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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작 Feb 26. 2022

엄마의 어린이집 연대기, 인연

별님일기


별이의 생일파티와 졸업식이 동시에 있었다.

별이는 3년간 다닌 어린이집을 떠나게 됐다.


별이도 어린이집을 다녔지만 별이 엄마도 어린이집에 다녔다. 복직한 후에는 별이 할머니도 어린이집을 다녔다. 그래서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깊은 정이 들었고 이제 마지막이라는 시간이 온 것이다.




별이 어린이집 첫 해


친정집 바로 앞에 있는 별이의 어린이집은 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무렵 생긴 곳이다. 주변을 오가며 아파트 1층에 있는 어린이집 간판을 자주 보았고 결국 그 가정 어린이집에 별이를 등록시키게 됐다. 이는 돌 무렵 0세반으로 시작했다. 별이가 두 돌 되는 해에 복직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어린이집이든 일단 자리를 ‘맡아놓는’ 것이 중요했다. 가까운 어린이집에 순번이 됐다는 연락을 듣고 거의 일주일을 고민하다 일단 등록하고 하루에 두 시간 정도만 맡겨보기로 했다. 6개월만 더 데리고 있어 보고 싶다는 내 말에 ‘그때 자리가 날지 저도 답을 못 드립니다. 일단 등록하면 1년은 고정적으로 보내시니까요.’라고 답하던 원장선생님과의 상담이 주효했다.


10시 넘어 등원해서 식사 후에 데려가는 방식으로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때도 아이가 세 살 될 때까지는 집에서 길러야 한다는 것이 공식처럼 되어 있었으므로 나는 자주 죄책감을 느꼈다. 휴직 중인데 자리를 맡겠다는 이유로 별이에게 괜한 고생을 시키는 것이 아닌가. 조금이라도 힘들어하면 바로 퇴소할 예정이었으나 별이는 잘 적응했다. 1년이 지나 처음으로 원에서의 낮잠을 시도한 날 한 번에 꿀잠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낮잠 시간을 함께 하던 애착 인형은 지금도 필수품이다)




별이 어린이집 두 번째 해


두 돌이 되고 한참 복직을 준비하고 있는데 대기 걸어놓았던 다른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이게 이렇게 쉽게 되는 거였나? 난 1년 전부터 적응을 시키고 있었는데…. 몰래 상담도 다녀왔으나 우리 집에서도 친정집에서도 거리가 있는 편이라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특히 별이의 진급반 담임선생님으로 배정된 분이 좋은 분이라 괜한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다니던 어린이집과의 인연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이 해가 황금기가 될 수 있는 해였다. 지척에 사는 별이 할머니가 등원시키러 방문하면 별이를 인계하고 편하게 집에서 나와 출근했다. 그러나 인생이 완벽히 정돈된 형태로만 흘러갈 수는 없는 법이라서 그 무렵 내게 큰 시련 또는 지옥이 찾아왔고, 돌아보면 그때 할머니의 육아 도움이 없었다면 나와 별이가 어떻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터진 해라 한동안 어린이집에 못 가기도 했다. 엄마가 재택근무할 수 있는 날짜가 많았고 별이 할머니도 소일로 다니던 곳 중 잠정폐쇄된 곳들이 많아 별이는 안정적으로 가정보육을 받았다. 별이의 감정은 주변 어른들에게 잘 받아들여졌다. 별이는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안전한 상태에 있었다. 2년 동안 지속된 엄마의 죄책감 – 너무 일찍 기관에 보냈다는 – 은 차츰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협동하며 아이를 키울 수만 있다면 3년 공식 같은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전염병이 잠시 잦아든 하반기에는 별이와 재미있는 것들을 정말 많이 했다. 주말 아침 둘이서 브런치 먹으러 가기, 백화점에 예쁜 장식 구경하러 가기, 비싼 아이스크림 먹어보기, 마트 장난감코너에 상시 설치된 놀잇감 가지고 놀기, 그 옆에 물고기 어항 구경하기…. 근처 키즈카페, 블록방 등 단골 장소도 생겼다.




