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를 견디는 방법

-너만 잘났냐? 나도 잘났다!

by 김선정

자야 할 시간이 지났지만 글을 쓴다. 그녀의 무례가 나의 유익한 잠자리를 방해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어 자려고 누운 몸을 일으켜 기어이 글을 쓴다.


날마다 운전을 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무례한 사람들을 마주친다. 깜빡이를 켜지 않고 끼어드는 것은 너무 흔해 무례 축에도 끼지 못한다. 유모차나 휠체어가 다닐 수 있게 해 둔 인도의 낮은 턱 앞에 위풍당당하게 주차를 해두는 사람들. 2차선 도로에서 한 차선을 막은 채 깜박거리는 비상등만 켜둔 채 당당히 마트 쇼핑을 하는 사람들. 비상등마저도 없이 느닷없이 차를 세워 누군가를 내려주는 사람들. 그뿐인가, 차선이 없어지는 도로에서까지 껴주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옆 차를 밀어내는 사람들.


무례하다. '태도나 말에 예의가 없음'이라는 사전의 정의는 너무 간단해서 그 안의 폭력성을 짐작할 수 없지만 무례를 겪어본 사람은 안다. 사람을 순식간에 초라한 바닥으로 내동댕이치는 폭력을.


보드게임 강사로 일한 지 3년이 넘어가고 있다.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과 자긍심이 높은데도 가끔 강사라는 직업인으로서 만나는 무례에 서글퍼질 때가 있다. 모든 수업이 계약으로 얽혀 있으니 안정적이지 않은 데다가, 이러한 관계는 묘하게 갑과 을을 만든다. 자랑스러운 내 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참기 힘들었던 것은 담당자랍시고 허세를 가득 안고 있는 인간들이었다. 날마다 만나는 도로의 무례함은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는 무례함에 비하면 애교스럽기까지 하다.


오늘 나를 한번 더 이런 절망에 빠지게 한 그 담당자 역시 스스로를 갑이라 여기는 듯했다. 나는 개인 사업자이고 개인이 아닌 기관과 계약을 한다. 그리고 계약사항에 걸맞은 의무와 책임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그녀는 담당자랍시고 나를 “일개 강사”로 취급하며 부하직원에게 책임을 묻듯 따지고 들었다.

"강사님, 왜 강사님만 왜 30분이나 늦게 시작하세요? 강사님 때문에 다른 수업들이 다 꼬였잖아요!"

아직 아이가 어려 돌봄이 필요하니 방학중 아침 수업 시간을 조금 늦추어질 수 있냐는 나의 요청은 이미 2주일 전에 스케줄 담당자와 협의된 사항이었다. 내부적인 삐걱거림을 나에게 쏟아내는 그녀의 불쾌한 말과 행동에 평생 동안 몸에 배어온 비겁함이 자동반사로 반응했다. .

"아..죄송해요. 아이가 아직 어려서 제가 좀 데려다줘야 해서..."

그녀 앞에서 구구절절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계약이 끝나는 2월이 지나면 재계약을 하지 않는 기관임에도 말이다.


수업을 마치고 교실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 무례함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화가 났다. "강사"로서의 존중까지 바라는 건 아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어쩌면 이렇게 무례할 수 있단 말인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계속 그 장면을 되돌렸다. 그때 이렇게 말할 걸, 저렇게 대답할걸 후회가 밀려왔다. 머릿속에서는 그녀에 무례에 반박할 말들이 꼬리에 꼬리를 이으며 줄줄이 나왔다. "이미 2주 전에 협의한 사항인데 이제 와서 왜 저한테 이러세요?", "내부적으로 소통이 안 된 건 제 문제가 아니잖아요?", "당신은 1년 내내 내 스케줄을 이리저리 꼬아왔잖아요!" 뱉어내지 못한 말들이 마음속에 산처럼 쌓여갔다.


낮의 일이 잠자리에까지 따라 들어왔다. 그녀가 내 인생에 그리 중요한 사람인가? 내 시간과 에너지를 이렇게나 빼앗길 만큼? 타인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예의 없는 그녀에게 내 생각의 1분 1초도 주고 싶지 않다.

공자는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그중에 나의 스승이 있다. 그들의 좋은 점을 가려 본받고, 그들의 좋지 않은 점을 보고 자신을 고친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오늘 일로 무엇을 배울것인가. 그녀에게 이것 하나만은 확실히 배웠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기분이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가 되지 않게 해야한다는 것을.

중요한 것을 가르침을 준 그녀에게 감사까지 해야 할까. 아니 그것까지는 안 되겠다. 아직은 배움과 미움을 함께 가져가겠다. 언젠가 군자가 된다면 이 미움도 사라지겠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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