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오늘 내 방에서 혼자 잘래!"
샤워를 마치고 나온 아이가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닦다가 갑작스러운 선언을 했다. 식탁에 앉아 있던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찰나의 정적 속에서 내 눈에 비쳤을 당황을 그의 눈에서도 보았다.
"응, 그래. 하고 싶은 대로 해."
자기 방에서 본인이 잔다는 데, 다 큰 아이를 말리는 것도 우습다. 혼자 자기를 바라서 일찌감치 방을 만들어 주었고 3년 전 몇 달간은 혼자서도 잘 자는 아이였다.
딸아이를 다시 내 곁으로 불러들인 건 나였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내 옆자리는 항상 아이의 차지였다. 작은 몸으로 안겨오는 딸아이 덕분에 잠자리가 행복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오랜 설은 잠으로 힘겹기도 했다. 아이와 떨어져서 자면 깨지 않고 푹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초등학교에 입학도 했겠다 잠자리 독립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마침 읽고 있던 그림책의 아이들이 자신의 방에서 잠드는 장면들이 많았다. 이 아이들을 봐라 다 혼자 자지 않냐, 혼자 자게 되면 공주님 방처럼 예쁜 방으로 꾸며주겠다 등등의 꼬심에 아이는 결심이 섰는지 혼자 자보겠다고 했다. 당장 가구를 사고 이부자리를 새로 장만했다. 내가 갖고 싶을 만큼 아기자기한 방을 선사했고 기특하게도 아이는 혼자서도 잘 잤다.
아이를 독립시키고 괴로워진 건 나였다. 남편과의 합방에 대해 별로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남편과 본의 아니게 각방에서 자게 된 지 어느덧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있었다. 어색한 기운이 우리 둘 사이에 흘렀다. 침대 오른편에서 잘지, 왼 편에서 잘 지를 정하는 것부터가 낯설어 내가 연애할 때 줄기차게 불렀던 '자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각자 자리를 대충 정하고 나란히 눕자 남편의 뒤척임이 시작되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들려오는 이불 바스락거리는 소리, 매트리스로 전해오는 진동. 잠이 들만하면 깨워대던 그 뒤척임을 잊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많이 싸웠는지도. 그날은 본인도 편치 않은지 유난히 뒤척임이 심했다. 다시 방을 합친 첫날부터 싸우기 싫어 참고 참다가 설핏 잠이 들었다.
며칠이 지나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메말랐고, 정겹게 부르던 애칭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딸이 중간에 빠진 리마엄마와 리마아빠 사이에는 할 이야기도 딱히 없었다. 나란히 누워 오손도손 이야기 나누는 정겨운 부부는 드라마 속 이야기였다. 남편이 새벽 일찍 출근하느라 잠자리에 일찍 드는 것이 유일한 다행이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남편이 완전히 잠이 들면 살그머니 들어가곤 했다. '다른 남편들은 거실에서 잘도 자던데 왜 침대에서만 자려고 하는 거야'라는 불평을 속으로 삼키면서 침대 한편에서 잠을 청했다. 하지만 가장 괴로웠던 건 술냄새였다. 술을 좋아하는 남편이 과음을 한 날이면 풍겨대는 냄새는 방 안을 채우며 숨 쉬기를 힘들게 했다. 어느 날 더 이상 참지 못한 벌떡 일어나 거실로 뛰쳐나왔다. 단 하루도 한방을 쓰고 싶지 않았다. 다음날 딸아이에게 다시 엄마와 같이 잘 것을 사정했고 이번에도 아이는 엄마의 꼬임에 큰 저항 없이 넘어왔다. 그렇게 아이의 잠자리 독립을 철회하고 딸아이와의 평온한 잠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오늘 저녁, 불과 몇 시간 전 딸아이의 선언에 또 리마아빠와의 합방을 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곧 4학년이 되는 아이의 잠자리를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다. 이미 자신의 방으로 문을 닫고 들어가 한껏 즐거워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엔 중도탈락 없이 끝까지 적응할 수 있을까. 동반자가 되기로 약속한 이후 수많은 밤이 지나왔다. 그 밤들 사이에는 많은 웃음과 많은 눈물과 많은 후회가 있었다. 그 모든 것을 함께하고도 같은 침대에 눕는 것이 어색한 부부가 되었다니. 오늘 밤 뒤척임의 정도를 예상하기에 나는 그 이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슬그머니 누울 것이다. 그래도 늘 곁을 지켜온, 따뜻하고 든든한 손은 한번 잡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