별이 어린이집 세 번째 해


별이가 어린이집 최고 형님반이 되는 해에 집 근처 근무지로 이동했다. 우리 집, 내 직장, 별이 할머니 집, 별이 어린이집이 모두 10분~15분 안쪽 거리에 있었다. 생에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무슨 일을 맡아도 그다지 화가 나지 않았다. 덕분에 직장에서 유능한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어린이집 작년 반 선생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오시기로 했다. 놀이학교로 많이 이동하는 해라고 하는데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아이가 어린이집에 남기로 결정했다. 만 1세반 10명 정원에서 만 2세 반이 되면 7명 정원. 3명의 자리가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원장님의 묘책(?)으로 모두 안전하게 진급할 수 있었다. 고된 금요일 오후가 지나고 토요일이 오면 5분 거리에 있는 문화센터에 갔다. 아이를 보다 지치면 무작정 할머니 집에 갔다. 할머니는 언제든 별이를 크게 반겨 주었다. 바라마지 않던 황금기가 왔다. 그러나 이 또한 길지 않았으니, 11월 별이네에게는 이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지옥에서 부활한 지 얼마 안 된 자답게, 내가 쥔 것을 곧 놓아야 한다는 데에서 오는 조급함보다는 쥐고 있는 것을 지금 이 자리에서 누리며 얻는 하루의 행복을 취하기로 했다. 그 무렵 무척 게으르고 재미있게 살았던 것 같다.


이사 후에는 새벽마다 차를 태워 별이와 함께 출근했다. 엄마 집에 별이를 내려놓고 준비해 주신 아침을 먹고 10분 거리에 있는 직장에 출근했다. 별이는 내복 바람으로 할머니 집에 와 신나게 뒹굴고 놀다가 아침밥을 먹고 9시 30분에 등원했다. 차에서 하는 놀이도 생겼고 이동 중 들었던 영어동요 덕에 영단어도 몇 개 알게 됐다.




그리고 졸업


마지막 등원길과 마지막 하원길. 11월에 이사한 별이는 어린이집 친구들이 많이 가는 유치원 대신 다른 유치원에 가게 됐다. 이것을 이해시키는 데 한참이 걸렸다. 졸업 무렵에는 많이 익숙해져서 ‘♧빈이는 00유치원 가고 ♡진이는 00유치원 가지만 나는 운동장 유치원 가.’라고 말하게 됐다.


3년을 함께 한 ♧빈이 엄마와는 첫 적응 기간 이후 얼굴을 본 적이 거의 없는데 할머니들 간의 대화로 나와 서로 대학 선후배 사이임이 밝혀졌다. 둘 다 내성적인 성격인 데다 마지막 날까지 그 엄마와 마주치지도 못하여 연락처를 묻지 못했다. 현재 졸업한 대학 교직원으로 일하고 있다며 별이 할머니 통해 직원용 탁상 캘린더까지 주셨는데….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쉽게 말이 떨어지지 않았으니, 이 성격 누굴 탓하리. 그저…. 별이 초등학교 무렵 다시 이쪽으로 오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빈이와도 ♡진이와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본다.


그리고 선생님과의 인사: 걸음마하던 시절 맡아주셨던 보조 선생님과 이후 2년간 맡아주셨던 담임선생님이 별이를 꼭 안아 주셨다. 원장선생님은 별이 생일인데 졸업 준비하느라 미역국을 깜빡했다며 특유의 넉살을 보였다. 별이는 나만 미역국 없다고 퉁퉁거렸지만 모든 선생님의 관심을 받는 상황이었으므로 금세 풀렸다. 고마운 분들을 향한 편지는 이미 빼곡하게 적어 선물 상자와 함께 전달한 상태였다. 안 그래도 글 쓰면 길어지는 나인데, 꼬물이가 어린이로 자라 떠나는 시점에서 쓰는 편지글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현관문을 뒤로 하고 나오는데 선생님들이 문을 닫지 않고 끝까지 별이를 배웅한다. 그 모습을 보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별이도 카드를 써 보면 어떨까 이름 쓰기 연습을 여러 번 함께 했으나, 늘 장난으로 마무리되는 통에 대신 목소리 카드를 쓰기로 했다. 휴대폰 녹음기를 켜고 선생님께 보내는 메시지를 녹음하여 키즈노트로 보냈다.


