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라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게 된 기억
내 일생에 걸친 과제중의 하나는 외로움이다. 어릴 때부터 줄곧 느껴왔던 깊은 외로움이라는 감정.
정확히 기억하는 건 12살 때 처음 이런 감정이 외로움이구나 했고, 아마도 그 전부터 이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을 그 감정이 크게 밀려오자 그때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붙이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20대 내내 골몰했던 대주제 중 하나가 "이 외로움을 대체 어떻게 해결해야할까"였다.
지난 시간동안 내가 외로움에 대해서 다뤄왔던 방식과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외로움에 대해서 천천히 써보고자 한다. 물론 앞으로도 그 시행착오가 많기야 하겠지만 말이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게 된 사건
처음 이 감정에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붙였을 때,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을 언어로 풀자면 '나는 무력하고,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이 두렵다'라는 것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 거 아닌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사건이지만, 내 유년시절 큰 기억으로 자리남아 그 이후 나의 삶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건이 있다. 바로 '피아노 학원을 관두게 된 사건'
유치원 다닐 때, 피아노책이 담긴 네모난 악보가방 들고 다니는 친구가 부러워서,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초등학교를 입학한 8살 때부터 11살때까지 4년간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고, 언니는 중학생이 되어 초등생인 나보다 늦게 하교했고, 아마 엄마는 하교 후나 방학때 나를 맡겨놓을 곳이 필요해서 초등학교 바로 앞의 피아노 학원을 보내기로 했을테지만, 그래도 피아노 배우고 싶다는 내 니즈를 반영해준 것 같아서 지금 생각해보니 고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나는 피아노 치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했다.
그 당시 피아노 학원엔 피아노 선생님이 3~4명 정도 계셨던 것 같다. 그리고 처음에 나를 맡아주었던 선생님을 굉장히 좋아했다. 그 선생님은 내가 어떤 재롱을 부려도 재밌다면서 웃어주고, 내 말을 정말 잘 들어주셨던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좋으니 나는 피아노도 열심히 쳤고, 선생님은 내게 손이 큰 편이라 피아노 치기 좋은 손이라고 하시며 잘 친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러나, 피아노 실력이 늘고 상위반으로 가면서 11살~12살 즈음에 피아노 선생님이 바뀌게 되고 말았다. 바뀐 반의 선생님은 지금 생각해보면 히스테리컬한 사람, 자기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 약한 사람에게 그 감정을 전가하며 분풀이하는 사람이었다. 레슨 시간, 나는 평소 치던대로 잘 쳤다고 생각했는데, "손가락 번호 안 맞춰?!"하면서 내게 성을 냈다. 당시 부모님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크게 혼나본 적도 없는 어린 나는, 선생님의 난데없는 성냄에 기가 팍 죽고 몸이 굳어 손가락 번호를 더욱더 맞출 수 없어서 버벅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 선생님은 내 손가락에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꽉 붙잡고 꾹꾹 누르며, "이렇게 쳐야한다고, 이렇게!"하며 더 성을 냈다. 그때 그 선생님이 너무 무서웠고, 또 뒤에 줄서서 레슨을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에게 내가 이렇게 혼나는 모습을 보이는게 너무나 수치스러웠다.
"그만 울어!!!!!! 그럼 그냥 관둬!!!"
결국 서러움이 북받쳐오른 나는 그 길로 울면서 학원을 뛰쳐나오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집에 돌아와 집전화로 직장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러움에 꺼이꺼이 울어서 제대로 말도 못하면서 "엉엉. 엄마. 나 피아노 학원 그만 둘래."했다. 직장에서 바빴던 엄마는 "지금 바쁘니까 일단 이따 집에서 말해"하고 살짝 짜증 섞인 투로 전화를 마쳤다.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돌아와 계속 울었다.
그리고 엄마가 퇴근하고 돌아와서, 엄마 얼굴을 보자마자 더 서러워져서 또 더 울었다. 엄마는 그렇게 울고 있는 나에게 대체 왜이렇게 우는거야, 너 피아노 좋아하잖아, 4년이나 쳤잖아, 그래도 피아노 학원은 더 다니라며 불안한 설득을 시도하다가, 내 울음이 멈추지 않자 결국 화를 내며 "그만 울어!!!!!! 그럼 그냥 관둬!!!"했다.
그때 내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손가락 번호 못 맞춘게 그렇게 큰 죄였을까, 어리고 지금보다도 더 여렸던 나는 큰 상처를 받았던거다. 나는 피아노를 좋아하고 잘 치고 싶어하는데, 잘 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렇게 화를 내다니. 내 마음대로 내 손이 움직여주지 않는게, 그리고 손가락 번호 몇개는 정확히 못 맞춰도 타건 자체는 틀리지 않고 잘 쳤는데, 이게 그렇게까지 타박받으며 다소 폭력적인 화를 받아내야할 일일까, 억울했던거다.
