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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지유 Jun 14. 2023

사회 생활의 첫걸음을 떼다

어라, 재밌다! 병아리의 파리 인턴 모험기 1

파리 상경 1-2년차로 한창 신이 나 있던 시절의 이야기다.


새로 학교에 편입한 나는 학기초에 인턴십이 필수라는 이야기와 동시에 학교 측에서 단체로 인턴들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공고 내용은 10월에 있을 파리 아트 위크 중에 개최되는 작은 아트페어의 스태프 모집으로, 인턴보다는 아르바이트에 가까웠고 아르바이트보다는 무료봉사에 가까웠다. 기간도 딱 10일로, 운영국 측에서는 페이 대신 다른 어드벤티지를 약속했다.


모르시는 분들께 설명해보자면, '아트 페어' (Art Fair)는 갤러리들을 한데 모아 갤러리와 아티스트 홍보, 네트워크 형성, 작품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행사다. 우리 나라에서는 코엑스에서 개최되는 KIAF를 떠올리면 된다. 내부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박람회 같은 구성으로, 큰 회장에 가벽으로 여러 부스를 설치한 뒤 거기에 작품을 걸어둔다. 아트페어는 전국 규모일 수도, 국제 규모일 수도 있으며 파리 같은 도시에서는 아무리 작은 아트 페어라도 해외에서 참여한 갤러리들이 꽤 많다. 왜냐, '파리'라는 네임드가 있고 프랑스 예술시장/고객층은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되기도 했으며 안목이 높기로도 유명하지만 그만큼 유의미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자랑스러운 첫 스태프 배지와 오프닝 전 어수선한 공사 현장.


이 아트페어의 특이점은 바로 센느 강변에 지은 텐트에서 한다는 점이었다. 위치는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알렉산더 3세 다리 밑이었고 그 위로는 파리 아트 위크의 핵심인 FIAC이 개최되는 그랑 팔레가 있었다. 관광객은 물론이고 FIAC을 감상하러 온 수많은 갤러리스트, 관람객, 컬렉터, 일반 관람객까지 유동인구가 아주 활발한 스팟이었다. 거기다가 텐트 앞에 서면 저 멀리 에펠탑이 잘 보였다.


나처럼 채용된 아이들은 약 10명 정도였고, 우리는 모두 리셉션 데스크에 배치되었다. 누구는 티켓 오피스, 누구는 안내 데스크, 누구는 가이드가 되어 관람객들을 인솔하고 다녔다. 개중 가장 힘든 게 티켓 오피스였고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가이드 직을 하고 싶어했다. 관람객들을 데리고 아트페어의 설명과 참석하는 갤러리를 읊고, 페어장을 한바퀴 돌면 한동안 쉴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웬만한 다른 자리들은 교대 근무도 가능했지만, 가이드 일만큼은 한 친구가 독점하고 있었다. 나는 당시 우리들 중 유일한 동양인이었고, 남들 앞에서 말을 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던 소심이였다. 해서 나는 안내 데스크로 만족했다.


첫날부터 오프닝 날짜까지는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텐트 내부는 아직 한참 공사 중이었고, 작품을 운반하고 설치하는 업자들과 갤러리 관계자들로 가득했다. 처음 보는 신기한 작품들이 귀중한 물건 또는 가구 옮겨지듯이 운반되는데, 미대를 다닐 때도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에펠탑이 훤히 잘 보이는 강변에 설치되어 있던 아트페어 텐트. 꼭 파티장에서 일하는 기분이었다. 프랑스인들, 뭘 좀 안다.


오프닝 후, 인턴들은 본격적으로 바빠졌다. 티켓 오피스에는 늘 길게 줄이 있었고, 안내 데스크에서는 길 안내와 시설 안내, 질문들에 대답해주기 바빴다. 두어시간에 한번씩 우리는 서로 교대해주며 휴식시간을 가졌고, 점심시간에는 회장 밖에 있는 푸드트럭에서 샌드위치를 사먹었다. 나는 쉴 시간에 아트페어장을 두바퀴씩 돌면서 작품 구경을 했다. 이 아트페어는 신생 갤러리나 젊은 오너들이 많았기 때문에 신기한 작품들이 유독 많았다. 말없이 구경하다 보면, 갤러리 직원들이랑 말을 섞기도 했다. 여기 직원이냐, 학생이냐, 어디 다니냐, 작품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느냐, 등등. 별 것 없는 대화였지만 워낙 피로도가 높은 행사기 때문에 직원이나 갤러리 사람들이다 피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갤러리 직원들과는 항상 살갑게 대화했고, 대화하는 게 즐거웠다. 낯가리는 소심이로서는 굉장히 큰 도약이었던 셈이다.


흔치않은_퇴근길_풍경_jpg.


그렇게 안내 데스크 업무 - 휴식 - 점심 - 교대 업무 - 저녁 늦게 퇴근 이런 일상을 4일 정도 반복하니, 아트페어가 마무리되었다. 10일 남짓한 인턴십은 매우 짧고 굵었고, 같이 파견나갔던 인턴들은 모두 굿즈와 도록 등의 선물꾸러미와 에코백을 받았다. 페이가 없었다는 사실이 쓰긴 했지만, 낯가림 심하고 모르는 사람과 말을 잘 못 트던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첫 발걸음이 되어주었다. 일반 관람객과 미술 종사자들, 업계 사람들, 고객들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말을 섞어야 하다 보니 저절로 훈련이 되었다. 불과 1년 전, 내가 그린 작업을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고 평가받는 자리에서도 어눌했었는데!


무엇보다 이 첫 인턴에서 내 스스로에 대해서 알아낸 것은, 아트페어 특유의 하이페이스 환경과 뜨거운 열기, 많은 사람과 많은 작품들이 모여 있는 그 공간에 매료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공간에 더 오래 있고 싶었고, 그 곳의 일부가 되고 싶었다.


본격적인 사회 생활의 첫 발을 내딛으면서, 내 적성을 찾아가고 있다는 즐거움과 흥분으로 가득한 나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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