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만드는 작은 용기일 수 있잖아
요즘 소셜미디어를 보면 "프로불편러"라는 말이 자주 보인다. 사소한 일에도 불편함을 느끼고 이를 드러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오늘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이 단어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다. 친구는 최근에 영화 한 편을 보고 불편했던 점들을 SNS에 적었더니, 댓글로 "프로불편러"라는 지적을 받았다고 했다. "그냥 즐기면 되는 걸 왜 굳이 불편함을 찾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꼭 부정적으로 들리지는 않았다. 어쩌면 불편함을 느낀다는 건 우리가 어떤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사르트르가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았다"고 말했듯이, 우리의 불편함은 때로 선택과 자유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한다.
예를 들어보자. 길거리에 놓인 쓰레기를 보고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사람이 있다. 또 어떤 사람은 그 쓰레기를 보며 불편함을 느끼고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는 후자를 "프로불편러"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이 없다면 그 불편함은 영원히 방치되지 않을까? 불편함은 행동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친구에게도 말했다. "영화를 보고 불편했던 점을 얘기하는 건 그냥 트집 잡으려는 게 아니잖아. 뭔가 더 나아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거 아닐까?" 친구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냥 넘어가면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겠지."
불편함을 느끼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때로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다수가 불편함을 무시하거나 그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할 때 더 그렇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이런 불편함에서 출발해 조금씩 나아져왔다.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고 문제를 들여다볼 때, 비로소 변화의 가능성이 열린다.
니체는 "위대한 것은 고통과 불편함을 통해 태어난다"고 말했다. 이 말처럼, 불편함은 단순한 짜증이 아니라 세상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한 창조적 출발점일 수 있다. 물론 모든 불편함이 건설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불편함 자체를 부정하거나 조롱하는 대신,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프로불편러라는 단어는 종종 부정적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이를 긍정적인 역할로 볼 수도 있다. 불편함을 드러내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짚어주고, 개선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환경 문제에 민감한 사람들이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떠올려보자. 처음에는 불편한 요구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것이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진정한 평화는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정의가 실현된 상태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불편함을 감수하고 그것을 개선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진정한 평화를 위한 첫걸음일 수 있다.
불편함은 우리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태도일 수 있다. 그것이 때로는 우리에게 더 나은 선택과 행동을 이끌어준다. 불편함은 단순히 문제를 지적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행동으로 옮기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내가 느끼는 불편함을 통해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
오늘 나는 친구와의 대화에서 그런 생각을 공유했다. 그리고 나도 내가 느끼는 불편함들을 그냥 넘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불편함은 불편하게만 여길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시작점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종종 불편함을 회피하려고 한다. 그것이 개인적인 문제든 사회적인 문제든, 불편함은 쉽게 외면할 수 있는 대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불편함은 우리를 성장하게 만들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이끈다. 예를 들어, 식당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것이 처음에는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작은 불편함이 쌓여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불편함은 새로운 길을 찾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창조는 항상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불편함은 기존의 관습과 질서에 도전하는 힘이 될 수 있다. 그것이 사회적인 변화든, 개인적인 성장과 관련된 것이든 말이다.
불편함을 느끼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넘어, 타인의 불편함에 공감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그들의 관점을 받아들이는 순간, 불편함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 부족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불편함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은 모두를 위한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기회가 된다.
프로불편러라는 단어는 종종 부정적으로 사용되지만, 그 안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불편함은 단순히 문제를 드러내는 것을 넘어, 그것을 개선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가치를 가진다. 우리는 불편함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
오늘도 나는 불편함을 느끼고 그것을 마주하기로 한다. 불편함은 우리가 변화를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출발점이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