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오늘은 정말 좋은 기일이네요.
영국 시간으로 지난주 금요일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9년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애도는 꼭 슬픔만을 뜻하지는 않아요. 정말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주말에 뭐 했냐고 밝게 물으면, 저는 해맑게 대답합니다.
그날은 엄마의 기일이었다고요. 그리고 정말 아름다운 하루였다고도 덧붙입니다.
월요일 아침 개발자와의 첫 미팅에서도 똑같이 말합니다. 조용하고 좋은 하루였다고요. 잠깐의 침묵이 흐릅니다.
1년 전 아버지를 떠나보내신, 요가 선생님은 제 이야기를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해 주셨어요.
애도는 여러 감정이 섞여 있는 복합적인 것이고, 때로는 그저 사랑이 다시 떠오르는 형태일 수도 있어요.
또 남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애도의 시기에 물가를 찾는다고도 하셨죠.
그날 저는 회사를 쉬고, 바닷가 근처에 있는 Clevedon Chapel [예배당]에 다녀왔습니다. 아무도 없는 750년 된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가, 엄마를 위해 조용히 초를 밝혔어요.
Image © Paul Murray. Clevedon Chapel [예배당]
함께 오신 저희 어머니 나이 또래의 불교인 산드라는,
저를 대신에 1 파운드를 기부함에 넣어주셨고,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서도 초를 올리 셨습니다.
우리는 그날 바닷물이 있는 풀장에서 함께 수영을 했습니다. 서로 물개 흉내를 내면서 둥둥 떠 다녔어요.
그리고 저는 생각합니다.
엄마, 오늘은 정말 좋은 기일이네요
한국의 제사는 유교적 전통에 따라 여성이 향을 피우거나 초를 올리는 것이 제한되기도 하지만, 저는 매년 몇 번이고, 엄마를 기리기 위해 향을 피우고 초를 밝힙니다.
엄마는 제가 만질 수 있는 입도 눈도 없으시기 때문에, 저 나름대로 의 과정을 통해 엄마와의 대화를 시작합니다.
어떤 날은 방 안에서,
어떤 날은 불교 센터의 작은 법당(shrine room)에서,
어떤 날은 나무가 울창하고 벚꽃 잎이 흩날리는 공동묘지에서요.
그곳에서 소풍을 온 엄마와 작은 아기를 볼 때면,
자연스럽게 엄마가 떠오릅니다.
영국의 공동묘지는 마치 동네 공원처럼 느껴집니다. 아침이면 이웃들이 강아지와 아이의 손을 잡고 산책을 나서고, 서로 마주치면 웃으며 눈인사를 건넵니다. 묘비 사이를 지나며 나뭇잎 사이로 비쳐 오는 따뜻한 햇볕을 느끼면, 죽은 이들 사이에 살아 있는 우리의 삶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곤 하지요.
하지만 비가 내릴 땐,
아무리 익숙한 풍경이라 해도, 죽음의 고요함 앞에서는 여전히 어깨가 으슬으슬해지네요.
엄마가 세상을 떠나신 지 9년이 되었지만,
선생님의 말씀처럼, 어쩌면 그 애도의 감정은 제가 엄마에게 받았던 사랑이 아직도 제 안에서 계속 표현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어요.
그 사랑은 너무나 따뜻해서, 지금도 제 안 어딘가에 영원히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날은 옅게 느껴지고, 어떤 날은 짙게 다가오죠.
그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함은, 어쩌면 그녀의 다정함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 삶에서 의미 있는 모든 이들과 언젠가는 이별하게 되지요.
그래도 다행인 건,
다정함은 우리가 떠난 뒤에도
누군가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머문다는 사실입니다.
희미해지지도 않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