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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 Feb 28. 2022

나는 무수한 '너'들의 집합...<평범한 인생>

  내가 읽은 것들

카렐 차페크의 소설 <평범한 인생>을 읽었다.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이 체코 작가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체코 작가로는 밀란 쿤데라와 프란츠 카프카 정도 아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밀란 쿤데라가 있기 전에 카렐 차페크가 있었다고 한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작가인 밀란 쿤데라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는 책 소개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카프카, 쿤데라와 함께 체코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인 '카렐 차페크'. 쿤데라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작가의 작품세계, 작가의 인간상과 세상을 보는 관점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퇴직한 철도공무원이다. 그는 심장병이 악화되어 죽음이 가까워지자, 자신이 살아온 삶을 기록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리고 어린시절부터 하나씩 삶을 돌아보며 자서전을 쓰기 시작한다. 소목장이 아들로 지낸 유년기와 도시에서의 학창시절, 대학 공부를 중단하고 철도공무원으로 살아간 때, 그리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 시기가 차례대로 서술된다. 그가 지나온 삶의 궤적을 통해 특별히 모난 것도, 부족한 것도 없는 평범한 인생이었다고 인생을 규정지으려 할 때, 또 다른 내가 나에게 질문을 한다. 정말 그게 전부냐고. 다른 무언가는 없느냐고. 그리고 나는 대답한다. 평범한 인간, 억척스러운 인간, 우울증 환자 그 외에 또 무엇이 더 있어야 하느냐고. 평범한 인생은 단순해야 한다고. 그러나 그는 생을 되짚어가면 갈수록 자신도 알지 못했던 다양한 자아들과 마주하게 된다. 낭만적인 자아, 영웅적인 자아 등등 불쑥 나타난 자아들은 그가 규정하고 정의내린 삶을 다른 시선으로 조명한다. 


"인생은 여러 상이하고 가능한 삶들의 집합이며, 그중에서 단지 하나 또는 몇 개만이 실현되는 반면, 다른 삶들은 단편으로서나 가끔 발현되든지, 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내 인생이 어땠노라고, 단 하나의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복잡다난한 인생을 '평범한' 이라는 말로 퉁칠 수 있을까. 자신의 삶을 평범했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건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발현된 모습에서 벗어나,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가보면 발현되지 못했던 자아, 발현되었으나 곧 사라진 자아, 기억 못하는 자아 등 수많은 자아들이 지나간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그 자아들은 나와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것이었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우리 안에 들어 있는 수많은 운명들이 가능한, 태어나지 않은 형제들의 집합이 아닐까? 아마 그들 중 하나는 소목장이가 되고, 다른 사람은 영웅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또한 그들의 가능성들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단순히 내 삶으로 취했던 것이 우리의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네가 될 수 있었던 모든 걸 잘 보라. 주의를 기울여 보면 그 각각의 속에서 네 자신의 일부를 보게 될 것이다. 그 속에서 놀랍게도 너의 이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건 무수한 '너'들과 '가능성'들로 이뤄진 것이 '나'라는 존재라는 것이다. '네가 누구든 너는 나의 무수히 많은 자아'이기에 우리는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것. 그렇기에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존중하며 인정할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이해한다는 건 결국 나 자신의 삶이 더욱 완성되어간다는 의미라는 것. 이 소설을 왜 카렐 차페크 문학의 휴머니즘 정수라고 일컫는지 알 것 같다. 


"나는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나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수록 나 자신의 삶은 더욱 완성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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