선생님은 별이의 목소리 카드와 엄마의 편지를 받고 너무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셨다고 답장을 주셨다.


그리고 포인트는!!

세상에…! 별이가 입학하게 된 유치원 선생님과 담임선생님이 서로 친구 사이라는 거다! 별이가 ‘운동장 유치원’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폭풍 전화 끝 대기 상태였다가 설 무렵에서야 입학 확정이 난 곳으로 졸업 편지에다가 별이가 입학할 유치원 확정을 알려드렸던 것인데, 그걸 보자마자 선생님이 바로 그분께 연락하여 별이를 잘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전하셨다 했다. 아쉬움 100%로 가득 차 있던 마음이 아쉬움 40%, 안도 30%, 신남 30% 정도로 바뀌었다. 담임선생님은 졸업 이후에도 별이 소식을 들을 수 있어 좋다고 하셨다.


이게 무슨 행복한 우연인가? 아니면 인연인가.





© dustinhumes_photography, 출처 Unsplash


인연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람뿐 아니라 장소에도 인연이 있다고 한다. 별이는 엄마가 대학 때부터 지나다니던 길목에 있던 어린이집에 다녔고, 나는 나와 인연이 깊은 직장으로 이동하여 근무하게 됐다. 별이 친구 ♧빈이의 엄마는 나의 대학 후배였다. 별이가 이사 간 곳은 담임선생님의 거주지 근처였고, 입학한 유치원에는 그분의 지인이 있었다. 모든 게 ‘신기한’ 인연이라 하기에는 나는 너무나 안전하게 그 원 속에서 살아왔다. 마치 컴퍼스처럼. 한쪽 점에 튼튼하게 다리를 딛고 허용할 수 있는 범위의 거리로 나아갔다. 그것이 닿는 지점에서 선택을 했다. 선택 후에 우연이나 인연으로 부를 법한 일들을 만났다.


어린이집을 비교할 때 내 선택에 영향을 미쳤던 것은 한 번이라도 이름 들어 본, 오랜 기간 탄탄히 운영되고 있음이 확실해 보이며 우리 집뿐 아니라 친정집에서도 가까운 기관이라는 점이었다. 육아를 위해 친정집 근처에 집을 구해 살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선택지 중에는 별이가 졸업한 어린이집이 있었다. 친정 동네는 이곳을 떠났던 어른들이 아이를 키우러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 곳이므로 ♧빈이 엄마를 여기에서 만났던 것도 영 우연은 아니다. 게다가 직장이 이쪽이니 아마 지도를 펴 놓고 고민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사를 결정할 때 예산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거주지들이 밀집한 곳을 찾았으므로 그곳에 담임선생님이 살고 계신 것도 영 우연은 아니다. ♧빈이 엄마처럼 아무래도 직장과 거주지는 가까운 것이 좋으니까 말이다. 어린이집 교사의 친구가 유치원 교사인 것도 신기한 일은 아니다. 직종이 같으면 마주칠 일도 많고 무엇보다 같은 장소에서 공부하고 같은 꿈을 키웠을 확률이 높으니까. 우연이 아닌 인과율로 정리되는 것들. 내가 ‘어떤 사람’이기에 다가오는 것들.


그래서 한편으로 나는 안도한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은 그들이 나의 컴퍼스로 그리는 원에 맞닿는 거리에 있다는 뜻이다. 각자의 중심이 가까운 거리에 있어 자신만의 원을 그려가다 보면 언제라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익숙한 것에 지루함을 느껴 미쳐버릴 것만 같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나의 익숙함이 그리고 나의 중심이 확고해졌음을 느낀다. 내가 만나는 좋은 사람들을 보며 그것이 헛되지 않았음을 다시 느낀다. 나이 드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말은 이럴 때 한 번 더 해 줘야 한다. 오늘은 시간이 흘러서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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