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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주 Oct 20. 2023

혼자 누리는 시간


많은 시간을 타인과 함께 보내는 내게 있어 혼자 보내는 시간은 그냥 ‘보내는’ 시간이 아닌 ‘누리는‘ 시간이다. 온종일 환자를 보고, 직장 동료들과 함께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일하다 보면 온전히 혼자가 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


어떤 사람은 혼자 보내는 시간을 두려워한다. 한 때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혼자 밥을 먹거나, 카페를 갈 때 타인의 시선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혼자 있는 게 도통 적응이 되질 않았다.

 ‘저 사람은 왜 혼자 있지? 친구가 없나?‘

 ‘저 사람은 옷을 왜 저렇게 입었지?’

 ‘저 사람은 혼자 와서 뭘 하는 거야?’

 같은 마음의 말들이 나를 괴롭혔다. 특히 타인민감성이 높은 내게 혼자 있는 일은 즐겁다기보다 두려운 일에 가까웠으나, 이제는 정반대다. 혼자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면 오히려 힘들다. 극심한 피로와 함께 나만의 공간이 절실해진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혼자 보내는 시간에 스마트폰만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타인의 sns를 끊임없이 염탐하거나, 타인들을 관찰하는데만 몰두했다. 그렇게 쌓은 시간들이 내게 가져다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은 건 피로해진 눈과 정신뿐. 혼자 있으니 더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게 아니면 함께 대화를 나누는 누군가를 보며 외로워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는.


독립심이 강한 남편은 함께 있는 것도 즐기고, 혼자 있는 것도 즐기는 사람이었다. 떨어져 있으면 불안감을 느끼던 나는 처음에 남편과 연애할 때 서운함을 자주 느꼈다. 매일 같이 있고 싶어 했지만, 남편은 매일 보는 건 어렵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남편이 처음에는 이해가 가질 않았으나, 언제나 올곧고 가치관이 확실한 그를 보면서 나도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주로 혼자 있으면 운동을 하거나, 매일 집을 청소하거나(자취생이었다), 직접 요리를 해 먹었다. 나를 만나기 전에는 혼자 공연도 잘 보러 다니고, 유명한 맛집이나 카페도 돌아다녔다고 했다. 그는 내게 ”혼자 즐길 게 얼마나 많은데! 선주도 오프에(쉬는 날) 평일이니까 이곳저곳 많이 다녀 봐. 구경도 하고. 아니면 뭘 배우거나. 주말에는 나랑 만나서 재밌게 놀면 되니까. “하고 말해주었다.


그 후로 나는 지금의 남편을 따라 운동도 끊고, 그림 그리기도 배우고, 혼자 있는 시간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전혀 하지 못했던 요리를 시작했고,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 노력하고, 행동하다 보니 어느새 혼자 보내는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이제는 남편보다 내가 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각자만의 공간이 있다. 내게는 서재, 그리고 남편에게는 컴퓨터 방이.


한때는 너무 외로워서 매일같이 사람을 만났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문제를 겪기도 했고, 아프고 상처받으면서도 사람을 놓지 못해서 병이 나기도 했다. 타인에게 받은 상처는 무조건 다른 누군가에게서 치유받으려고 했고, 잠시도 혼자임을 견딜 수 없었다. 남의 말만 무조건 믿고 따르다 보니 내 생각이 어떤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사람과 있을 때 편안한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 혼란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런 나를 ‘진정한 나’로 껍데기를 벗겨내 준 건 혼자 누린 시간들이었다.


한가한 낮 종로 서촌을 혼자 산책한 것, 따스한 분위기의 화실에서 오일파스텔을 배운 것, 방 안에서 무드등을 켜고 흠뻑 요가에 취한 것, 새벽에 일어나 아끼는 책을 읽은 것. 이 외에도 혼자인 나를 충만하게 해 준 기억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앞으로 고독력 매거진에는 혼자 보내면서 과거의 나와 완전히 이별하게 된 일과 좋았던 점, 왜 혼자 누리는 시간이 필요한지에 관해 풀어보려고 한다. 미미하고 부족한 경험이지만, 아직도 혼자가 두려운 누군가에게 는 힘을, 혼자 누리는 시간을 애정하는 이들에게는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글이 되길 바란다. 나는 고독력이 있는 사람이 좋다. 그리고 나도 그러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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