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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주 Oct 22. 2023

내 안의 나와 마주하는 시간, 요가

'아. 재미없어. 숨 쉬기 힘들어. 지루하고 재미없는 걸 왜 돈 주고 할까? 역시 나는 미친 듯이 운동하고 뛰는 게 좋아. 다시는 요가 안 할래.'


20대 때의 내가 요가에 관해 가진 생각이다. 그러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지라, 저런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요가를 한다. 요가에 흠뻑 빠져들게 된 지 벌써 4년 째다. 워낙 모든 것에 흥미를 빨리 잃어버리는 편이지만, 몇 년 간 지속하는 행위가 몇 개 있는데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요가다. 원래도 운동을 좋아하는 터라 이것저것 배워보기는 했으나, 1년 넘게 지속된 신체 활동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필라테스가 8개월 정도였고, 러닝도 한 달이 고작이었다. 수영도 한 달, 댄스 배우기도 한 달이 고작이었다. 


더 이상 운동을 배우는 데 흥미를 잃었을 때, 그나마 흥미를 이끌어내 준 홈트 영상마저도 지겨워지던 차였다. 그러던 어느 날,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는 플랫폼에서 요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첫 결제 시 높은 할인률도 한몫을 했고, 분위기가 좋아 보이는 그곳에 왠지 모르게 끌렸다. 우연히 가게 된 요가원에서 나는 제대로 된 요가를 배우게 되었고, 요가는 육체뿐만 아니라 시들어있던 내 마음에 흠뻑 물을 적셔주는 것만 같았다. 거기다 항상 진정성 있게 회원을 대하는 다정한 요가 선생님도 한몫을 했다.


그냥 운동을 할 때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마음의 안정과 위로를 요가를 한 후부터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메말라있던 영혼이 비로소 생기를 찾은 느낌이었달까. 거기다 요가는 절대 지루하고 쉬운 움직임이 아니었다. 나는 20대 때 한 번의 경험으로 잘못된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 특히 고되고 지친 마음이 드는 날이면 요가원을 찾았는데, 모든 행위를 끝낸 후 매트 위에 누워 사바사나(팔다리를 벌리고 편안하게 누워있는 것. 송장자세라고도 함)할 때면 이상하게 눈물이 흘렀다. 굵은 눈물이 소리 없이 뚝뚝 흘렀고, 어둑한 분위기의 요가원은 빨개진 눈을 감추기에도 적격이었다.


특히 호흡을 중요시하는 요가는 숨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든다. 항상 템포가 빠른 숨이 익숙했던 나는 처음에 느린 호흡이 무척 불안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호흡을 크고 느리게 할수록 마음은 더욱 고요하고 차분해졌고, 나를 지배하고 있던 긴장과 불안은 어느새 사그라들었다. 특히 어려운 동작을 해야 할 때면 온 마음과 정신을 집중해야만 했다. 그렇게 반복된 집중의 시간들은 도파민에 절여져 있던 뇌를 치유해 주었고, 쾌락과 감각에만 의존했던 내 모습과 조금씩 멀어져 가기 시작했다.


요가원에 가지 않는 날이면, 나는 나만의 공간에서 매트를 편다. 그리고 매트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호흡을 가다듬는다. 처음에는 쓸데없는 생각들이 마구 떠오르지만,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이내 소란한 마음이 가라앉고 고요함과 조우한다. 고요 속에서 무얼 느끼냐고 묻는다면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다." 워낙 다양한 감정으로 예민하게 살아가는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상태'가 필요하다.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무기력함도, 우울함도 과도하게 느끼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덜 자극적인 상태가 필수적이다. 거기다 몸 곳곳을 풀어주고 적당한 근력을 키워주는 동작까지 해내고 나면, 개운함과 동시에 나른함이 몰려온다. 그렇게 내 안에 켜켜이 쌓인 해묵은 감정과 독소들이 빠져나가고 나는 그것들과 영영 이별한다. 


한 때 요가는 선하고 좋은 사람들만 하는 것이라 착각했던 적이 있다. 나처럼 부정적인 생각에 잘 빠져들고, 누군가에게 쉽게 미운 마음을 갖는 사람은 하면 안 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런 사람일수록, 그런 나를 온전히 바라보고 인정할 수 있게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해주는 게 요가였다. 특정한 사람만이 요가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누구나 요가를 하며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심신을 단련시켜 나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요가를 '수련'이라고 칭하나 보다. 다른 운동과는 다르게. 이 행위가 너무 좋아서 나는 자격증까지 따버렸다. 하면 할수록 좋아져서. 이걸 행함으로써 누리는 행복을 타인에게도 꼭 경험시켜주고 싶어서다. 


세상은 온갖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요소들로 가득하다. 그 안에서 올곧은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심신을 함께 단련해야 한다. 몸과 정신은 연결되어 있으므로. 혼잡한 소용돌이 속에서 방향을 잃고 허우적대며 살아가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행위를 통해서 몸과 마음이 말랑해지고 유연해짐을 느꼈다. 인생에서 누구나 작고 큰 시련을 겪는다. 그럴 때는 참나무처럼 버티기만 하면 안 된다. 버드나무처럼 휘어질 줄도 알아야 한다. 몸과 정신이 단단하게 굳어져 있으면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가 힘들다. 유연하고 말랑한 자세가 필요하다. 딱딱하고 굳어진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요가를 한다. 그것은 나를 위한 일임과 동시에 타인을 위하는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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