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가은 감독 신작, '세계의 주인' 피해와 상처 이후의 삶에 대해
지난 월요일 윤가은 감독 신작 '세계의 주인'을 봤다. 영화를 직접 봐야지만 느낄 수 있는 섬세하고 세밀한 표현들이 있기에, 직접 영화를 보는 것을 추천드린다. 이 글은 스포가 있으니 유의하시길 바라며.
영화를 본 뒤 며칠간을 '주인이'에 대해서 생각했고 상처가 남기는 흔적에 대해서 곱씹었다. 상처로 인하여 파생되는 또 다른 상처들과 삐걱거림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 상처와 삐걱거림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지금 당장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상처와 그 상처를 소화해내는 과정 또한 주인이만의 무늬와 이야기의 일부가 되어감은 분명하다.
피해자를 억압하는 또 다른 시선, '피해자성'이라는 프레임
주인이는 수호의 성폭행범 출소 반대 서명 동참 요구에 거절한다. 그 이유는 서명 동참을 호소하는 문구 중에 "성폭행은 피해자의 몸과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깁니다"라는 문구때문이었다. "씻을 수 없는 상처"라는 표현은 마치 성폭행 피해라는 사실이 자신의 삶에 평생 지워질 수 없는 그림자로 드리운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다른 사람은 크게 의식하지 못하고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문구일 수 있지만, 피해 당사자인 주인에게는 그 문장 하나가 결코 그냥 넘겨버릴 수는 없는 문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유치원 원장인 주인의 엄마에게 동료 교사가 하는 잡담, "어릴 때 경험이 정말 중요하죠. 어릴 때 폭행 등의 일을 겪으면 심각한 트라우마가 된대요. 그리고 이건 뇌 구조를 완전히 바꿔버린대요." 이 말에 표정이 굳은 주인의 엄마는 위장약을 핑계로 동료 교사를 내보낸다.
이는 피해자를 다시 '피해자성'에 가두고 억압하게 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주인이는 비록 성폭력이라는 피해를 입긴 했지만, 그 사건 하나가 주인이에 대해서 모든 것을 말해줄 순 없다. 주인이가 가진 발랄한 모습, 말괄량이같은 모습, 당찬 모습 등 그 면면들은 피해 사건과는 별개로 주인이가 원래 지니고 있던 모습이다. 하지만 피해를 입은 순간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성'이라는 고정관념과 편견속에 납작해져버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피해자라는 낙인, 그리고 무언가 심리적,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일 것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너 진짜 아무렇지도 않은 거 맞아?"
주인이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고백하고 친구를 붙잡고 "나 진짜 괜찮아. 나 진짜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라고 호소한다. 주인의 절친은 자신이 그 사실을 몰랐다는 충격과 함께 아무리 봐도 완전히 괜찮지는 않아보이는 주인이가 조금은 강압적으로 자신의 괜찮음을 강조하는 태도에 놀라서 잠시 거리를 둔다.
주인이는 정말 괜찮아서 괜찮다고 했을까. 아마 자신을 '피해자'로 납작하게 바라볼 시선이 두려워 애써 자신의 괜찮음을 강조했을 것이다. 피해자 프레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자신은 여전히 '이주인'으로 존재하는데,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사람들은 '피해자 프레임'으로 자신을 바라볼 것이기에. "이주인 걔 가끔 막 거짓말하는 것도 그 성폭행 트라우마때문 아니야? 걔 남친 자주 바뀌는 것도 트라우마때문 아닐까?" 이런 식의 해석들.
주인이는 완전히 괜찮지는 않다. 트라우마가 완전히 없지는 않다. 완전히 괜찮은 척을 할수록 애써 억눌러왔던, 기억 저편에 묻어놨던 상처가 수면 위로 떠오를 뿐이다. 그래서 더 괜찮아보이려고, 괜찮아지려고, 자신이 괜찮다는 것을 확인하려고, 남자친구와 스킨십도 해보지만 몸이 자동적으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그때 주인이는 남친에게 미안해하고, 남친은 결국 "미안해. 너가 너무 어려워."라며 헤어지자고 한다.
또 다른 피해를 겪은, 주인의 태권도 선배 언니도 상처가 완전히 회복되진 않았다. 봉사활동 현장에 주인이 자기 남자친구를 데려오자, 선배 언니는 외부인이라며 극도로 경계하고 "쟤가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냐."라고 화낸다. 안전이 완벽하게 보장되지 않은 사람에 대한 과한 경계 태세를 보인다.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기라도 하면, 씻을 수 없는 피해의 상처와 내적 문제를 지니고 있는 피해자라는 낙인에 갇힐 것 같고, 그렇다고 완전히 괜찮다고 하기엔 또 완전히 괜찮지는 않고, 주인이는 100% 괜찮지는 않은데 괜찮은 척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까지 떠안는다.
피해와 상처를 안고 여전히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
영화 마지막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비단 친족 성폭행 피해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우리가 어떠한 피해와 상처를 입은 뒤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
이주인은 이주인답게, 말괄량이 같고 개구진 이주인으로, 집안일 하기 싫어하는 동생 구슬려서 같이 설거지하고 빨래도 하면서, 친구들이랑 노래방에서 하하호호 웃고 떠들기도 하면서, 또 가끔은 지난 사건이 남긴 상처가 떠오를 때 이따금씩 괴로워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지낼 것이다. 주인이가 너무 괜찮은 척하지않고, 자기 상처를 자신의 속도로 껴안고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을 때 그 속도와 리듬에 맞는 남자친구도 만나고 알콩달콩 연애도 할거라고 생각한다.
성폭행 피해라는 사실이 이주인의 모든 것을 정하고 말해주지 않는다. 삶에 있어서 어떤 흔적과 상처는 남기겠지만, 그것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이주인만의 깊이와 아름다움이 더해지리라 생각한다. "이게 뭐가 아름다워. 추잡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상처가 치유되고 정화될 때 추잡스러움은 누구나 한번씩 거쳐가야하는 과정인 것 같다. 그 모든 부유하던 것들이 가라앉았을 때, 맑은 마음으로 또 다른 상처를 지닌 누군가를 보듬을 수 있는 품을 지닌 이주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