그리고 나는 엄마가 이런 내 마음을, 피아노를 좋아하는 마음을 그리고 상처받은 아픈 마음을 읽어주고 이해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 당시 집안 형편상 9-6 직장에 새벽에 우유배달까지 하던 엄마는 나의 감정을 받아주고 읽어줄 여력이 없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화를 낸 것은, 나에게 내는 화가 아니었다. 자녀의 설움과 투정을 받아줄 여력이 없는 자기 자신이 답답해서, 이 현실과 상황이 그리고 뜻하지 않게 찾아오는 교통사고 같은 시련의 사건들이 너무 벅차고 감당하기 어려워 되려 내게 화를 내게 된 것이었다.
"내가 가장 믿고 사랑하고 의지하는 엄마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구나."
하지만 이런 깊은 사정까지 헤아릴 카파가 되지 않았던 어린 나는, "내가 가장 믿고 사랑하고 의지하는 엄마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구나."하며 좌절했다. 감정도 해소되지 않은 채로,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결국 도망치듯 정말 피아노 학원을 관두었고, 피아노 원장선생님은 나를 설득해보려고 집전화로 계속 전화를 걸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 홀로 남아서, 계속해서 걸려오는 집전화 벨소리조차 무서워서 전화선을 아예 빼버렸다. 그때의 나는 엄마와의 소통에 실패하고 "엄마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게 내가 겪은 현실인데, 난 세상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을 것이다"고 생각하며 아예 마음의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그리고 세상은 위험하다, 그리고 그 위험한 세상에서 또 상처받는다면 나를 이해해주고 지켜주고 보호해줄 사람은 없다라는 생각이었다.
집에서도 뚱땅뚱땅 치던 피아노 소리는 이제 더이상 들리지 않았고, 더이상 피아노도 쳐다보고 싶지 않아졌다. 피아노를 보는 것조차 두려워졌다.
나는 피아노를 좋아했고, 피아노 학원을 관두고 싶었던게 아니다. 그저, 내 억울함과 서러움을, 내 마음을 엄마가 읽어주고 알아주고 위로해주길 바랐다. 그리고 문제해결능력이 없던 나는, 내 보호자인 엄마가 이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길 바랐다. 내가 피아노 학원을 계속 다닐 수 있도록 선생님을 바꿔준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하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소통도, 문제해결도 실패한 나는 결국 도망치고 회피하는 선택을 하게 됐고, 고립되었다. 이 사건은 이후의 10대~20대의 나에게 자기 마음과 감정, 욕구를 외면하고 억압하는 습성과 통제 불가능해보이는 문제로부터 도망치려고 하는 습성, 상처와 문제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문제 발생 자체를 통제하려 원인과 결과까지 모두 통제하려는 통제심, 통제욕구로 그 잔해를 남기기도 했다.
욕구의 좌절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외로움
피아노 학원을 관두고 홀로 집에 남은 나는 아주 깊이 외롭고 고독했다. 그때의 내 욕구는 모두 좌절되었다. 피아노를 좋아하는 욕구, 그리고 엄마로부터 내 마음을 이해받고 싶었던 욕구,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욕구 모두가 일순간에 좌절되었다. 내 원과 상관없이, 내 의도와 상관없이, 악조건과 한계 등이 맞물려 모든 상황은 좋지 않게 굴러갔고 그 결과 나는 아무도 없는 낡은방안에 홀로 남았다.
방안에 홀로 남아서 걸려오는 집전화 소리에 두려움을 느끼고, 어떤 어른이 존재할지 모를 위험한 세상밖으로 나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피아노를 마주하는 것 자체에도 두려움을 느끼며 온종일 TV만 봤다. TV로 외로움을 외면하고 회피하려고 했지만 외로움은 더 해지면 더 해졌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처럼 이렇게 방안에 홀로 남은 사람이 누굴까 생각하며 그 외로움을 달랬다. 그때 내가 떠올린 사람은 우리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혼자 살고 계셨기 때문이다. 내 외로움을 읽고 감당하고 다루어낼 능력이 안되니, 괜히 할머니 생각을 끌고 들어와 외로움이 느껴질 때마다 할머니를 생각하고 할머니에게 이입하며, 그럼 할머니는 혼자 남은 방에서 얼마나 외로울까 하면서 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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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의 상처와 외로움에 대해
물론 사람마다 기질이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어린 아이는 마음의 갑옷을 두르기 전인 상태이고, 세상 만사에 순도 100%의 진심이기때문에 마음이 여리다. 나도 그랬다. 그렇게 가장 무력하고 취약하고 무능하고 가진 건 순도 높은 진심밖에 없을 때 받게 되는 상처와 욕구의 좌절은 그 타격이 매우 크다.
그리고 껍데기도 없이 알맹이에 고대로 치명타로 받게 되는 그 상처로 인해, 정확히는 상처 그 자체보다는 그 상처의 치유과정을 제대로 밟지 못해서 곪으면, 모든 욕구가 좌절되는 경험과 함께 마음의 문을 닫고, 세상을 두려워하게 되고, 자신이 혼자다라는 외로움과 고독감을 느끼게 된다.
상처받는 일은 그 시기와 상처의 깊이만 조금씩 다를뿐 결국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일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랜덤하게 겪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다만, 시간이 흐르고 성장하며 상처와 외로움을 받아들이고, 감당하고 다루어 갈 방법을 깨달아가고,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과 불필요한 상처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방법 등을 알아가며 조금씩 단단해져갈 뿐이다. 이후 글에서는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과 외로움을 다루는 과정과 방식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