.
이 식당은 화요일부터 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만 영업을 한다.
하루에 5시간 동안만 우동을 파는 집이라니. '맛집을 제대로 찾았다, 옳거니!'
식판과 접시를 챙겨서 우동과 함께 먹고 싶은 튀김을 고르면 된다.
어묵, 생선, 야채, 갖가지 튀김을 구경하면서 고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모든 것이 셀프여서 신기했던 다카마쓰의 우동집 시스템.
값을 계산하고 나서 주문한 메뉴를 받아들면 오른쪽의 큰 물통에서 우동 국물을 양껏 따르게 되어 있었다.
먼저 앉아 있던 손님이 먹는 모습을 보고 홀린 듯 따라서 주문한 니꾸우동, 그리고 게맛살 튀김.
노상 반, 실내 반의 기분으로 즐겨보는 다카마쓰의 우동.
한 젓가락 입에 넣었을 때 미끈하고 탱탱한 식감이 놀라웠고, 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요리라고 느껴질 만큼 굉장히 맛있었다.
'게맛살에 무슨 짓을 한 걸까?'
슥 베어 물었을 때 입안에 가득했던 튀김의 풍성함과 달고도 짭짤했던 감칠맛이 아직도 입에서 맴돈다.
양이 많아 느끼할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던 고기 고명.
한 점이 사라질 때마다 아쉬울 정도였다. '다시 이렇게 맛있는 니꾸우동을 먹을 수 있을까?'
한 가지 음식에서 여러 가지 맛을 즐기기 위해 마무리로 시치미도 더해서 먹어보았다.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내고.
근처 동네를 천천히 구경하며 소화를 시켜보기로 했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고 앞마당에 정원수까지 잘 다듬어 관리하는 저택들을 보면서,
'이런 집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하고 궁금해하기도 했다.
흐린 날만이 지니고 있는 정취를 즐기는 것도 '여가로서 하는 여행'의 묘미인 듯 싶다.
비를 맞고도 하늘을 향해 고개를 내민 길가의 꽃을 보면서 더욱 힘찬 생동감을 느꼈다.
산책 겸 한참을 걸은 끝에 도착한 스타벅스.
디저트 종류가 끝도 없이 다양하고 보기에 참 맛깔나기도 하다.
그 중에 말차 맛은 어딜가나 빠지지 않는다, 역시나 일본답게도.
그렇게 한참을 여유롭게 쉬고 나서 호텔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한 끼만 먹고 들어가기엔 뭔가 아쉬운데..'
'역시 우동을 한 번 더 먹어야겠다.'
그렇게 점심겸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간 '우동보'.
이곳도 자가제면을 하는 꽤나 유명하고 구글 지도 평가가 좋은 식당이었다.
어디서든 고르는 재미가 넘치는 우동집의 곁들임 코너. 갖가지 오뎅도 훈훈한 김을 내며 끓고 있었다.
조금 욕심을 부려 든든히 골라 담아온 나의 한 끼.
해물 야채 튀김, 가지 튀김에 어묵과 곤약까지 갖춘 붓카케 우동 정식.
1인용 칸막이 좌석에 앉아 시원한 붓카케 우동을 맛있게 즐겼다.
이날 먹은 우동들은 절대 한 젓가락도 남기고 싶지가 않았다.
남길 마음도 없었지만, 아마 남겼다면 두고두고 생각이 났을 것이다.
'아마 내일은 우동을 먹지 못할거야.. 오늘 충분히 많이 즐겼으니까.'
늦은 저녁이 되면 심심해질 입을 위해 빵집에 들렀다.
푸딩을 저렇게 진열해놓으면 손을 뻗을 수 밖에 없게 된다.
푹신한 호텔 이불에 앉아 푸딩과 까눌레의 달달함으로 그렇게 셋째 날의 끝을 맺어갔다.
밖엔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고, 다카마쓰 시내의 거리는 한산했다.
침대에 누워서 일본 예능을 보는데 노래 음정을 끝까지 맞춰서 한 단계씩 나아가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었다.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깔깔 웃기도 하고 조마조마하기도 하며 마지막 단계 도전까지 다 보고 나서 기분 좋게 잠에 들었다.
'내일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