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1 무제

by 선작

귀로 넘길락 말락 한 길이의 앞머리를 선호한다. 그보다 짧으면 눈가를 찔러서 자주 눈물이 나고, 그보다 길면 귀 뒤에 고리처럼 걸려 과도하게 뻗은 앞머리를 보이게 된다. 그래서 길지도 짧지도 않은 적당한 앞머리를 고수하며 별 특징 없는 인상의 1인으로 살아온 지 수년이다.


자주 가는 미용실에서는 저렴한 가격으로 앞머리만 따로 다듬어 준다. 가위를 세워 들고 몇 번 슥슥 훑으면 다시금 내가 선호하는 길이의 앞머리가 만들어진다. 이번에 만난 디자이너님은 말수가 적다. 필요한 말만 하고 필요한 일만 한다. ‘드디어 만난 나의 이상형!’이라고 생각했으나… 다른 고객님들께는 이런저런 사적인 이야기를 편하게 건네는 것을 보니, 시원하게 정의할 수 없는 나의 그 ‘특성’이라고 할만한 기류를 진작 감지하고 침묵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야를 편하게 하려고 주기적으로 가는 장소, 하지만 내게는 그다지 편치도 즐겁지도 않은 곳인지라 앞머리가 긴 것을 인지하면 뭔지 모를 답답함이 함께 밀려온다. 여러모로 예민한 감각이 불편하다. 고개를 숙일 때마다 대책 없이 흘러내리는 앞머리를 유달리 예민하게 느끼는 감각도, 편치 않은 장소에 갈 생각만으로도 갑갑함이 밀려와 전화 예약을 하는 것조차 미루고 있는 지금도.


그래서...


난 여기까지만 쓰고 예약 전화 할 거다.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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