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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주 Oct 21. 2023

고독력

서촌에는 혼자 걷는 이들이 꽤 있다. 혼자 걷는 이들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잊고 지냈던 나와의 대화를 하기에 '서촌'은 가장 적절하고, 걷기 좋은 동네임에 틀림없다. 각자의 사색에 빠진 이들은 앞을 보기도 하고, 하늘을 보기도 하며, 가끔 멍을 때린다. 네모난 기계를 들여다보는 이는 보지 못했다. 지하철에서 혹은 복잡한 쇼핑몰 안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장면은 이곳에 없었다. 서촌은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곳임을 증명해 주었고, 고독력을 키우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라는 것을 조금만 걸어보아도 알 수 있다.

파스텔로 칠해놓은 듯한 하늘과 간간이 불어오는 적당한 바람. 바람 속에 스며든 어느 한 초등학교의 왁자지껄한 소리. 체육시간인 것 같았다. 아이들은 저마다 신나게 소리를 질렀다. 초등학교 뒤로는 당당한 기세를 뽐내는 인왕산이 보였고, 초등학교는 마치 산의 거대한 품에 안겨있는 것처럼 보였다. 운동장에는 오직 평화로움만이 존재했다. 그 어떤 걱정도, 분노나 불안 같은 것들 따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내 옆으로는 두 여자가 걷고 있었고, 뒤로 한 명이 더 있었다. 나는 그들과 전혀 모르는 사이였으나, 왠지 그들과 하나인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바라보는 곳도, 걷는 속도도 모든 게 다르지만 '홀로'있다는 그 사실 하나로 왠지 모를 위안과 연결감을 느꼈다. 나는 고독력을 좋아한다. 혼자 있는 시간의 힘. 그 힘이 가져다주는 기쁨을 아는 이들이 좋다. 그들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아우라가 느껴진다. 고독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경험해보지 못한 보이지 않는 힘이 그들에게는 분명 있다고 믿는다.

한때 나는 고독력이 제로에 가까운 사람이었고, 늘 누군가와 함께 하길 갈망했다. 혼자 밥을 먹는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혼자 밥을 먹느니 굶는 걸 선택했던 과거의 나는 이젠 찾아보기 힘들다. 솔직한 심정은, 누군가에게는 꼴값 떤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나는 고독을 제대로 즐길 수 없는 사람을 그다지 좋게 보지는 않는다. 대부분 내면의 힘이 없어 쉽게 감정적여지는데다 가치관이나 신념이 흐릿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남들이 하는 대로 살거나 혹은 남들에게만 온통 시선이 쏠려 있어 피곤한 경우가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고독력이 없는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확고해지는 요즘이다.

그러나 고독과 고립을 동일시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고독은 자의적으로 홀로 있는 힘을 키우는 시간이지만, 고립은 오히려 힘을 잃게 만들어 외부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상태가 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타인과 소통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며, 홀로 있는 시간도 그만큼 필요하다. 너무 남에게 의존하지도 말고, 너무 나만의 세계로 고립되지 않도록 균형을 잘 지키는 일은 살아가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무언가에 너무 치우치는 일은 좋지만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보내는 하루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정리할 시간을 가지며 그것을 습관화하는 게 아닐까.

고독력을 키우는 일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산책과 독서 혹은 요가 같은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추천한다. 그게 아니면 무언가 혼자 즐길만한 취미라도 갖는 것도 괜찮다. 그러나 가장 좋은 방법은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글쓰기야말로 자신의 상태에 관해 명확히 점검해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이므로.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삼십 분이라도 '고독'한 시간을 가진다면, 지금보다 한 달 후, 일 년 후에는 확실히 달라져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고독력은 복잡하고 고립되기 쉬운 시대인 지금,  '필수'로 지녀야 하는 힘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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