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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지유 Apr 11. 2023

Oh, la Vie en Rose!

빛의 도시에서의 가장 찬란한 시절

필자는 평소 생각이 없는 편. 아니, 잡생각만 많은 편이다.


가끔 가다 스스로도 물음표를 띄울 만큼 내 자신이 지금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잘 모른다. 이 바쁘디바쁜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질적인 이슈이기도 하다만, 어째 어릴 적부터 그랬던 것도 같다. 긴 프랑스 생활 중, 딱 한번 친구가 '외롭지 않냐'고 물었을 때는 무척 당황했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친구와 나 사이에는 10년짜리 놀림거리가 되었지만 그게 바로 내 둔함 (+멍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평소 뭐 먹고 다니는지도 기억 못하는 나지만, 정말 아름답게 기억하고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추억들이 있다. 그 시기는 바로 파리에 올라가고 1-2년차이던 시절인데, 이 때 학업도 참 즐거웠고 소중한 인연들을 많이 만나 집순이를 넘어 지박령인 내가 가장 활발히 밖에 나가 놀던 시기였다.


파리에 살기 시작하고 한창 새로 편입한 학교에 재미를 붙이고 바빠진 학업에 열중할 무렵, 몇년 전에 알바하다가 친해진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6개월짜리 인턴십에 합격해 파리에 와서 살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아직 새 도시에서의 생활이 낯설었던 나는 당장에 친구를 만나러 갔다.


친구의 하우스 파티에 간 나는 거기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는데, 즉석에서 죽이 너무 잘 맞아 친해진 사람들이 생겼다. 얼마나 친해졌냐 하면, 하우스 파티의 주인공 친구가 다음 날 일찍 약속이 있다고 잠들어버리고 손님들에게는 편할 때 나가라 했을 때 우리끼리 집주인 노트북을 빌려 공포영화를 봤다. (당시 본 영화는 파라노말 액티비티) 그리고 밤새서 얘기한 다음 첫차를 타고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

알고 보니 내 알바 친구와, 하우스 파티 때 친해진 사람들 전부 어마어마한 핵인싸였다. 그들의 친구 모임에 나는 자연스레 합류했고, 매주 금요일과 매 주말은 친구들과 약속으로 꽉 찼다. 이번 주는 누구네 집, 다음 주는 다른 누구네 집. 돌아가면서 집에 놀러가서 밥 먹고 술 먹고 떠들고 놀았다. 크리스마스와 12월 31일같은 대 행사에는 작든 크든 항상 파티가 있었다. 개중에서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꼭 따로 일대일로 만났다. 친구 사귀는 게 너무 즐겁고, 그들을 만나는 게 너무 즐거웠다.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낯선 도시 따위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보다 오래 파리에 살았던 친구들은 해피 아워 때 가장 와인이 싼 비스트로를 알았고, 술을 진탕 먹은 다음날 해장하기 좋은 식당을 국가별로 읊어주었다. '한식? 일식? 중식? 베트남식? 골라!' 지방에서 살던 버릇으로 저녁에는 절대 밖에 다니지 않던 내가, 12월 31일 새벽에 친구 대여섯명과 함께 개선문을 보러 도시를 가로질러 밤 산책을 했다. 항상 혼자 다니던 미술관과 갤러리에 친구들도 불러 함께 다니게 되었다. 혼자서는 절대 보러 가지 않는 에펠탑을, 친구들과 술을 먹을 때면 밤 산책 필수 코스로 보러 갔다. 편집샵이 뭔지도 몰랐던 나는 친구들을 따라 파리에 있는 온갖 가게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커피를 마실 줄 몰랐던 나는 이 시기 친구들과 함께 이런저런 카페 탐방도 다녔다.


그 와중에 학교도 정말 열심히 다녔다. 사립학교라고 기뻐하지 않던 엄마를 열심히 설득했다. 이 학교에서 내가 몰랐던 것들에 대해 배우고 있다, 웃기게 들리겠지만 공부가 너무 재밌다, 그러니까 여기서 공부 열심히 하고 싶다고. 학교에서 실습 차원으로 반드시 시키는 인턴도 재미있게 다녔다. 소규모 아트페어에 나를 비롯한 다른 학생들도 대거 인턴으로 채용되었는데, 주로 리셉션과 오피스에 배치되었었다. 데스크에 오래 서 있다가 휴식시간을 가질 때면 아트페어 회장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재밌는 작품들을 보면서 사진에 담기도 하고, 그러다가 부스에 있던 갤러리 직원들과도 몇마디씩 주고받았다. 이 때 디지털 작품들만 전시해두었던 부스가 있어 굉장히 인상 깊었는데, 거기 있었던 갤러리 대표님과 어시스턴트와 얘기했다가 마침 갤러리에서도 인턴을 찾고 있다 해서 바로 그 자리에서 인턴으로 채용된 일도 있었다. 그 다음 해에는 파리의 대표적인 아트페어 FIAC과 Paris Photo라는 초대형 아트페어에 지원해서 인턴을 했었다. 인턴이 되자 공짜 티켓도 몇장 받아서 친구들을 불러서 같이 구경하기도 했다.


그렇게 학교와 인턴, 사교까지 삼박자가 완벽했던 시절이었다. 감히 찬란하다고까지 할 수 있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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