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렉스와 롱 테이크

by 김선정

12월이면 만나는 이들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3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선배 두명. “송년회 해야지”하는 선배 말에 지난주 토요일에 광화문으로 향했다.

대학시절의 우리는 모범생은 아니었다. 공부보다는 노는 것을 잘했고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했었다. IMF라는 큰 시대적 문제가 있었지만, 학교안에서 우리들은 안전했고 행복했고 천진난만했다. 시시껄렁한 농담으로 걱정 없어 보이는 하루 하루를 보내던 우리는 졸업하면서부터 멀어졌다. 그러다 누군가 연락이 해오면 1년에 한두번, 서로를 다 잊기전에 만나서 추억을 되새기며 술 한잔을 해 오는 사이다. 내 나름대로 선배들을 존경하는 마음이 컸다. 차곡 차곡 자신들의 커리어를 쌓아가는데다가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후배인 내가 들이대는 건방을 귀엽게 여겨주었다. 그뿐인가, 살면서 쏟아내는 수많은 불평을 들어주며 위로를 건넸다. 만나기만 하면 우리는 현실에서 벗어나 대학시절로 돌아갔고 그러한 만남은 나에게는 상당한 위안을 가져다 주곤 했다.

여느 때처럼 맛있는 술과 안주를 사이에 두고 웃고 떠들며 지나온 서로의 생활을 보고하던 중, 한 선배가 물었다.

“너 저 형 시계 뭔 줄 알아?”

“뭔데? 카시오?”

내가 아는 유일한 시계브랜드를 말했다.

“저거 롤렉스야. 2천만원이래.”

금빛 광채가 눈부신 시계를 흔들며 롤렉스의 주인이 한마디 보탠다.

”너는 까르띠에잖아. 저건 천만원이다.“

까르띠에의 주인 또한 시계를 찬 손목을 나에게 보인다.

시계를 풀어서 교환하자는 제안을 누군가가 했고 다들 시계를 풀어 테이블 가운데 놓았다. 롤렉스와 까르띠에 옆에, 나의 7만5천원짜리 스마트 워치가 자리 잡았다.

”촌스럽게 요즘 누가 일반 시계를 차. 스마트한 시대에 스마트워치가 최고지.“

가위바위보를 하고선 이긴 순서대로 시계를 가져가는 유치한 장난을 시작했다. 내 손목에 까르띠에가 앉혀졌다. 주책맞게도 아쉬웠다. 롤렉스 한번 차보고 싶었는데..천만원짜리 시계의 무게도 이렇게 큰데 2천만원짜리 시계는 어떨지 궁금했지만 까르띠에 마저 바로 풀어 주인에게 돌려줬다. 흠집이라도 낼까 두려웠다.

장난스러운 시계놀이를 끝내고 다시 대화는 이어졌지만 그들을 향한 다정하고 훈훈한 마음은 이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질투가 났고 샘이 났다. 30년 가까이 그들에게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당황스러웠다. 술을 더 마셨고 베베 꼬인 말을 몇 마디 뱉어냈던가. 유쾌하지 않은 마무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손목에 있는 7만 5천원짜리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시계는 가볍고 군데군데 기스가 나 있어 초라해 보였다. 불안감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대학 시절의 나는, 오십이 되면 걱정이 없을 줄 알았다. 하고 싶은 것도 다 이루고 누구나가 부러워하는 삶을 살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는 도전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하고 싶었던 공부를 용기내어 시작했지만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고(논문을 써야 하지만 주제조차도 잡지 못하고 있다), 3년전 시작한 일은 매년 재계약의 연속이라 안정과는 거리가 멀다.(어김없이 계약 기간이 끝나가고 있다) 어디에도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는 나의 현실이 매초마다 깜빡거리는 스마트워치 마냥 가벼워보였다.

문득 선배들의 30년을 생각해봤다. 그 선배들과 나는 같은 대학에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졸업 후에는 다른 장소에서 다른 시간을 보내왔다. 예전 [슈퍼스타K]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악마의 편집“이 화제였다. 앞뒤 전후를 다 자르고 제작진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나는 몹시도 애정했던 그들의 삶을 내 맘대로 편집해서 시계만 보고 있었다. 잘 짜여진 각본대로 다듬어진 편집본과 무삭제판 내 인생을 비교하고 있는 꼴이 우수웠다. 타인의 인생은 늘 반짝이는 초침을 정교하게 움직이는 롤렉스 시계처럼 완성도가 높아 보인다는 것을 잊었다. 그들의 인생도 스스로에게는 롱 테이크로 잡혀서 꼴사나운 모습이 가득한, 그저 그런 모습들이 모여 만든 결과물일텐데 말이다.

잠깐의 자격지심을 마음 한 켠에 구겨 넣는다. 어쩌겠는가. 지금의 내가 최선의 나인걸. 미래의 어느날, 내 인생도 누군가는 잘 편집해서 멋진 인생 서사시로 만들어주지 않을까. 오늘의 하루가 미래의 명장면으로 뽑히길 바라며 글을 쓴다. 이렇게 모아진 글들은, 모두와 함께 쓰는 사람이고픈 나에게 값진 롤렉스 시계가 되어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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