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의 허상, 그리고 과정에 충실하게 지금을 사는 용기
지난 시간의 나를 돌아보면서, 내 에너지를 갉아먹었던 생각패턴에 대해서 고찰해보고 있다.
오늘은 그 두번째 주제로 결과주의적 사고, 결과중심적 삶의 태도가 내게 끼친 좋지 않은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결과주의적 사고의 함정1: 노력과 과정에 대한 평가 절하
나는 지극히 결과주의적인 사람이었다. 입시 경쟁을 치르던 10대 때부터,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가보다 어떤 결과를 냈느냐가 중요하다는 관념하에 살아왔다. 그리고 난 "고생했다"라는 칭찬보다는 "잘했다"라는 칭찬에 만족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사실 노력에 비해서는 결과가 좋은 편에 속했다. 지난 글에서 다루었듯, 난 효율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사람이어서 노력도 효율적으로 했다. 같은 결과를 내더라도 힘을 덜 들여서 완수했을 때 더욱 만족스럽게 여기곤 했다. 하지만 노력에 비해 좋은 결과가 주어지는 것을 스스로 당연시 여기게 된 나머지, 노력과 과정의 가치에 대해서 등한시하게 되는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문제는 항상 결과가 좋으리라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결과를 결정하는 요소에는 자신의 계획과 노력도 있지만 이외에도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좋은 결과에는 통제 가능한 요소에 더하여 반드시 '운'이라는 통제 불가능하고 예측 불가능한 영역까지도 따라주어야 한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문제가 되는데, 난 지나치게 결과주의적인 사고를 고집했고, 심지어 결과가 좋지 않은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는 지난 시간 기울인 자신의 노력과 거쳐온 과정도 스스로 평가절하하는 안 좋은 습관까지 생겼다.
결과주의적 사고의 함정2: 실패가 두려워 안정적인 선택을 반복하며 외부 동기를 좇게 되는 현상
결과주의적 사고 방식과 삶의 태도로 단기적인 성과는 그때그때 잘 성취하는 편이었지만,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때 내가 내적으로 성장했는가, 성장해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그렇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지난 날의 나는 원하는 결과를 위해서, 심지어 결과까지도 통제하기 위해서 자신의 내적인 욕구보다는 외부적인 요소에 치중하여 선택을 했다. 즉 스스로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가에 관심을 쏟기보다는, 남들이 이미 닦아놓았던 길, 그래서 예측 가능한 길, 결과가 어느정도 보장된 길을 선택했다.
리스크가 적고 안정적으로 보이는 선택을 반복했기에 지금의 난 겉보기엔 마땅히 지금 나이에 갖춰야할 것들을 갖추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보여질지도 모르겠지만, 정작 내 내면은 계속해서 불안했고 평안하지 못했다.
아마 어린시절의 나는 내게 주어진 환경이 불안정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일단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야한다', '절대 실패하거나 실수해서는 안된다'라는 관념이 내게 자리한 것 같다.
플러스 혹은 마이너스로 가는 삶이 있고, 0 언저리에서 와리가리하는 삶이 있다면, 나는 혹시 모를 마이너스를 감수하고서라도 플러스로 가는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어떻게든 마이너스를 피하는데 목적을 두고 0.5 언저리에서 와리가리하며 아등바등 살았다.
자아가 생긴 시점부터 거의 20년을 이렇게 살아본 바, 지금 느끼는 건 마이너스를 피하고자하는 태도로는 오늘을 행복하고 평안하게 살아갈 순 없다는 것이다.
오늘을 사는 법: 실패와 고난까지도 받아들일 용기를 갖고 과정 속에서 충만하기
애초에 결과는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결과가 통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착각'이다. 우리가 아무리 스스로의 삶을 고난없이 안정적으로 꾸려가려고 '안정적으로 보이는' 선택을 반복할찌라도, 삶에는 계속해서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닥쳐온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실패, 고난, 고통 등 흔히 부정적이라고 인식되는 상황들을 피하면서, 원하는 결과와 형태를 만들어내기위해 내면의 욕구를 억누르고 상황을 통제하려는 삶의 태도는 오늘 이순간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을 '지금'을 앗아간다.
매일매일의 '지금'을 잃어가면서 '안정'이라는 허상을 이룰 것인가,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지금 이순간 평안 속에서 자신의 과정을 씩씩하게 밟아갈 것인가.
실패가 두려워서 내면의 욕구를 억누르고 주춤하며 불행한 현재를 살 것인가,
어떤 고난과 실패가 닥쳐오더라도 그 무엇이든 받아들일 용기를 가지고 지금 이순간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을 향해 한걸음씩 내딛을 것인가.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과정에 충실한 사람은 고난과 실패를 겪을 수 있다. 아니, 반드시 겪는다. 하지만 결과주의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고난을 겪지 않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고난을 겪는다.
그러나 과정중심적인 사람은 자신의 욕구를 추구하며 현재의 과정에서 성취의 기쁨도, 고난과 고통이 가져오는 슬픔도 있는 힘껏 기꺼이 만끽할 것이고,
결과주의적인 사람은 그 어떤 기쁨에도 슬픔에도 평안히 머무를새없이 조바심 속에 떨며, 뜻하지 않은 고난이 닥쳐올 때 '내가 그렇게나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려고, 통제하려고 애썼는데'하며 고난 앞에 주저앉게 된다.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며 현재를 대가로 바치지는 말자. 그 미래는 올지, 오지 않을지 조차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우리는 누구나 현재 지금 이순간을 살아갈 뿐이다.
과거가 맥락없이 휘발되고 결과만이 덩그러니 남았을 때 인간은 공허해진다. 우리는 무언가를 소유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의 뜻에 정직해져서 현재의 풍요를 느끼기위해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충만감, 풍요로움이라는 느낌은 넘치는 소유에서 오지 않고,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닌 것들에 대해서 '필요한만큼'의 차용을 하며, 두려움보다는 자유 속에서 자신의 내면의 뜻에 충실히 살아갈 때에만 느낄 수 있다.
살아있는 지금 이순간의 과정에 충실한 삶은 현재를 미래에 대한 대가로 지불하지 않고, 온전하게 현재를 살 수 있게 한다. 또한, 이는 현재의 지층을 쌓아갈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이렇게 현재의 지층이 차곡차곡 쌓여져 만들어져가면, 언젠가 지나온 길을 돌아볼 때에 자신만의 무늬와 얼룩을 지닌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긴 시간을 바라볼 때, 결국은 과정중심적인 사람은 더디더라도 끝끝내, 꾸준히 성장한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처럼, 단기적으로는 토끼가 앞서는 것 같아보여도, 토끼는 방심하고 결승선까지 가지 못하고 주저 앉았지만 거북이는 묵묵히 성실하게 자신의 과정에 임하여 끝내 결승선을 통과했다.
나의 노력과 과정은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결과에 상관없이 헛되지 않다. 그리고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라는 것도 단기적으로 지금 비춰져 보이는 한 부분에 불과할뿐, 무엇이든지 끝까지 가봐야만 가치성과 진가가 드러나는 법이다.
결국 삶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자유로운 경험의 장이라는 걸,
통제심을 내려놓고 나를 내 맡겼을 때의 경험들이 모여 상상도 못했던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어간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30대의 나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솔직해져서 그에 충실하게 임하여 지금 이순간을 살며, 그 어떤 실패와 고난이 닥쳐와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그리고 느리더라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