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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주 Oct 21. 2023

나만의 공간


"모든 사람들의 불행은 홀로 조용한 방에 머물 수 없다는 단 한 가지 사실에서 비롯된다." -파스칼


철학자 파스칼이 남긴 명언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내게는 앞서 적어놓은 명언이 가장 공감되면서도 큰 울림을 주는 말이었다. 나와 남편은 각자만의 공간이 있다. 결혼 전부터 서로 합의 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나만의 서재가 있고, 남편에게는 남편만의 컴퓨터 방이 있다. 우리는 거실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거나, 식탁에 앉아 함께 커피를 마시는 일을 좋아한다. 그게 아니면 베란다에 만들어놓은 작은 바에서 놀이터를 구경하거나 나무에 앉은 까치를 바라보며 즐거워한다. 그렇게 둘만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도 각자만의 공간으로 가하고 싶은 일들을 한다. 나는 주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남편은 컴퓨터를 하거나, 방안의 화분들을 가꾼다(그는 식물 집사다.).


우리는 계속 붙어있는 것만이 서로를 위하는 게 아님을 안다. 하루종일 붙어 있다 보면 서로에게 짜증이 날 때도 있고, 함께 있는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면 괜히 상대방에게 화풀이를 하게 되거나 의도치 않게 좋지 않은 말투가 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더욱 나만의 공간에 들어가 시간을 보낸다. 명상을 하거나, 화난 것에 대해 일기를 쓰다 보면 어느새 좋지 않았던 감정은 사그라들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성인이 된 후에는 나만의 공간은 필수로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와 같이 산다고 해도 홀로 있을 수 있는 단 몇 시간이 나의 삶을 좌우하고, 나의 불행과 행복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바운더리가 있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라도 해도 그 바운더리를 자꾸만 넘게 되면, 불편감을 느낀다. 누군가와 계속 붙어있게 되면 나만의 가치관이나 신념을 만드는 데 방해가 되고, 인생을 살아갈 때 '나만의 시선'이 아닌 '타자의 시선'으로 살아가게 된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타인의 영향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 공간만큼 나의 생각을 선명하게 바라보고,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곳은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어쩔 수 없이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게 된다. 꼭 책을 읽고, 글을 쓰지 않더라도 내 언행을 되돌아보고, 내 인생을 탐구하고, 나라는 한 인간을 향한 진정한 관심을 가져주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 일은 더 잘 살아가기 위함이다. 잘 살아간다는 건, 꼭 명예나 부를 이루기 위함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소명을 다하며,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산다는 게 아닐까. 내가 나에게 진실된 인생을 사는 것. 그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지 않을까. 거짓되고 위선적이며 오만한 삶을 사는 한 인간이 되고자 한다면, 그것은 짐승보다 못한 생명체로써 그저 감각과 쾌락에만 의존한 채 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내가 스물셋에 독립하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여전히 부모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았을 것이다. 결혼 후에도 나만의 공간이 없이 홀로 조용히 보내는 시간이 없었더라면, 나는 남편과 등을 지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나와 대화할 수 있고, 나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정말로 감사한 일이다. 꼭 내 방이 아니더라도, 도서관의 구석이라던지 단골 카페의 지정석이라던지, 공원의 어느 좋아하는 벤치라던지 어디든 나만의 공간이 될 수 있다. 그 공간을 만들고, 거기서 무얼 하는지에 따라 내 삶은 확연히 달라질 것임을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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