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기에만 할 수 있는 것들

by 선작

별이를 키우면서 겁먹었던 것 중 하나가 ‘아이친구엄마’라는 관계였다. 별이 어린이집 시절까지는 관계에 벽을 심하게 치는 편이었다. 약간의 걸림돌이 생겨도 중상을 입을만한 정신 상태였기 때문에 차라리 어떤 자극도 없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였다. 별이는 주로 엄마와 집에만 있었다. 가끔 놀이터에 갈 때는 할머니와 이모처럼 가족들과만 함께 했다. 어린이집에서 만난 친구들과 밖에서 만나는 일도 따로 없었다. 그래도 별이는 잘 컸고, 그래서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별이의 첫 번째 유치원은 병설 유치원이었다. 널따란 초등학교 운동장을 함께 쓸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이었다. 아이 하원길에 넓은 운동장을 뛰노는 것을 벤치에 앉아 구경하곤 했다. 자연스레 엄마들과도 인사할 기회가 생겼다. 그때 만난 엄마들이 둘셋 정도 있다. 교문을 나오는 시간에 어김없이 열려 있는 아이스크림 할인점에서 서로의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서 물리며 친분을 쌓았다. 그 와중에도 그들과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지는 것을 경계했었다. 여전히 나는 뭔가에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첫 번째 유치원을 퇴소하던 날, 큰맘 먹고 아이를 통해 내 전화번호를 상대 엄마들에게 전달했다. 방학 기간 동안 키즈카페라도 함께 가자는 메시지도 남겼다. ‘아이를 통해 전했다’는 것이 나의 여전한 경계심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자기 물건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그 조그만 쪽지를 전달하고 전달받고 다시 엄마에게 전달하는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결국, 누구에게도 답장이 오지 않았고 별이는 친구들과 헤어졌다.


두 번째 유치원은 주변에 우거진 숲과 나무 놀이터가 있는 곳이었다. 하원 후 아이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놀이터에서 많은 ‘아이친구엄마’들을 만났다. 다 좋았다고는 말 못 하겠다. 이상한 분도 있었다. 중간 입학 때문인지 하필 나와 별이에게만 이상한 텃세를 부려서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다. 나의 경계심이 다시 벼려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그 아이가 멀리 이사하면서 불편한 관계는 끊겼고, 그 후로 다가온 인연들은 모두 양호했다.


서로의 집에 아이들을 혼자 보내도 안심할만한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성향이 맞지 않아도 아이들끼리 잘 맞는 관계가 있었고, 아이들끼리 잘 놀진 않지만 오랜 친구처럼 말이 잘 통하는 관계도 생겼다. 점잖고 차분하고 배려심 깊은 분들이었다. 아이가 잘못하면 혼낼 줄 알고, 엄마가 대신 사과할 줄도 아는…. 이만하면 꽤 괜찮은 관계를 쌓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아이로 얽힌 관계’가 나의 인맥 중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그분들을 만나면 마음이 편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별이가 그 친구들과 노는 걸 볼 때도 훨씬 마음이 놓인다.


그리고 입학.

선배들로부터 ‘초등에선 괜한 관계 만들지 말라’는 조언을 여러 번 들었었다. 다시금 경계심이 고개를 들었다. 어차피 친구는 아이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별이가 친구 만드는 걸 어려워하지 않기에 굳이 내가 나설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일이 알아서 굴러간다. 반 대표 어머니가 매우 적극적이고 추진력 있는 분이라 황금시간대에 축구 교실 예약을 해 두었고, 마침 별이도 그때 시간이 되어 참여 의사를 밝혔다.


안 그래도 알아서 친구 관계를 넓혀가는 중이었기에 큰 걱정이 없었는데, 그 친구들과 함께 외부 체육 교실까지 하게 된 것이다. 셔틀버스에 타면서 서로 좋아 까르르 거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괜한 걱정으로 그 자리를 마다했으면 아마 별이에게 이런 경험을 주지 못 했을 것 같다.


남학생 엄마들끼리 따로 만나 이야기 나누기도 했다. 가족들이 모두 참여하는 축구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외부에서 만나는 부모님들도 모두 점잖고 경우 바른 분들이셨다. 하지 않을 말을 삼가고 해야 할 말을 부드럽게 전할 줄 아는, 이 자리가 ‘자녀를 위한 자리’ 임을 잘 알고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분들 말이다. 이런 관계가 어렵다고 피하고 숨었으면 경험해 보지 못했을 안도감을 느꼈다.


사실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알아서 적응 잘한 별이의 덕이 가장 컸음을 안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도 함께 큰다고 하던데, 별이 엄마는 정말 별이 덕분에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별이가 친구나 어른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깜짝깜짝 놀란다. 내가 가르치지도 않은 것들을 유연하게 잘 해결해 나가는 걸 보며, 아이는 나의 그릇보다 훨씬 더 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절반 이상의 기여를 했을 별이 아빠에게도 감사한 마음이었다.


지난주는 스승의 날을 맞아 작년 같은 반이었던 유치원 친구들이 약속하지 않았는데도 근처 놀이터에 모였었다. 열 명이 넘는 아이들과 엄마들이 오랜만에 만나 담소를 나누었다. 모두 각자의 최선을 다하여 아이를 키우고 있음이 보였고, 이런 아이들이 별이의 친구라면 걱정할 것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이 시기에만 할 수 있는 것들을 해 본다. 함정이나 변수나 그로 인한 후회가 있더라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했던 시간은 여전히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엄마에게 좋은 사람들을 소개해 준 별이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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